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Stuart Mill(1806~1873, 영국)
(2021. 3. 13.)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할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일이 자기 일이나 마찬가지라는 구실 아래, 그 사람을 위한다면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중 -
시대가 변했고 조직 문화도 과거보다 개방적이 되었다고들 하지만, 관료제라는 보수적인 틀 안에서는 여전히 '다수와 다른 견해를 내놓는 이'가 배척당하기 쉽다. 겉으로는 다양성과 민주적 토론을 내세우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지극히 정치적 성향을 지닌 소수 권력자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조화를 해친다는 이유로 '튀는 사람'이 되어 따가운 눈총을 받는 일 또한 여전히 낯설지 않다.
밀은 국가의 공권력보다도 사회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더 경계했다. 개인의 자유는 법적 강제력에 의해서만 침해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습과 다수의 시선이 개인을 조용히 압박하는 순간 자유는 쉽게 위축될 수 있다. 밀이 제시한 원칙은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하고 정당한 근거는 '타인에게 해를 끼칠 때'뿐이라는 것이다. 그 밖의 영역, 곧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누구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 설령 그것이 다수의 취향이나 관습에서 벗어날지라도 말이다.
이 원칙을 떠올리면 조직 안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익숙한 장면들이 새롭게 보인다. 예컨대 '관습'이라는 미명하에 이어지는 의전이나 위계적 문화가 그렇다. 과거 근무지에 회식 때마다 교무부장이 당연한 듯 자신의 자가용으로 매번 교장을 모시고 바래다 드리는 것을 보았다. 어느 자리에서든 누군가가 당연하다는 듯 특정 역할을 맡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질서처럼 반복되는 모습은 생각해 볼수록 묘한 장면이다. 그 속에서 개인의 선택이나 자율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늘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그저 오래된 방식이기 때문에 유지될 뿐이다.
사람들은 종종 "상대를 위해서" 혹은 "공동체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워 타인의 삶에 개입한다. 그러나 밀은 단호하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일이 곧 자신의 일인 양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어떤 삶을 선택할지는 온전히 그 사람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의 자유를 온전히 존중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 자신은 스스로의 삶에 대해 충분히 자유로운가.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