Johann StraussⅡ(1825-1899, 오스트리아)
음악을 좋아하시는 동네 이웃과 충남 당진으로 오페라 산책에 나섰다. 당진문예의전당은 처음 방문한 공연장이었는데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아 음향과 무대 기자재 등을 비롯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나섰고, 지방 소도시에 있는 공연장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좋은 음향 퀄리티를 갖고 있었다. 서곡만 듣고는 소리가 답답하다고 생각했는데, 오케스트라 피트가 아닌 무대 위에서 전달되는 소리는 깨끗하고 분명하기 때문에 오페라 공연에 최적의 공간이라 느껴졌다.
밝고 우울한 서정적 멜로디에 왈츠와 폴카가 섞인《박쥐》서곡은 인생의 희노애락과 고스란히 닮아있다. 바로 전날 금요일에 노트북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오류를 점검해 주시던 외부업체 직원이 6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해 온 중요한 자료들을 실수로 날려버렸다. 누적된 피로감과 학년말 업무 마무리로 정신 없을 때 하드웨어를 전문 업체에 보내 복원 수리까지 해야한다니 머리가 질끈질끈 아팠지만, 어차피 바꿀 수 없는 일은 잊어버리기로.. 극 중 로잘린데와 알프레드의 노래 가사처럼 어차피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잊어버리는 게 행복하다. 성악을 공부하던 고등학생 시절 친구와 함께 본 연주회에서 작품 속 아델라가 부르는 웃음의 아리아 〈친애하는 후작님 Mein Herr Marquis〉을 들으면서 '이렇게 유쾌한 노래도 있구나'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한 해의 근심과 고통을 덜어낼 만큼 즐겁고 유쾌한 작품이라 20세기 이후 유럽의 주요 극장들에서는 연말·연시에 무대에 올리는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오페레타 Operetta
노래·대사·무용적 요소가 결합된 가벼운 음악극으로 서사적 깊이보다는 유희와 해학적 요소, 대화체의 진행이 나타난다. 오페라에 비해 구조가 단순하여 초보자들도 비교적 쉽게 즐길 수 있으며 후에 19세기 유럽 대중 문화의 일환으로 형성되었다. 오페레타의 용어는 프랑스어 Opérette에서 유래하였으나, 이후 각 언어권에서 독자적 발전을 거쳤다.
징슈필 Singspiel
오페레타는 독일 전통의 '징슈필Singspiel 과 유사한 점을 지닌다. 두 장르 모두 노래와 대사의 결합을 특징으로 하지만 일반적인 오페라에 비해 유독 대사가 더 부각되는 특징을 갖는다. 징슈필이 민족적 서사와 결헙한 독일어권 음악극이라면, 오페레타는 보다 세련된 도시적 유희, 풍자적 텍스트, 대중적 유머를 강조한다. 슈트라우스의《박쥐》는 오페레타가 징슈필의 기조를 계승하되, 더 복잡한 음악적 장치와 공연성을 발전시킨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박쥐
초연 1874. 4. 5. 빈국립극장
대본 Carl Haffner, Richard Genèe
구성 3막
등장인물
가브리엘 폰 아이젠슈타인 Gabriel von Eisenstein - 부르주아 출신의 부유한 지주. 로잘린데의 남편(테너)
