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깃든 풍경

60산 정선 백운산(2022년 9월)

“풍경의 장엄함도 우리 몸 어딘가에,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진 채 깃든다.”-김영하의 ≪오래 준비해 온 대답≫


정선 백운산 정상에서 동강의 옥색 물이 휘몰아쳐 흐르는 모습을 보고 느닷없이 눈물이 났던 것은 가파른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와서인지, 작가의 말대로 장엄한 풍경은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풍경은 나의 몸 어딘가에 깊이 스며들어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르는 눈물이 차오르게 했다. 여름이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산에서 나무는 아직 젊어 푸르렀고, 강물은 나무와 경쟁이라도 하듯 더 짙은 푸른색으로 흘렀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구불구불한 산길에 들어서자, 푸른 머리채 같은 강이 바로 나타났다. 동강은 산을 외면하며 요리조리 피해 물길을 냈다. 직선으로 흐르는 도심의 강에 익숙해서 유려한 곡선의 물길이 낯설었다. 석회질이 섞여 고려청자의 비취색을 띠는 물색은 더 낯설었다. 그동안 내린 잦은 비로 불어난 강은 바위를 만날 때마다 하얗게 물결을 만들며 풍부한 수량을 뽐내면서 흘렀다.


산꼭대기에 흰 구름이 걸려 있는 백운산(白雲山)은 남한에만 50여 개가 있다. 정선에 있는 백운산은 조양강과 지장천이 만나는 동강의 한가운데 있다. 동강을 바라보기 위한 백운산(882.5m)의 산행은 만만하지 않았다. 오르막은 오르막대로, 내리막은 내리막대로 평평한 길이 없었다.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가면 쉽다고 산행 대장이 말했지만, 전에 와 본 친구가 좀 어려워도 풍경을 보며 내려가는 길로 가자고 했다. 암반 지역이라 추락 및 낙석의 위험이 있다는 경고성 팻말이 자주 나타났다. 하산 길 옆으로 낭떠러지가 아찔하게 떨어졌다. 우리는 한발 한 발 내딛고 숨을 고를 때마다 휘영청 하게 휘감으며 돌아가는 동강이 나타나면 탄성을 지르며 고통을 잊었다. “풍경의 장엄함이 몸에 깃드는” 순간이었다. “고통이 인간 삶에서 더 본질적”이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정말 고통을 견디고 감수하면 행복이 오는 걸까. 절경을 온몸으로 느끼려고 험한 길을 택해 무사히 내려왔다는 자부심이 ‘행복’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산은 어떤 철학자보다 우리를 잘 가르친다.


다음 날 다리에 묵직하게 올라오는 근육통을 즐기면서 다시 한번 “내 생명의 일부가 된 풍경의 장엄함“을 떠올렸다. 나의 몸 전체가 동강의 옥색 물을 타고 떠다녔다. 현란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도시에 돌아와서도, 노곤함에 깊은 잠을 자고 나서도 동강의 요염한 자태가 사라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