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산 대난지도 섬산(2022년 12월)
도비도 항에서 소난지도를 거쳐 대난지도를 가는 배는 겨울에는 오후 1시나 되어야 출발한다. 서울에서 일찍 출발해서 근처 삼길포항에 도착했을 때 섬으로 가는 배가 떠날 때까지 주어진 시간이 많았다. 아침을 먹기도 이른 시간이라 서산 ‘아라(바다)메(산)길’ 일부인 삼길산 전망대로 올랐다. 사방으로 예전에 바다였던 땅이 펼쳐졌다. 경작지는 네모반듯했고, 화력 발전소 단지가 거대했다.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숱이 많은 여자의 하얀 머리카락처럼 휘날렸다. 수확을 마친 논은 평온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바닷바람이 무시무시하게 불었지만, 100m가 조금 넘는 산은 포근했다.
최근에 친구는 환갑 기념으로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왔다. 약을 조금씩 먹어가면서 올라가면 3천 미터 이상에서도 고산병이 들지 않는다는 것, 셰르파가 한국 음식을 잘해서 생일날 산에서 미역국도 먹었다는 것, 산 밑 포카라에서는 반 팔을 입을 만큼 덥지만, 밤이나 산 위는 매섭게 춥다는 것, 롯지에서 숙박할 때는 찬물밖에 없어서 몇 날 며칠 씻지 않고 버티어야만 한다는 것(찬물로 세수하면 금방 동상이 걸리기 때문에)…. 낮은 섬 산에서 한라산의 두 배 이상 높은 설산을 상상할 수 없어 친구의 이야기는 멀고 멀게 들렸다.
살아있는 꽃게를 잡아 만든 탕에는 다른 양념이 들어가지 않아도 맛있었다. 우리는 주황색 알과 통통하고 하얀 살이 비집어 나오는 게를 정신없이 먹었다. 무뚝뚝한 식당 사장님은 미처 김치까지 손을 대고 있지 않은 우리를 보고 “김장 김치예요”라고 한마디하고 지나갔다. 알타리와 배추로 만든 김치가 잘 익어서 꽃게탕과 잘 어울렸다. 뜨끈하고 시원한 찌개 한 그릇과 곰삭은 김치를 먹으면서 우리는 황량한 계절에 낯선 섬을 찾아온 이유를 찾았다고 좋아했다.
소난지도와 대난지도는 다리로 연결되었다. 원래 소난지도에 내려 한 바퀴 돌고, 다리를 건너 대난지도를 도는 여정이었으나 배가 늦게 와서 대난지도만 걸었다. 작은 섬에 육지 쪽과 서해 쪽으로 길고 하얀 모래사장이 두 개나 펼쳐있다. 수도권에서 비교적 가깝고, 배로 30분 거리라 여름에는 피서객들이 많았지만, 팬대믹을 견디지 못한 펜션들이 허물어져 흉물스러웠다. 식당, 숙소, 카페 모든 영업소는 문을 열지 않고, 얼마 되지 않은 주민들도 농한기라 그런지 보이지 않았다. 죽음에 가깝게 침울한 섬이 여름이 되면 새싹이 돋듯이 살아날지 괜한 걱정을 했다.
낮은 산이라도 망치봉(119m), 일월봉(105m), 국수봉(120m) 같은 봉이 많아서 오르락내리락하는 품이 들었다. 인적도, 들짐승의 흔적도, 새마저 울지 않는 섬 산은 바다를 둘러싸고 의연하게 산줄기를 이어갔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도 산길은 버젓하게 이어졌고, 가끔 길이 아닌가 싶어도 바다를 향해 방향만 잡으면 저절로 길이 보였다. 두 개의 길고 넓은 해변 모래밭에는 잔잔한 파도가 밀려와 마른 모래를 적셨다. 섬의 겨울 해변은 ‘잊혀진 여자’처럼 적적하고 쓸쓸했다.
마지막 산을 남겨놓고 다시 올라가기 지루해서 임도로 내려와 걸어 와보니 배가 떠날 시간이 좀 남았다. 선착장에는 식당과 편의점을 하는 가게가 딱 하나 열려 있었다. 매운 바닷바람을 피하려고 들어서니, 무뚝뚝한 충청도 주인 부부는 들어오라는 얘기도 하지 않는데 고운 옷을 입은 강아지가 곰살맞게 꼬리를 흔들었다. 우리는 웬만한 도시의 카페에서 파는 커피만큼 풍미가 좋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따뜻한 바닥에 앉아 배가 들어오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비수기에도 문을 열고 커피를 내려주는 가게가 있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존재는 낯선 섬을 무심하게 방문하는 것처럼 순간적이다.’라고 말하며 누구보다도 격정적이었던 삶을 마쳤다. 대난지도는 죽음처럼 고요하고 외로워서 존재했던 모두가 사라질 것 같은 섬이었다. 나는 이 ‘낯선 섬’을 쏘다니면서 아인슈타인처럼 나의 존재가 얼마나 순간적인지 생각했다. 나는 보잘것없어도 섬에 두고 온 이야기는 영원히 반짝이지 않을까.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꽃게탕의 맛과 금빛 모래밭, 가물가물하게 이어지는 섬 산의 오솔길, 오아시스 같은 선착장 카페의 뜨거운 커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