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간 윤종신 Apr 14. 2019

투병 일기

젊은 작가가 쓰는 한남동에 대한 짧은 픽션 - 한남동 이야기

담당 간호사에게 그럼 가보겠습니다, 하고 가볍게 눈인사를 했을 때만 해도 그날의 진료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윤범은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몸무게와 혈압을 쟀고, 사전에 진행한 이십사 시간 유린검사와 피검사 결과를 확인했으며, 담당 의사로부터 큰 이상은 없으나 여전히 단백뇨 수치가 줄지 않는 게 아쉽다는 소견을 들었다. 진료실 밖으로 나온 다음에는 잠시 의자에 앉아 대기했고, 곧이어 자신을 뒤따라나온 간호사가 건네주는 예약증을 챙겼으며, 다음번 예약 일정과 사전 검사 내용, 그리고 처방전 내용을 꼼꼼히 확인했다.

그런데 그날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윤범이 진료를 마치고 복도를 떠나려는 찰나, 간호사가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 맞다, 하면서 그를 붙잡았다. 이제껏 이런 적이 있었던가 싶어서 멈칫하게 되는, 뭔가 뜻밖이어서 NG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오늘이 우리 마지막이겠네요.
……예?
제가 이달 말까지만 일하거든요. 다음 진료가 11월이니까 그때 저는 없을 거예요.
윤범은 놀라서 동그래진 눈으로 간호사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놀라는 게 맞나, 괜찮나, 과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스쳤으나 그렇다고 해서 표정이 달라지진 않았다.
왜요? 그만두세요? 어디 가세요?
예, 뭐, 그렇게 됐어요. 이제 나이도 있고.
윤범은 그녀의 정확한 나이는 알지 못했지만, 이제 나이가 있다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라는 건 알았다. 사십대 중반에서 후반쯤으로 보였는데, 어쩌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아서 오십대일지도 몰랐다. 이 병원은 간호사가 오십대면 안 되는 건가, 아니, 그녀가 그만두는 건 자의인 걸까 타의인 걸까, 하는 생각에 잠시 마음을 빼앗긴 사이, 그녀가 묵직한 안경알 뒤로 숨겨놓은 것 같은 작고 주름진 눈을 내리깔면서 명치께에 매달려 있는 목걸이형 명찰을 만지작거렸다.
이름 김영미, 소속 간호부, 직위 간호조무사.
윤범은 곁눈질로 슬쩍 명찰을 확인하고는 아, 이분 성함이 김영미였구나, 하고 새삼스레 곱씹었다. 분명히 처음 알게 된 건 아니었는데, 그동안 담당 의사나 동료 간호사들이 영미씨, 영미 선생님, 하고 그녀를 부르는 걸 여러 번 들었을 텐데, 왠지 모르게 김영미라는 이름 석 자가 생경하게 다가왔다.
윤범이 한남동에 있는 이 대학 병원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스무 살 여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십삼 년 전, 그러니까 2005년 여름이었다. 그해 여름 윤범은 입대를 위한 신검을 받았다가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병무청에서 한 번, 동네 병원에서 한 번, 그리고 이 대학 병원에서 한 번, 총 세 번의 소변검사를 거친 끝에 조직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면역글로불린 A신증’이라는 자신의 병명을 확인했다. 역글로불린 A라는 물질이 신장 조직에 침착되면서 신장의 기능을 점차 떨어뜨리는 질병이었다.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는데다가 완치 사례도 없어 현재로서는 정기검진을 통해 경과를 살피고 진행을 늦추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계절마다 한 번씩 꼬박꼬박 병원에 들러 소변검사를 하고 피검사를 하고 몸무게와 혈압을 재고 근황을 보고하면서 상태를 확인받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지난 십삼 년간 윤범의 병세는 완만하고 느리게 나빠졌다. 아직 입원이나 수술 같은 크나큰 드라마를 겪은 건 아니니 대단히 나빠졌다고는 할 수 없으나, 중간에 혈압약과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게 된 걸 보면 나빠지지 않은 건 또 아니어서 이따금 침울해졌다. 일상생활에 큰 무리가 없다보니 정신이 없을 때는 자신이 불치병 환자라는 사실을 잠시 잊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다음 검진일이 다가올 때면 어김없이 자신의 병세와 상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 쉽게 비관에 빠졌다. 윤범은 서른이 넘고 몇 번의 부침을 겪은 뒤에야 왜 그토록 많은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이 병은 무엇보다도 마인트 컨트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고, 세상의 어떤 일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투병이야말로 전적으로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불행해지고 다행이라 생각하면 어떻게든 다행일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언젠가부터 윤범은 그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서 김영미 간호사를 떠올리곤 했다. 