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대 사람들은 브로콜리를 먹을 때면 항상 '브로콜리 너마저'를 생각한다. 그런 '브로콜리 너마저' 보컬 덕원이 TV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에 출연했다. 우리의 지친 퇴근길을 위로해줬던 소중한 음악을 하던 아티스트가 더 이상 대중들에게 잊히기 싫어 이런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리고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십 년 전 홍대로 같이 브로콜리 너마저의 공연을 보러 다니던, 정확히 말하자면 그 공연에 나를 데리고 갔던 친구에게 세월이 무상하다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브로콜리 너마저는 꾸준히 앨범을 내고 있었고, 매해 연말이면 공연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 친구는 다양한 일을 하며 아직 인디씬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친구다.
한때 인디씬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축에 속했던 브로콜리 너마저. 현재는 그때의 영광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을 듣지 않고, 찾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브로콜리 너마저가 노래하는 감성이 지금의 청춘들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 패션과 음악만큼 빠르게 유행하는 스타일이 변하는 분야가 또 있을까. 그렇다 보니 그때의 청춘들은 팍팍한 삶에 치여서, 지금의 청춘들은 낯설어서 그들의 노래를 듣지 않는 것이다.
그때의 청춘인 나 역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을 듣고 싶은 날이면 10년 전에 들었던 음악을 한 두곡 찾아서 듣는다. 지금 그들이 어떤 음악을 하는지는 관심 없이 그냥 그 시절의 감성과 기분이 그리워지는 날에 내 귀에 익숙한 노래를 듣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춘들의 불안한 감성과 사랑을 노래하는 브로콜리 너마저가 청춘들이 듣는 노래를 계속 만들고자 한다면 현재의 청춘들의 감성을 담은 스타일로 바뀌어야 하는데, 지금의 청춘들의 감성은 하루가 다르게 변덕스러우리 만큼 빠르게 변한다. 세상이 급변하기 때문에 이들의 마음도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어려운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허무한 결론에 이른다.
이 상황을 40대인 우리들에게 대입해보면 40대의 사람들은 더 이상 한겨울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10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회사에 입사한 MZ세대들을 이해하고자 '90년대생이 온다'를 시작으로 다양한 책을 읽지만 실제로 그들의 이야기에는 고개를 절로 흔든다. 그저 모든 현상에 내가 '구려진 생각'을 하는 것을 모르고 변화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이해할 수 없다고만 말한다. 내가 보낸 카톡에 하루 뒤에 답하는 MZ세대에게 카톡이 어떤 의미인지는 고민해보려고 하지 않고 요즘 애들은 예의 없다고, 버릇없다고만 말한다. MZ세대에게 카톡은 문자 메시지나 E-mail 같은 너무나 공식적이고 격식을 갖춘 소통 수단이라고 한다. 내가 보낸 카톡을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언제 확인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실시간 소통이 어려운 매체이다. 대화의 대부분을 의성어로 주고받는 이들에게 잠깐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는 데 답을 기다리는 스트레스까지 받고 싶지 않고 지금 바로 답장이 가능한 상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페이스북 메신저가 40대들이 문자보다는 잡담을 나누는 가벼운 매체라고 생각하는 카톡을 대신한 지 오래다.
이제 답은 한 가지다. "이제 세상은 선과 악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시대다. 사람은 매력적이거나 지루하거나 둘 중 하나다."(오스카 와일드) 구려진 나를 인정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지루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작은 변화라도 시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