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산 주왕산 (2022년 11월)
높은 산에 가기로 하면 한편 설레지만, 한편으로는 겁이 난다. 산길이 험하지 않을까, 춥지 않을까 걱정이 될 때, 미리 동영상이나 사진을 찾아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집 떠나기가 싫으면 사진이나 영상으로 대리만족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가서 보면 산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르다. 2차원의 세계에서 3차원의 세계를 온전히 느끼기 어렵고, 자연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영상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우라는 ‘숨’ 혹은 ‘기운’이라는 뜻이다. 성스럽고 고귀한 분위기를 지닌 사람이나 예술 작품, 혹은 자연을 보면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것처럼 경외심을 갖게 된다.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있는 주왕산(721m)의 암산과 협곡, 폭포가 만든 동굴과 물줄기는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지게 아득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우라가 사라진 ‘복제 시대’라지만, 산세는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품고 있다.
오르막은 평이하게 이어졌다. 유난히 푸근한 초겨울의 햇살이 숲속으로 쏟아져 흙길은 폭신했고 순한 경사로에는 계단이 놓여있었다. 잎을 몽땅 떨어뜨린 나무는 갑자기 드러낸 나신을 부끄러워했고, 바닥에는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이파리가 마르며 구수한 향기가 퍼졌다. 나무 아래에서 아직도 고운 색을 잃지 않고 수북하게 쌓인 낙엽 위를 걷는 정취를 만끽하기에는 가장 적기라고 위안하며, 방금 끝나버린 화려한 가을 산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아주 오래전(중생대 백악기) 화산 분출로 생겨나 세월의 힘으로 깎인 바위산이 다 버리고 겸손해진 나무 덕에 도드라져 보였다.
정상인 주봉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은 길게 이어지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계단을 이루어 층층이 떨어지는 폭포, 폭포가 만든 동굴, 보석같이 영롱한 계곡의 소(沼), 100m가 넘는 바위 사이에 난 협곡의 길, 그리고 산신령이 있는 동굴 암자. 가을 가뭄에도 폭포는 힘차게 떨어져 웅덩이에 머물면서 커다란 에메랄드처럼 빛나다가 또다시 떨어졌다. 오랜 세월 계곡물이 만든 동굴은 포효하는 짐승의 시커먼 입 속 같았다.
화산 분출 후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돌인 응회암은 잘 부수어진다. 응회암으로 된 거대한 돌산은 비와 바람에 깎여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탄생하였다. 하산길에서 만난 높은 바위에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개를 꺾어 봐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바위 급수대에는 왕이 되고자 했으나 실패한 신라인이 지은 대궐이 있다. 시루봉에는 도사가 도를 닦았고, 학소대에는 백학과 청학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 당나라에서 도망 와서 숨어있다가 재기하려고 칼을 갈던 주왕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로 세수하러 나왔다가 신라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는 아직도 깊은 협곡의 석굴 주왕굴을 떠나지 못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소원을 딱 하나만 들어주는 산신이 되었다. 죽을 때까지 욕망을 버리지 못했던 인간의 마지막 은신처는 깊은 어둠에 싸여 신비로웠다. 주왕처럼 욕망이 그득한 나도 딱 한 개의 소원을 빌었다.
우리는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나타나는 장엄한 자연의 작품에 감탄했다. 주왕굴 속에 있는 주왕 산신 부조나 그 앞에 줄지어 걸려있는 부적과 소원들, 말도 되지 않는 옛날이야기가 이 산에서는 정말 일어난 일 같았다. 발터 벤야민이 사진 기술이 생겨난 이후 예술에서 사라졌다고 말하는 ‘아우라’ 때문일까. 기술의 발달로 복제품이 원본보다 더 보기 좋아진 시대에 산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감각을 일깨우는 ‘아우라’를 선사한다. 기술이 없던 시절의 사람들은 고된 삶을 위안받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아우라’가 가득한 산을 찾았을 것이다.
‘달기 약수’와 약초를 넣어 주왕산의 바위굴처럼 새카만 백숙이 우리의 감각을 다시 한번 자극했다. 산행에 자신 없었던 친구나 다람쥐처럼 산을 날아다니는 친구 모두 편안한 산행과 눈요기에 만족해서 뒤풀이 자리에도 흥이 가득했다. 어떤 친구들은 상경길 내내 지치지 않고 버스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를 자장가 삼아 자다 깨다 보니 불빛이 현란한 도시에 와있었다. 아우라는 사라지고 욕망만 차 있는 도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