김영미 간호사는 윤범이 진료실을 찾을 때마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심드렁한 표정과 무뚝뚝한 말투를 고수했는데―처음에는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싶었지만 머지않아 그게 곧 그녀의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됐다―윤범은 그런 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지금 내가 그렇게 위중한 건 아니구나 싶은, 내 병이라는 게 그렇게 유별난 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면서 묘한 위로를 받곤 했다. 사실 그건 환자를 위한 배려라기보다는 지긋지긋한 감정 노동 끝에 습득한 노하우 같은 것일 테지만, 그러니까 그녀는 특별히 환자를 위로한 게 아니라 그냥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제 할 일을 한 것뿐일 테지만, 어쨌든 윤범은 감정을 극도로 배제한 듯한 그녀의 응대 덕분에 잠시나마 덩달아서 수평이 될 수 있었고, 그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됐다. 윤범은 저도 모르게 제 처지를 비관하게 될 때마다 그녀의 무심하고 심상한 태도를 떠올렸고, 이건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니,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난을 떨 정도는 아니라고, 아직 거기까진 가지 않았다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뭐랄까 왠지 좀 석상이나 동상 같은 사람이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말수가 극히 적은 것도 그렇고, 옅은 화장과 양쪽 귀가 잘 보이는 쇼트커트 머리를 십수 년째 유지하는 것도 그랬다. 주의깊게 살펴본 게 아니어서 진정 그런 것인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그간 안경테를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윤범은 그녀의 부재 같은 건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스무 살의 윤범이 동네 병원에서 발급받은 소견서를 들고 진료실 앞을 서성였을 때부터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었으니까. 언제나 이 대학병원 별관 2층 신장 내과 진료실 안팎에서 크기도 작지도 않은 덤덤한 목소리와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담담한 태도로 환자를 돕던 사람이었으니까. 윤범은 그녀가 그만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이럴 때는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 그렇구나, 하면서 우물쭈물했다.
왠지 미안하네요.
그녀가 말했다.
예? 간호사님이 왜 미안하세요.
그러게요. 내가 왜 미안하지.
그녀가 한 박자 쉬었다 말을 이었다.
먼저 떠나서 미안한가봐요. 저도 제가 이렇게 떠날 줄은 몰랐네요.
윤범은 그렇다고 해서 미안할 것까지야, 하면서 갸웃했으나, 듣고 보니 그제야 우리가 한 팀이나 한 팀 비슷한 무엇이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면서 급격히 서운해졌다. 난데없이 빼앗긴 것 같기도 했고, 엉겁결에 잃어버린 것 같기도 했으며, 속절없이 버려진 것 같기도 했다. 그때 그녀가 악수를 청했고, 윤범은 얼떨결에 응했다.
관리 잘하셔야 해요. 약 거르지 마시고요. 검진 날짜 지키시고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예, 그러겠습니다. 간호사님도 건강하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윤범은 이렇게 헤어지는 게 맞나, 괜찮나, 모자라지 않나 싶어서, 그래도 십삼 년을 알고 지냈는데 이것보다는 훨씬 더 감정적이고 수다스럽고 장황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자꾸 할말이 있는 것처럼 뜸을 들였는데, 막상 뭔가를 더 말하려고 보니 딱히 떠오르는 건 또 없어서, 그녀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저 명찰 속의 이름과 소속과 직위가 전부인 것 같아서 그냥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갈음했다. 여기서 선을 지키는 게, 딱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게 이 관계 특유의 모양과 온도에 적합한 것 같았다. 이윽고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윤범이 몇 걸음 걷다 말고 다시 슬쩍 뒤를 돌아봤을 때 그녀는 거동이 조금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윤범은 잠시 동작을 멈추고 그들이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진료실 문이 완전히 닫히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자신이 더는 이 불치병에 대해 무감하거나 심상한 척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자신이 오랫동안 애써 퇴거 명령을 무시한 채로 뭉그적거리던 어떤 챕터에서 강제로 쫓겨나 완전히 다른 챕터로 옮겨졌음을, 그 새로운 챕터에서는 모든 게 빠르고 선명하게 나빠져서 어느 누구도 어떻게 손쓸 수가 없는 감정의 드라마가 펼쳐지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김병운

1986년 서울 출생. 2014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이래저래 안 되는 게 많아서 피곤하게 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