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되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기회가 줄어든다. 보통 회사와 집만 오가던 사람들에게 코로나 이후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그나마 있던 몇 안 되는 친구들도 결혼과 육아를 핑계로 연락이 뜸해진다. 실상은 나이가 들면서 가치관이 뚜렷해지고, 각자의 취향이 생기면서 그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을 어느 순간 견디기 힘들어지면서 연락하기가 꺼려지는 것일 수 있다. 하는 일이 다르고, 사는 지역이 다르고, 생활 방식이 다르고, 먹는 것이 다르고, 모두 다 다른 것 투성인데 아무리 오랜 친구라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솔직히 없을 수밖에 없다. 가끔씩 만나서 듣는 조각조각의 이야기로 현재 서로의 고민들을 진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서로 처해진 상황이 다르다 보니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나도, 내 친구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참 난처하다.
언젠가부터 친구들을 만나면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만 이야기하다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아니면 우리가 아는 공통의 인물 근황을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그 선배는 제약회사 전무가 되었다며, 친구 누구는 최근에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며, 그때 그 선배랑 누구랑 사귀고 있었던 게 맞다며… 오직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이들뿐이어서 계속해서 이들을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인 빛깔의 석양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사진을 찍다가도, 살면서 이렇게 멋지게 해가 지는 순간을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있겠냐며 대화를 멈추고 친구들과 지는 해를 함께 바라본 날이 있다. 우리가 만나 1박을 한 대전에 새로 생긴 40층짜리 호텔은 석양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뷰를 갖고 있었다. 스무 살 학보사 기자로 만나 매일 밤을 새우며 꼬박 일 년 반을 붙어있던 친구들. 서른이 되던 해에 호텔에서 연말 파티를 하며 이제 어른스럽게 매년 이렇게 연말을 함께 보내자던 약속은 12년 후에나, 그것도 찌는듯한 더위가 시작된 한여름 6월에 지켜졌다.
친구 셋이 이렇게 같이 만나기가 어려운 일인가 싶지만, 어렵다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각자의 삶은 우리의 전공 - 환경공학, 고고미술사학, 정치외교학 만큼이나 너무도 달라졌고, 현재의 고민들 또한 우리가 사는 곳 - 경북 구미, 강원도 양양, 그리고 서울만큼이나 멀어져 있다. 올해 첫째를 초등학교에 보내며 학부모가 된 친구, 코로나 시국에 어렵게 결혼해 이제 시험관을 시작한 친구, 그리고 아직도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쫓아 꿈을 찾고 있는 친구. 아마 지금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면 만나 지지 않을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다시 한자리에서 같이 만나기까지 12년이 걸린 것일 수도, 그래서 만나는 장소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셋의 중간쯤 대전이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일들을 추억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지금의 고민들을 온 마음을 다해 들어주고 앞으로의 날들을 응원하는 사이. 그래서 더 좋은 친구들. 이제 우리는 적어도 오십이 되기 전에 오늘 나눠가진 손수건을 손목에 묶고 다시 만나자는 촌스러운 약속을 남기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이 글을 쓰며 아직도 내 나이라고 믿기지 않는 마흔두 살에 더 믿기지 않는 오십 살을 이야기하지 말고, 좀 더 우리가 함께 했던 엉성했지만 즐거웠던 스무 살 때 이야기를 나눌 걸 그랬나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우리 나이가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