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행복

김신지

by 세실리아

(2025. 1. 21.)


여행을 갈 때면 늘 책을 몇 권 챙긴다. 책은 낯선 도시가 주는 어색함과 적막을 메워주는 가장 든든한 여행 메이트다. 학기말의 어수선한 업무들을 뒤로하고 새벽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급히 집어 든 책 가운데 하나가 김신지의 《제철 행복》이었다. 서점 매대에서 마주칠 때마다 초록색 표지와 다정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지만, 막상 읽어 보니 문장의 결은 내 취향과 조금 달랐다. 대신 이 책은 다른 구석에서 마음을 붙잡았다. 본문보다 목차가 더 마음에 드는 책이라니.. 어떤 문장은 학교 행사의 포스터에 어울릴 것 같고, 어떤 문장은 가정통신문의 단아한 문구가 되기 좋겠다 싶었다. 하얗게 눈 덮인 삿포로의 겨울 속에서 이 책을 끝까지 완독하진 못했지만, 꼭 완독해야 할 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떤 책은 오래 곁에 남고 어떤 책은 몇 문장만 건넨 채 조용히 지나간다. 하루의 여정 끝에 피로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구석진 책상 위에 한 권 책이 놓여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충분히 풍요로워진다. 낯선 도시에서의 긴 밤, 이 순간 내가 누리는 실존적 행복이야말로 《제철 행복》인가 보았다.


내가 나여서 살 수 있는 삶이 있다면

20250105_일본 삿포로 여행 중 숙소에서


호텔 객실에 들어섰을 때, 침대 머리 뒤편으로 애매한 공간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어라, 왜 저길 저렇게 애매하게 비워놨을까?' 짐을 내려놓으며 가까이 다가가니, 이렇게 아기자기한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었다는. 닷새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공간, 가져간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삿포로 맥주에 질겅질겅 쥐포를 씹기도 했던 그 밤..




1부 봄, 봄비에 깨어나는 계절

입춘 꼬박꼬박 봄이 오듯이, 희망할 것

우수 언제나 봄이었다, 우리가 만난 것은

경칩 일어났어? 자연이 묻는 말에 답할 시간

춘분 덤불 속에, 가지 끝에 숨겨둔 봄의 쪽지

청명 지금을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

곡우 봄 산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2부 여름, 햇볕에 자라나는 계절

입하 5월에 내리는 이토록 하얀 눈

소만 먼저 건네면 무조건 좋은 것

망종 장마가 오기 전에 해야 하는 일들

하지 해가 지지 않고 우리는 지치지 않고

소서 비가 오면 달려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대서 무더위를 식히는 여덟 가지 방법


3부 가을, 이슬에 여물어가는 계절

입추 어느 날, 새끼 제비를 도왔더니 생긴 일

처서 눅눅해진 마음을 햇볕에 잘 말리고서

백로 도토리 6형제를 찾아 숲으로

추분 이런 날엔 우리 어디로든 가자

한로 계절이라는 가장 가까운 행복

상강 기차를 타고 가을의 마지막 역에 도착하는 일


4부 겨울, 눈을 덮고 잠드는 계절

입동 긴 겨울을 함께 건널 준비를 하자

소설 겨울 속에 어떤 즐거움을 심어둘까?

대설 눈은 보리의 이불, 우리의 오랜 기쁨

동지 긴긴밤, 돌아보면 좋은 순간들도 많았다고

소한 겨울이 문을 열어 보여주는 풍경들

대한 내가 나여서 살 수 있는 삶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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