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에 걸친 장자읽기가 끝났다. 중간중간 한자로 가득한 문장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삶에 대한 너무나 철학적인 이야기가 마음을 무겁게 누르며 읽어 나가기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가능할까 싶었던 장자읽기를 해냈다. 장자읽기를 하는 동안에는 매일 정해진 분량을 읽어야 하는 부담감이 컸지만 막상 장자읽기를 끝내고 나니 후련함보다는 장자를 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더 큰 것 같다.
"대지는 나에게 몸을 싣게 해 주고, 삶을 주어 힘쓰게 하고,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합니다. 내 삶을 좋다 했으니 내 죽음도 좋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도 때를 만남이요, 우리가 죽는 것도 순리일 뿐이지. 편안하게 때를 맞이하고 순리대로 따를 뿐이네. 슬픔도 기쁨도 들 수 없는 것이네. 옛날에는 이것을 '거꾸로 매달렸다 풀려나는 것'이라고 했다지."
장자 내편 대종사에 나오는 구절이다. 삶과 죽음을 다르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삶이 당연했듯, 죽음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죽음 자체보다 죽음이 가져오는 이별이 더 힘들다고, 그래서 돌아가신 지 한참 되신 아버지가 아직도 그립다며 마지막 강의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살짝 눈물을 보이시던 이 책의 역자 조현숙 선생님의 얼굴이 마음에 남는다. 나는 아직 나의 가까운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알 수 없는 그리움이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정말 슬픈 일이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매일 새로운 뉴스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고 특히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Bad News'에 더욱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 부정적인 기사에 주목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어느 때보다 더욱 세상에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어졌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더욱 희망을 찾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인간의 인생은 참 짧은 시간이다. '100년 전에 당신은 무엇을 했나요?' 혹은 '100년 후에 당신은 무엇을 할 건가요?'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삶은 고작 100년을 다 채우지 못한다. 이 짧은 삶에서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우울해하며 보낼 시간이 있을까. 항상 나에게 근심과 걱정을 가져다주는 문제들의 원인을 찾다 보면 결국 누군가는 원망하고 탓하게 될 수밖에 없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누군가를 탓하는데 시간을 쓰기보다 문제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남에게 보이는 나를 항상 신경 쓰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특히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혹은 동료에게 항상 평가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욱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는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 안의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만족을 아는 자가 부자'라고 하는 말처럼 남들이 사는 모습을 흉내 내며 살려고 하지 말고 나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야 진정한 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에서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옆에 있어줘서 고마운 사람이 누구인지 항상 생각해보고 그 소중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
'쓸모'로 판단하지 말자는 구절을 읽고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만물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사라졌다 생기고, 채워졌다 비워지는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은 나. 3개월간 장자와 함께하며 감동하고 깊이 생각하고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특히 코로나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아 더욱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