로잘린데 Rosalinde - 아이젠슈타인의 아내. 이 작품의 중심 인물(소프라노)
프랑크 Frank - 교도소 소장. 아이젠슈타인의 수감 및 3막 사건의 공간적 축을 형성하는 인물(바리톤)
오를로프스키 공 Prinz Orlofsky - 젊고 부유한 러시아 귀족. 권태에 찬 태도로 향락을 소비하는 인물(메조소프라노 또는 테너)
알프레드 Alfred - 테너 가수이자 로잘린데의 옛 연인. 현재는 그녀의 성악 교사로 등장(테너)
팔케 박사 Dr. Falke - 공증인 겸 아이젠슈타인의 친구. 과거 '박쥐 사건'에 대한 치밀한 복수를 설계하는 장본인(테너)
블린트 박사 Dr. Blind - 변호사. 서투른 변론으로 아이젠슈타인의 형량을 오히려 늘려 버리는 인물(베이스)
아델레 Adele - 로잘린데의 하녀. 배우가 되기를 꿈꾸며 신분 상승을 노리는 인물(소프라노)
이다 Ida- 아델레의 언니. 발레단 소속 무희로 아델레를 오를로프스키의 파티로 이끄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함(소프라노)
프로쉬 Frosch - 교도소 간수. 만취한 희극적 인물로 3막의 언어유희와 슬랩스틱을 담당(대사 역할)
이반 Ivan - 오를로프스키 공의 시종·하인(대사 역할)
기타 하인 네 명 Vier weitere Diener - 궁정 및 상류층 가정의 하인들(테너, 베이스)
관청 하인 Ein Amtsdiener - 아이젠슈타인이 모욕한 행정 서기. 극 중에서는 대사 없는 역할
#1막
비엔나 교외, 은행가 가브리엘 폰 아이젠슈타인의 저택에서는 이미 혼란의 기운이 감돈다. 하급 관리를 모욕한 일로 8일간의 구류형을 선고받은 아이젠슈타인은 어설픈 변호로 상황을 악화시킨 변호사 블린트에게 분노를 터뜨리고 감옥에 가야 하는 날이라는 사실 자체에 심기가 불편하다. 그 사이 집 밖에서는 로잘린데의 옛 연인 알프레드가 세레나데를 부르며 과거의 감정을 부추기고, 로잘린데는 기혼 여성이라는 현실과 달콤한 유혹 사이에서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한편 하녀 아델레는 발레단에 몸담고 있는 여동생 이다로부터 러시아 귀족 오를로프스키 공작의 화려한 무도회 초대장을 받는다. 그녀는 이모가 위독하다는 핑계로 하루 휴가를 청하지만 남편의 감옥행을 앞둔 로잘린데는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곧 아이젠슈타인의 친구이자 공증인인 팔케 박사가 나타나 상황을 뒤흔든다. 그는 아이젠슈타인에게 ‘감옥에 가기 전 마지막 향락’이라는 명분으로 오를로프스키의 파티 참석을 권하고, 과거 가면무도회에서 자신을 ‘박쥐’ 차림의 조롱거리로 만든 아이젠슈타인에게 은근한 복수를 계획한다. 결국 아이젠슈타인은 가명 ‘마르키 플 여우’로 파티에 가기로 결심하며 감옥행을 하룻밤 미룬다. 로잘린데는 남편이 감옥으로 떠난다고 믿고 작별의 슬픔을 나누지만, 아이젠슈타인이 집을 나서자마자 알프레드가 다시 등장한다. 그는 아이젠슈타인의 가운과 모자를 걸치고 마치 주인처럼 집을 점령해 술과 식사를 즐긴다. 바로 그때 교도소장 프랑크가 아이젠슈타인을 연행하러 들이닥치고, 로잘린데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알프레드를 남편이라고 속인다. 알프레드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아이젠슈타인인 척하며 감옥으로 끌려가고, 이 아이러니한 오해는 이후 벌어질 대소동의 서막이 된다.
