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산 울진 응봉산 (2023년 1월)
누군가 차에서 담배를 피우고 창밖으로 꽁초를 휙 던졌다. 말끔하게 끄지 않은 불씨는 마른 잎을 태우면서 산으로 번졌다. 산불은 9일 동안이나 나무를 태웠다. 조선시대부터 몇백 년을 살아오던 8만여 그루의 노송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재가 되었다. 담배꽁초를 버린 사람은 자신이 무심코 한 행동이 얼마나 큰 살상을 했는지 모를 것이다. 산불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음을 정말 몰랐을까. 남들이 모른다고 죄는 없어지지 않고 그 수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수치스러움은 그런 것이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끄러움을 오로지 나만이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부끄러움, 아니 에르노≫
반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 사람의 실수로 타버린 산에는, 흉측하게 화상을 입고 살아남으려 애쓰는 나무와 이미 고사한 나무가 쓸쓸하게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경북 울진 응봉산은 바로 옆 산의 금강송 숲을 방어하는 전선처럼 불길을 막아내었다. 다행히 100년 넘은 소나무 숲은 안전했지만, 금강송을 포함해 참나무, 낙엽송 등 100만 그루 이상이 타버렸다. 죄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는 인간을 비난하듯이 줄기가 시커멓게 탄 나무들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의연하게 맞고 있었다.
해발 200m에서 시작하는 오르막은 완만했다. 재가 된 나무 둥치를 보고 안타까워하며 천천히 올랐다. 정상 1,000m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경사가 가파른 돌길을 걸어야 했다. 눈꽃 산행이라고 했는데 눈은 거의 없고 남쪽의 훈훈한 바람이 불어 땀이 났다. 기온이 급강하해서 추위에 익숙해졌던 우리는 봄날 같은 날씨에 당황했다.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급경사를 올라 보니 정상 부근에는 눈이 조금 남아있었다. 정상에 서니 울진의 바다가 하늘과 하나가 되어 푸르렀다. 화마가 지나갔어도 살아남은 나무가 많은지, 불길이 닿지 않은 곳인지 소나무 숲이 바다처럼 펼쳐있었다. 살아남은 나무가 눈물이 찔끔 나도록 고마웠다.
산불 때문에 내려오는 길이 폐쇄되어 올라간 길로 다시 내려오면 덕구 온천이 있다. 요양하러 혹은 쉬러 오기 좋을 만큼 조용하고 공기가 맑은 곳이다. 몇 해 전 참척한 친구가 아픈 아들을 데리고 와서 있었던 곳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다 키운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길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불길이 치솟을 때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가 느꼈던 고통보다 더한 투병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부모의 고통이 칼바람처럼 와서 꽂혔다. 누구보다도 가족을 위해, 친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친구인데…. 시간이 지나 산불이 지나간 산처럼 상처는 아물고 있지만, 나무줄기에 남은 새카맣게 탄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디선가 사고가 나서 귀경길이 한참 지체되었다. 점심 먹은 지가 오래되어 버스가 하차한 근처의 국숫집에서 저녁 식사를 맛있게 했다. 모두 ‘부끄러움’ 없이 자기 얘기들을 했다. 부끄러움은 남들이 알게 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솔직함이 된다. 나는 친구들의 속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솔직하지 못해 부끄러웠다. 산에서는 나무를 태운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 나무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는데 오늘은 온종일 마음에서 ‘수치’가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