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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윤종신 Jul 31. 2018

소년을 부탁해

영화 <아무도 모른다> | 이승한의 B-Side

영화와 관객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여야 적당할까? 스크린과 객석 사이의 거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텍스트와 수용자 사이에 형성되는 공감대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 보는 이들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일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공감이 과하면 되레 영화를 안락하게 감상하는 게 어려워진다.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가상의 창작물이라 나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다는 심리적 경계선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참사 생존자가 재난영화를 웃으며 보기란 아무래도 어려운 법이다. 사람과 사람이 그렇듯, 영화와 관객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양육권자인 어머니와 함께 살며 주기적으로 아버지를 만나는 성장과정을 거쳐 온 내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너무 가까웠다. 나의 부모가 따로 살게 된 건 내 나이 11살, 딱 줄리앙(토마 지오리아) 나이 때의 일이었다. 다행히 나의 아버지는 앙투안(드니 메노셰) 같은 사람은 아니었고, 나 또한 줄리앙만큼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살진 않았다. 그러나 몇몇 장면이나 대사들은 많이 익숙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거짓말을 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끼는 줄리앙의 표정이나, 누가 거짓말을 시킨 거냐고 따져 묻는 앙투안의 힐난, 아주 잠깐 사이가 원만해지는 듯하다가 다시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두 양육자들을 지켜보는 당혹감 같은 것들.


아슬아슬한 거리감을 견디며 관람을 마치고 나니, 기억에 남는 건 줄리앙의 눈빛이었다. 부모의 싸움을 직접 보며 자란 그는 자신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가장 잘 아는 당사자다. 하지만 가정법원은 어린 아이에겐 아직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굽히지 않는다. 줄리앙은 18살이 넘어 부모 접견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누나 조세핀(마틸드 아네보)이 부럽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유일한 가족 구성원인 자신은, 가족의 평화를 위해 정보를 통제하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아직 아이인 주제에 버거운 책임감을 짊어진 채 흔들리는 줄리앙의 눈빛은 아프다. 부침 많은 유년을 겪으며 자란 아이들은 그렇게 눈부터 늙는다.


그런 눈빛을 한 소년을, 우리는 다른 영화에서도 만난 적 있다. 동생들을 챙기며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여 살아가는 <아무도 모른다> 속 아키라(야기라 유야)가 그랬다. “아키라, 엄마 한동안 집 비울 거야. 쿄코, 시게루, 유키를 부탁한다.” 이번엔 정말로 성실하고 착한 남자를 만났다는 엄마(유)는, 열세 살 아키라에게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쪽지와 얼마 간의 돈을 남기고 훌쩍 떠났다. 이 당혹스러운 상황에도 아키라는 분노하거나 헤매지 않는다. 엄마가 있을 때에도 그는 실질적인 이 집의 가장이었으니까. 동생들을 챙기고, 숙제를 봐주고, 장을 보는 모든 돌봄노동은 아키라와 장녀 쿄코(기타우라 아유)의 몫이다.

한동안이라던 엄마의 외출은 점점 길어진다. 엄마가 준 생활비는 일찌감치 떨어졌고, 아이들은 아키라가 편의점에서 얻어온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으로 연명한다. 나이가 어리니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경찰이나 보호시설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그랬다간 남매가 뿔뿔이 흩어져버릴 테니까. “엄마는 언제 돌아와?” 친구 사키(칸 하나에. 한영혜)의 질문에 아키라는 잘라 답한다. “이제 안 돌아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책임감에 짓눌려 어딘가 죽어있던 아키라의 눈은, 제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기대를 접는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그 빛을 잃기 시작한다.


김창완의 노래처럼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아야 한다. 열한 살 줄리앙과 열세 살 아키라는 그럴 수 없었다. 줄리앙은 부모 사이의 폭력적인 공간에 내던져진 채 중간자의 역할을 강요당했고, 아키라는 부모가 부재한 공간에 떨어진 채 보호자의 역할을 강요당했다. 무사히 유년을 건너와 서른다섯을 사는 나는, 끝내 영화와의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종종 줄리앙과 아키라의 안부를 묻고 싶어 질 것이다. 자신보다 나이 든 눈으로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 소년들은 안녕한지, 아직도 제 나이보다 더 많은 책임을 짊어지고 살고 있지는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2004)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야기라 유야, 키타우라 아유
시놉시스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메모와 약간의 돈을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버린 엄마. 열두 살의 장남 아키라, 둘째 교코, 셋째 시게루, 그리고 막내인 유키까지, 네 명의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키라는 동생들을 돌보며 헤어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가 빨리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네 명의 아이들은 감당하기 벅찬 시간들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보내기 시작하는데…

이승한

TV 칼럼니스트. "공부는 안 하고 TV만 보니 커서 뭐가 될까"라는 주변의 걱정에 인생을 걸고 허덕이며 답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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