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Donizetti(1797-1848, 베르가모)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 1797–1848)는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이 음악적 재능을 보인 덕분에 후원자의 도움으로 정규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베르가모의 음악학교에서 요한 시몬 마이어 Johann Simon Mayr의 지도를 받으며 작곡의 기초를 체계적으로 익혔고, 이 경험이 평생의 음악적 토대를 이루었다. 청년 시절부터 오페라 작곡가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극적 감각과 선율적 재능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각지의 극장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도니제티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풍부하고 자연스러운 선율, 명료한 형식 감각 그리고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극적 표현력이다. 그는 벨칸토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단순한 성악적 아름다움을 넘어 드라마와 음악의 결합을 한층 강화했다. 《사랑의 묘약》,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돈 파스콸레》 등은 희극과 비극 모두에서 그의 폭넓은 역량을 보여준다. 도니제티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성악 중심의 미학에서 벗어나 인물의 심리와 극적 사실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이러한 흐름은 이후 베르디의 인물 중심 음악극으로 더욱 확장되었다.
네모리노는 그녀의 눈가에 스친 작은 눈물을 본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만큼 짧고 미세한 흔적이지만, 그에게는 세상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 한 방울의 눈물 앞에서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한다. 오랫동안 품어 온 감정이 마침내 닿았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린다. 그 확신이 고요히 번져 나가며 불려지는 노래가 바로 'Una furtiva lagrima'이다. 이 아리아가 사람들의 마음을 붙드는 이유는 화려한 기교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정이 지나치게 솔직하기 때문이다. 기쁨과 불안,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그 미묘한 감정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랑이란, 늘 그렇게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태어나는 것이기에. 그러나 이 장면을 더욱 아이러니하게 만드는 것은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거짓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네모리노가 의지한 사랑의 묘약은 아무 효능이 없는 포도주였음에도 그의 믿음은 상대의 감정을 움직이고 현실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결국 이 오페라에서 사랑을 완성시킨 것은 약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의 묘약》은 단순히 유쾌한 희극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기 자신의 믿음에 의해 변화하고 그 변화가 또 다른 감정을 낳으며, 결국 관계의 양상까지 바꾸어 가는지를 이 작품은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보여준다. 웃음 뒤편에서 조용히 작동하는 이 미묘한 심리의 흐름이야말로 이 작품을 지금까지 살아있게 하는 힘이 아닐까?
대본: 펠리체 로마니 Felice Romani
초연: 1832년 5월 12일, 이탈리아 밀라노 카노비아나 극장(Teatro Canobbiana)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 L'Elisir d'amore》이 초연된 카노비아나 극장(Teatro Canobbiana)이 전신인 밀라노 리리코 극장의 모습. 아련한 흑백 필름 속에는 단정하게 코트를 차려입은 중절모를 쓴 남성과 드레스를 입고 한껏 멋을 부린 채 우아한 걸음으로 극장을 향해 걷는 여인, 길 위를 무심히 지나가는 강아지도 보인다. 20세기 초 밀라노에서 한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이 환상처럼 느껴진다.
Andiamo alla Cannobbiana, sotto le coperte di lana
밀라노 방언에 "Andiamo alla Cannobbiana, sotto le coperte di lana(양모 담요를 덮고 카노비아나 극장에 가자)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잠자러 가자"라는 뜻인데, 당시 극장에 난방 시설이 없어 추운 계절에는 관객들이 담요를 가져와 몸을 녹였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대리석을 건축의 주요 자재로 쓰는 특성상 단열이 잘 안 되는 데다가 천고까지 높아서, 여름엔 견딜 수 없을 만큼 덥고 겨울엔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추웠던 기억이 있다. 무슨 야외공연장도 아니고 오페라를 보러 가면서 담요를 싸들고 가던 그 당시 밀라네제들이 현대의 공연장 풍경을 본다면 엄청 부러워하려나? 현대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덜 풍족했겠지만, 그 시대였기에 누릴 수 있는 정서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배경
스페인 바스크 Basque 지방의 한 마을(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서부에 걸쳐 있는 지역)
등장인물
아디나(ADINA) 부유하고 변덕스러운 지주의 소작농 관리자(여주인) - 소프라노
