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레나, 용감한 여성들의 꿈 집결지(이옥정 구술, 엄상미 글)
“우리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간다.” 우리 삶은 똑같은 일이 반복되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라고 신부님이 설명해 주었다. "예수님이 오시는 사건을 우리는 해마다 조금씩 좀 더 나은 태도로 맞이한다. 어머니가 태교하면서 아기를 기다리듯이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조금씩 하느님 앞으로 다가갈 수 있다." 다가오는 성탄을 맞이하며 나는 신부님의 강론을 가슴에 담아두었다.
미사 후, 가톨릭 여성 연합회가 각 봉사 단체에 기금을 전달하는 행사가 열렸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빛과 소금으로 살라”고 마태복음 5장 13-16절에서 가르치신다. "세상은 고통스럽지만 아름답다"라고 어느 작가는 수상 소감으로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빛과 소금 같은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지 않은가. 탈북인, 성매매 여성, 박카스 할머니, 집 나간 청소년, 미혼모… 그리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들. 모진 고생 끝에 북한에서 탈출했고, 이제 자유와 희망의 빛으로 가득한 미래를 얘기하는 여학생의 엄마 같은 정현희 수녀님. 돈 때문이라기보다 외로워서 지탄받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박카스 할머니들을 찾아가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는 '막달레나 공동체' 이옥정 대표. 부모의 폭력과 가난을 피해 도망쳐 나와 갈 곳 없는 청소년을 위한 쉼터를 만드는 '서울A지T' 은성제 신부님.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서 외로움과 가난으로 고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환한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눈물이 핑 돌도록 감동적이었다. 다음에는 그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막달레나 공동체' 이옥정 대표가 문애현 요한나 수녀님과 성매매 지역에서 일하는 여성과 함께한 지 올해로 40년이 되었다. 성매매 집결지는 2004년 ‘성매매 특별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과 2016년 헌법재판소의 자발적 성매매 처벌 합헌 결정으로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전국에 12곳이 남아있다. 한때 유명한 성매매 지역 중 하나였던 용산 집창촌의 주민으로 살았던 이 대표와 지금은 돌아가신 미국인 문 수녀는 '환상의 커플'처럼 잘 맞았다. (《막달레나, 용감한 여성들의 꿈집결지》에서) 그들은 ‘막달레나 공동체’를 꾸려가면서 갈 데 없는 여자들을 데려와 김치와 밥을 먹이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이 불우한 가정에서 폭행당하고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몸을 지키지 못한' 죄인이 되었다. 간신히 집에서 탈출했지만, 사회에서도 보호받지 못했다. 어린 소녀를 노리는 마수는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었다. 국가가 운영하는 여성 수용시설에서는 윤락 여성을 ‘교화’한다면서 오히려 그들의 인권을 침해했다. 고립되어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점점 무기력해졌다. 빚은 쌓이고, 약과 노름에 빠져 현실을 외면했다. 누군가는 그들이 쉽게 돈을 벌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니 몰랐다. 이 대표와 문 수녀는 그들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강요하지도 않았고, 세례를 받으라고 닦달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환영하고, 밥을 먹였다. 수용소에 잡혀간 여자들을 간신히 빼내고, 그들이 다른 일을 찾아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하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나는 막달레나 공동체가 30년 동안 수많은 일을 겪었던 용산 쉼터를 마감하고, 합정동에 이사 갔다가 자리를 잡은 은평구 대조동의 아담한 주택에 찾아갔다. 그들에게는 처음 생긴 집이었다. 작은 마당에는 푸성귀 밭이 정갈했고, 키 작은 나무에는 빨간 앵두가 다닥다닥 열렸다. 공동체 언니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그들은 다음날 자신의 인생을 담은 작은 책을 소개하는 북토크를 앞두고 상기 된 모습이었다. 이 대표는 지금 나온 따끈한 책이라며 내게 세 권의 소책자를 주었다. 책 속에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그들의 이야기와 틈틈이 찍은 사진이 담겨있었다. 지금은 자신만의 김포 아파트에서 혼자 살거나 혹은 부산 바닷가에서 가족과 살고 있다는 언니들은 친정에 와서 피붙이들과 이야기할 때처럼 편안해 보였다.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맘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몹쓸 과거는 그들의 현재를 아직도 옭아매고 있었다. 예수님은 새로 태어남을 강조하시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했다. 창녀였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막달라 마리아, 마태오와 자캐오 같은 세리, 바오로 사도가 된 사울.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잘 듣고 부활한 '모범' 사례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살던 대로 산다. 무언가를 바꾸고, 개혁하려면 엄청난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단 하나의 습관을 바꾸기도 얼마나 어려운가. 그들은 불행한 처지를 탓하지 않고 분연하게 일어나 바오로 사도가 눈을 뜨듯이 삶을 바꾼 여전사들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거지 같은 편견은 그들의 아문 상처를 잔인하게 헤집는다.
이 대표에게 이 사회에 더 바랄 것은 없는지 물었다. 그녀는 “40년 동안 수입원 없이 이 일을 하면서 물질로 부족함이 한 번도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음식이 필요하면 항상 누군가 가져다주었고,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기적처럼 돈이 들어와 부족한 예산을 채웠다. 세상을 좋게 하는 뜻이 있으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일어나는 법이다. 공동체 식구들은 믿음과 희망을 품고 일을 해나갔다. 문 수녀님이 고령으로 고향으로 떠난 이후, 이 대표 혼자서 모든 일을 하기가 벅차지만, 후원금으로는 인건비를 지출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뜻있는 젊은이들이 박봉으로도 함께 일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요즘 아카이브와 치유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행하고 있는데 그들이 도와주어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남자들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용산 집창촌에는 총각 '딱지'를 떼준다고 아들을 데리고 오는 아버지도 있었고,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유명한 사람들은 비밀이 유지되는 곳이라며 찾아왔다. 단속에 걸리면 남자들은 남자라고 당당했고, 여자들만 잡혀갔다. 인간은 모두 욕망이 있는데 왜 남자의 욕망만 떳떳한 것일까. 우리는 왜곡된 성문화와 성교육을 비판했다. 남자에게 당한 여자는 다시 똑같이 다른 남자에게 되갚기 위해 또 다른 윤락의 현장을 찾는다. 악은 저급한 욕망을 타고 교묘하게 반복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야기하며 깨달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번듯한 책으로 낸 여자들은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더 자신감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이 대표는 송두리째 사라진 그들의 젊음을 보상하기 위해 놀러 다니면서 추억을 쌓고 자랑거리를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성모 성지에서의 특별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언니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마당에서 딴 앵두가 맛있다고 했더니 언니 한 분이 인심 좋게 한 봉지 싸주었다. 곱게 간 콩물이 부드럽고 고소했다. 종로 상황이 시급해서 어렵게 마련한 이 집을 정리하고 현장으로 이사해야겠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세상이 변하고 좋아져도 막달레나 공동체가 할 일은 여전히 많아 보였다.
이번 달에도 사랑마트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팔았다. 물건이 하나씩 팔릴 때마다 절망에 빠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불볕더위를 잊었다.
7월 22일 막달레나 공동체의 40주년 행사가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 열렸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언니들이 손님을 맞이했다. 서상범 주교님과 여러 신부님이 주례한 미사를 드리고, 짧지 않은 세월을 담은 짧은 동영상을 보았다. 이옥정 대표는 세상을 떠난 문 수녀님이 보고 싶다고 울먹였다. 꽃이 만발한 제대에는 문 수녀님과 그들과 고락을 함께했던 서유석 신부님이 빙긋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