#2막
오를로프스키 공작의 대저택에서는 밤이 깊어갈수록 무도회의 열기가 고조된다. 막대한 부와 지위를 가졌으나 삶의 무료함에 시달리는 오를로프스키 공작은 이 화려한 연회를 일종의 유희처럼 관조하며 "각자 취향대로"라는 냉소적인 태도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이 무도회는 팔케 박사가 기획한 ‘박쥐의 복수’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무대이자 모두가 가면과 가명 뒤에 숨어 서로를 속이는 가면극의 장이 된다. 먼저 아델레는 주인인 로잘린데의 드레스를 훔쳐 입고 나타나 하녀가 아닌 연극배우 ‘올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상류 사교계 여성인 척 행동한다. 이어 아이젠슈타인은 프랑스 귀족 ‘마르키 르나르’로, 교도소장 프랑크는 ‘슈발리에 샤그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각자를 위장한다. 아이젠슈타인은 변신한 아델레를 보고 자신의 하녀와 닮았다고 의심하지만, 아델레는 재치와 조롱이 가득한 노래로 이를 일축하며 신분 질서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 가면을 쓴 신비로운 헝가리 백작부인이 등장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로잘린데로 남편 아이젠슈타인이 감옥에 간다며 거짓말을 하고 이곳에 나타났음을 알게 된 분노가 이 변장의 동기가 된다. 로잘린데는 차르다시를 통해 자신의 고향을 노래하며 설득력 있게 신분을 감추고, 손님들의 신뢰와 찬탄을 동시에 얻는다. 아이젠슈타인은 이 백작부인에게 강하게 끌려 정체를 모른 채 구애하고 결국 그녀에게 시계를 건네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로잘린데는 이를 남편의 외도를 입증할 증거로 확보한다. 샴페인이 넘쳐나고 왈츠의 선율이 공간을 채우는 동안 팔케는 과거 박쥐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으며 이 모든 혼란이 유쾌한 복수임을 암시한다. 밤새 가면과 거짓, 쾌락에 취해 있던 손님들은 새벽 여섯 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에 현실로 돌아오고, 아이젠슈타인과 프랑크는 각자 ‘감옥으로 가야 할 시간’을 떠올리며 파티장을 황급히 떠난다. 웃음과 기만으로 가득 찬 밤은 이렇게 끝나고 진실이 드러날 시간은 이제 3막으로 미뤄진다.
#3막
이튿날 아침 감옥 사무실은 밤의 난장판이 남긴 후유증으로 어수선하다. 간수 프로쉬는 소장의 부재를 틈타 술에 취한 채 헛소리를 늘어놓고, 교도소장 프랑크 역시 전날 밤의 과음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감방 안에서는 ‘아이젠슈타인’이라는 이름으로 수감된 알프레드가 여전히 태연하게 노래를 부르며 소란을 피운다. 한편 아델레는 전날 밤 무도회의 경험을 계기로 예술가의 꿈을 확신하고 여동생 이다와 함께 프랑크를 찾아가 자신의 재능을 어필하며 후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프랑크는 그녀가 전날 밤 함께 어울렸던 ‘샤그랭’이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얼버무린다. 그 무렵 아이젠슈타인이 이제야 형을 살기 위해 감옥에 도착하고 이미 ‘아이젠슈타인’이라는 인물이 수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프랑크의 설명을 통해 전날 밤 로잘린데의 집에서 한 남자가 그녀와 단둘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아이젠슈타인은 아내의 부정을 확신하며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는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변호사 블린트로 변장한 채 조사에 나서고 곧이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로잘린데 역시 감옥에 도착하면서 거짓과 위장이 교차하는 대면 장면이 완성된다. 알프레드의 정체와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자 아이젠슈타인은 로잘린데를 향해 배신을 주장하며 복수를 외치지만 로잘린데는 오를로프스키의 무도회에서 남편이 ‘헝가리 백작부인’에게 시계를 건네며 구애했던 증거를 제시해 반격한다. 그제서야 아이젠슈타인은 그 신비로운 여인이 바로 자신의 아내였음을 깨닫는다. 결정적인 순간 팔케가 오를로프스키와 무도회 손님들을 이끌고 감옥에 등장해 이 모든 혼란이 과거 ‘박쥐 사건’에 대한 자신의 계획된 복수극이었음을 밝힌다. 진실이 모두 드러나지만 인물들은 책임을 샴페인과 밤의 열기에 돌리며 웃음 속에서 화해한다. 오를로프스키는 아델레의 재능을 인정해 후원을 약속하고 아이젠슈타인과 로잘린데 역시 서로의 허영과 유혹을 인정한 끝에 관계를 회복한다. 그렇게 술과 가면, 거짓과 웃음으로 점철된 하룻밤의 소동은 웃음 속에 유쾌하게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