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평균 기대수명 83.3세. 이제 우리는 100년 동안 인생을 산다는 전제를 두고 삶의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60세에 은퇴하던 시대는 이미 우리 부모 세대에서도 통하지 않는 말이다. 우리들 부모 세대 중 큰 자산을 형성하지 못한, 은퇴자금이 부족한 사람들은 평생을 일한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고도 새롭게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아파트 경비원, 요양보호사, 아이돌보미 등. 물론 나이가 들수록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삶의 활력과 보람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음이, 무슨 일이든 직업을 갖고 있는 것은 삶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도 노년에 편하게 쉬지 못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고, 자식들이 환갑잔치도 열어주지 않는 예순 살을 맞이할 거라고 젊은 시절 우리 부모들은 생각이나 했을까.
며칠 전 페이스북에 공유된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읽었다. 우리 엄마, 아빠를 보는 것 같아서 전문을 다 읽지 못하고 창을 닫았다. 우리 엄마도 몇 년 전 자식들 몰래 아파트 계단 청소를 하신 적이 있다. 간신히 일주일을 채우고 그만두신 후에야 그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우리에게 얘기하셨다. 처음에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는 엄마가 왜 그런 힘든 일을 했는지 화도 나고, 이제는 그런 일밖에 할 수 없다는 엄마가 측은해졌다가, 지금 보내드리는 용돈에서 얼마를 더 보내드려야 하나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는 십 년이 넘도록 우리가 매달 보내드리는 용돈으로 적금을 들고 계신다. 엄마에게는 삶의 활력과 보람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일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엄마 나이에 삶의 활력 정도만 줄 수 있는 고되지 않은 노동 강도에, 일을 하며 얻는 성취와 보람보다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일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노년층의 일자리 문제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된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 문제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다 읽지 못하고 창을 닫아버린 것도 실은 미래의 나의 이야기가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나이 마흔에도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나처럼 아무런 IT 기술이 없는 사회과학계열 전공의 일반사무 경력자는 메타버스의 시대로 향하고 있는 요즘 채용 공고문을 읽고 있으면 시대의 낙오자가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지금 직장에서 끝까지 잘 버텨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회사에서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 없고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두려운 마음만 가득하다면 하루빨리 그만두는 것이 맞다. 이 좋은 세상을 우울증 약으로 버틸 필요가 무엇이 있나.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미래에 인간의 영역을 로봇이 대체하며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파생되는 산업의 새로운 일자리(유튜버, 쿠팡맨 등)가 등장하고 있고, 기술혁신으로 인해 인간은 노동을 쉽고 편하게 할 수 있으며, 노동시간 또한 감소해 사람들의 여가시간은 도리어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주 52시간이 시행되고, 주 4일 근무가 논의되는 현재, 앞으로 우리 사회는 전체적인 근무시간은 줄어들고 여가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 애플TV, 디즈니플러스가 앞다투어 한국에 상륙하고, TV에서는 유명 연예인을 기용한 새로운 게임 광고가 끊이지 않는 등 OTT와 게임 산업이 뜨는 이유는 편하게 여가를 즐기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또한 비싼 오프라인 경험보다 싼 비용에 비슷한 즐거움을 주는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더욱 폭발할 수밖에 없다. 최근 메타버스 관련 주가가 수직 상승하는 이유다.
이제 여가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편하게 남들이 만들어 놓은 콘텐츠만 즐길 것이 아니라 100년 동안 인생을 산다는 전제 아래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의 절반 가까이에 온 40대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내 자식들은 어떤 준비를 시켜야 할까를 잠시라도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