네모리노(NEMORINO) 농부, 순박한 청년으로 아디나를 사랑함 - 테너
벨코레(BELCORE) 마을에 주둔한 부대의 하사관 - 바리톤
둘카마라(DULCAMARA) 떠돌이 약장수, 돌팔이 의사 - 베이스
잔네타(GIANNETTA) 젊은 농촌 처녀 - 소프라노
합창 및 단역 - 마을 사람들, 군인들 및 연대 소속 악대, 공증인 1명, 하인 2명, 무어인 1명
시놉시스
#1막 1장: 아디나의 농장
아디나의 농장에서 농부들이 일을 마치고 휴식을 취한다. 아디나는 책을 읽고 있으며, 그녀를 사랑하지만 다가가지 못하는 네모리노가 멀리서 그녀를 바라본다. 아디나는 사람들에게 트리스탄이 이졸데를 사랑하여 사랑의 묘약을 마셨고, 그 결과 이졸데가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군인들의 행진 소리와 함께 벨코레가 부하들을 이끌고 등장한다. 벨코레는 아디나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청혼하고, 군인의 매력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고 자신한다. 네모리노는 벨코레가 당당하게 아디나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아디나는 그의 청혼을 거절하고 대신 벨코레와 군인들에게 포도주를 대접한다. 네모리노는 용기를 내어 아디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아디나는 자신이 변덕스럽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네모리노에게 부유하지만 병약한 삼촌이 있는 도시로 가서 살아보라고 권하며, 사랑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네모리노는 그녀의 태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1막 2장: 마을 광장
트럼펫 소리와 함께 약장수 둘카마라 박사가 등장한다. 그는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기적의 약을 팔겠다고 떠들며 군중의 관심을 끈다. 네모리노는 이졸데의 사랑의 묘약이 있는지 묻고, 당황한 둘카마라는 곧바로 그런 약이 있다고 둘러대며 포도주를 묘약이라 속여 판다. 그는 네모리노에게 약을 천천히 마시라고 지시한다. 아디나가 나타날 무렵, 네모리노는 술에 취해 있고 묘약의 효력을 믿으며 들뜬상태로 아디나를 일부러 무시한다. 아디나는 그 태도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네모리노를 자극하기 위해 벨코레와 더욱 친밀하게 행동하고 일주일 후 결혼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네모리노는 묘약의 힘을 믿고 태연하게 행동한다. 그때 벨코레는 부대가 즉시 이동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고 아디나에게 그날 밤 결혼하자고 설득한다. 네모리노는 묘약이 효과를 발휘할 내일까지 결혼을 미뤄 달라고 애원하지만, 아디나는 그를 일부러 괴롭히기 위해 이를 거절한다. 사람들은 모두 결혼식에 초대받아 자리를 떠나고 네모리노만이 홀로 남는다.
#2막 1장: 아디나의 집 안
네모리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축하 연회에 참석한다. 둘카마라는 아디나와 함께 새 이중창을 부르는데, 이 노래는 부유한 구혼자를 거절하고 가난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혼계약서에 서명할 시간이 되었을 때 아디나는 네모리노가 나타나지 않은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뒤 네모리노는 둘카마라에게 다가와 묘약의 효과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둘카마라는 추가로 한 병을 사라고 권하지만 네모리노에게는 더 이상 돈이 없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벨코레는 군에 입대하면 즉시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네모리노는 아디나를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입대를 결심한다. 벨코레는 경쟁자를 자기 손으로 입대시켰다는 사실을 은근히 즐긴다.
#2막 2장: 마을 뜰
아디나의 친구 잔네타는 네모리노의 삼촌이 죽고 그에게 막대한 유산이 남겨졌다는 소식을 마을 처녀들에게 전한다. 처녀들은 갑자기 네모리노에게 몰려들어 관심을 보인다.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네모리노는 이 인기가 묘약 덕분이라고 믿는다. 아디나는 네모리노가 자신을 떠난 듯한 모습에 분노한다. 둘카마라는 혹시 자신이 우연히 진짜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지 의아해한다. 그가 아디나에게 네모리노가 냉정한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묘약을 샀다고 말하자, 아디나는 네모리노의 사랑이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태도를 후회한다. 둘카마라는 아디나 역시 묘약이 필요하다고 농담하지만 아디나는 자신의 진심만으로 네모리노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네모리노는 아디나의 눈에서 눈물을 본 뒤 그녀가 곧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 확신하지만, 일부러 무심한 척하며 여러 처녀 중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아디나는 네모리노를 군대에서 풀려나게 하기 위해 그의 계약금을 대신 지불했음을 밝히며 그가 마을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직접적으로 사랑을 고백하지는 못한다. 네모리노는 만약 아디나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군인이 되겠다고 말한다. 마침내 아디나는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게 된다. 한편 벨코레는 아디나에게 선택받지 못한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세상에는 여자가 많다고 말하며 떠난다. 둘카마라는 자신의 묘약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랑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