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글이 잘 풀리지 않으면 잠시 덮어두고 다른 일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산책을 하거나, 기분 전환을 하고 다시 쓰기 시작하는 게 효율적이다. 하루키도 장편소설 초고를 완성하고 두 차례의 고쳐쓰기를 하고 나면 긴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작품을 서랍 속에 넣어두고 천천히 양생 시킨 다음 시간을 두고 다시 읽는다고 한다. 그러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결점이 아주 또렷하게 보인다고.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퇴근 시간이 다 되도록 풀리지 않거나 손도 대기 싫은 일이 남아 있을 때 과감하게 그 일을 덮어두지 못했다.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하루 종일 계속 붙잡고 끙끙댔다. 저녁식사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 돼서야 간신히 의자에서 일어나 무슨 맛인지 느낄 수조차 없는 구내식당 밥을 먹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바짝 말라비틀어진 뇌에서 아이디어를 쥐어짜보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의 머리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그런 날은 그만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몰랐던 나는 밤늦도록 그 일을 붙잡았다. 그러나 결국 그 일은 마무리하지 못하고 찜찜한 기분으로 퇴근을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음날 일찍 출근해서 30분 만에 그 일을 끝냈다.
그때 나는 왜 그 전날 지친 저녁 내일 다시 시도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컨디션을 회복해 기분을 전환하고 다시 시도하면 쉽게 되는 일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미련하게 붙잡고 있었을까. 지친 몸 상태에서는 판단의 질 또한 낮아질 수밖에 없어서 더욱 그랬을 수 있고, 이미 몸이 피곤한데 쉬지 않으면 지치는 속도는 더 빨라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 그랬을 수도 있다. 마흔을 넘긴 지금에서야 모든 일을 조급하게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지만, 그때는 붙잡고 늘어진다고 해결되지 않는 일을 나는 하염없이 붙잡고 있던 것이다.
지금 일을 대하는 나의 생각은 이렇다. 하루하루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일보다 나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는 것이 중요하고, 세상의 흐름에 맡겨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내가 집중해서 처리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정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업무의 양도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할 정도로 일보다 나를 우선시한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삶의 이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