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산 방축도(2022년 12월)
“훌륭한 작가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은 더 말하지 않는다” 발터 벤야민은 ‘글을 잘 쓴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설이 내린 섬 산을 걷고, 눈 맞은 섬이 푸른 바다 위에 하얀 모자처럼 가볍게 얹혀 있는 풍경을 보면서 머릿속이 눈처럼 하얗게 되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가 훌륭한 작가는 아니라도 “생각하는 것 이상 더 말하는 것”이 두려워 이번 여행에 대한 글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섬은 방문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 배가 뜨지 못하거나, 여객선표가 없거나, 팬대믹 때는 주민들이 입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까탈스러운 섬이 우리에게는 은혜를 베풀었다. 군산시 고군산도에 있는 방축도에 가기로 한 전날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릴 만큼 눈이 많이 왔는데, 당일에는 슬그머니 해가 떠올랐다. 바다까지 잔잔해져 근해의 섬을 가는 배의 출항이 가능했다.
길고 단단하게 바다를 막아선 새만금 방조제를 지나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를 건너 장자도까지 예전에는 배로 다니던 길을 차로 지나갔다. 장자도항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낚싯배를 타고 방축도로 향했다. 작은 선실밖에 없는 배는 파도에 부딪히면서 육중한 소리를 내면서 씽씽 날았다. 손을 뻗으면 출렁이는 바닷물이 닿았다. 차갑고 맑은 바람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갔다. 아찔하게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배는 바다 위를 아슬아슬하게 떠서 달렸다.
눈이 오긴 정말 많이 왔나 보다. 온통 눈을 뒤집어쓴 방축도는 하얗게 고요했다. 눈이 없는 유일한 곳인 관광 안내 대기소에서 아이젠을 등산화에 끼었다. 주민 할머니 한 분이 우리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낚싯배를 빌려 왔다고 하니 뭐 그렇게까지 오느냐 하는 표정으로 보면서 눈이 많이 쌓였으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거의 무릎까지 쌓인 눈길을 먼저 지나간 일행의 발자국을 밟으며 걸었다. 러셀(눈을 헤쳐 나간 사람)이 남자라 보폭이 커서 발을 옮기기가 힘겨웠다. 눈을 짓밟는 뽀드득 소리만 날 뿐 소리도 색도 무(無)였다. 가끔 새카만 새끼 염소가 울어서 적막을 깼다. 태양은 눈이 부시게 빛나 바다 위에 황금빛 윤슬을 만들었다. 아 눈이 덮인 섬을 보여주다니 단순히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축복을 받은 날이었다. 우리는 근처의 섬 말도가 보이는 팔각정에 잠시 앉아 커피를 타서 마시면서 방문을 허락한 섬에게 감사했다.
방축큰산(127~129m)에는 눈을 뒤집어쓴 청송 가지가 내려앉았고, 동백이 꽃을 피웠다가 갑작스러운 추위에 새파랗게 얼었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키가 큰 대나무도 여기저기 쓰러졌다. 눈길을 헤쳐 가느라 힘들었지만, 진기하고 별난 순백의 세상을 구경하느라 얼마나 왔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바닷가에 있는 ‘독립문 바위’를 보라고 했다. 하얀 아치형 바위 가운데로 보이는 바다가 파란색 문 같았다.
간신히 만들어 놓은 길은 바람이 불어 눈으로 덮였다. 우리는 다시 길을 만들면서 항구로 걸어갔다. 돌아가는 배에서는 갑판에 앉아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섬과 바다가 나와 함께 평온해진 바람을 같이 따스하게 맞아주었다.
낚시로 잡은 생선회는 유난히 쫄깃하고 신선했다. 난로를 같이 쬐는 아저씨들이 자신들이 직접 잡은 생선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멸치를 많이 잡았는데 이제는 우럭이나 광어를 잡는다고 말하는 그들의 얼굴이 방금 잡아 올린 생선처럼 반짝였다. 식당 한쪽에 50년 전, 그들의 부모님이 멸치를 잡아 삶았다는 커다란 가마솥이 있었다.
선유도 다리를 건너 선유봉을 오르려다 눈길이 위험해 보여 해변을 걷기로 했다. 명사십리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해변은 길고 넓었다. 물이 멀리 나가서 물기를 머금은 갯벌이 거울처럼 반짝였다. 뜨거웠던 여름의 추억을 품은 겨울 바닷가는 외로워서 진실하게 보였다. 단단한 운동장 같은 모래밭을 우리는 강아지처럼 뛰어놀았다. 바다는 덩달아 신이 나 출렁였다.
눈은 생각도 하얗게 만들어서 나는 가끔 검은 염소 같은 점을 찍어 숨 막히게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했다. 눈이 온 섬 산을 보고 흥분해서 생각하는 것 이상을 쓰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훌륭한 작가는 아니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