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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yoonlee Jul 16. 2024

함께 살기

프리힐리아나

프리힐리아나로 가는 길, 운 좋게 승합차의 조수석에 앉았다. 창밖으로 동그라미 수형의 나무가 끝없이 이어져 정신이 혼미했다. 그라나다에 산다는 가이드는 이 길을 운전할 때마다 환 공포증이 생길 지경이라고 했다. 이 모든 나무에서 열리는 오렌지와 올리브는 얼마나 많고 맛날까. 세비야 호텔 조식 뷔페에 나왔던 과일도 달콤한 즙이 뚝뚝 떨어졌다. 이 나라 사람들은 땅과 하늘의 기운을 흠뻑 받은 농작물을 먹어 힘이 넘쳐서 어디서나 큰 소리로 수다를 떨고 아이를 많이 낳나 보다. 거리에는 애완견이 아니라 아기가 있는 유모차가 돌아다니고, 다부진 체격의 아이들이 말처럼 뛰어다녔다. 땅의 비옥함이 눈에서 몸의 구석구석으로 전해져 나도 스페인 사람처럼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토록 기름진 땅에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무어인(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이슬람계 사람)은 7백 년 동안 이곳을 차지하고 살다가 기독교 왕조에 정복당해 쫓겨났다. 왕족은 북아프리카로 갔지만,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떠나서 갈 곳이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은 산에 바위굴을 파고 들어가 숨어 살았다. 하지만 숨는다고 박해를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동화처럼 보이는 프리힐리아나 언덕의 골목에는 침략과 전쟁의 슬픈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갈길 언덕에는 얼룩 하나 없는 하얀 벽과 바다처럼 파란 문이 있는 집이 모여있다. 벌레가 싫어하는 제라늄꽃이 창가마다 붉게 피었고, 토분에 담긴 윤기 나는 초록 잎이 집 앞을 장식했다. 드문드문 타일 벽에는 정복자가 원주민을 어떻게 탄압했는지 글과 그림으로 보여준다. 알지 못하는 스페인어로 쓰였지만, 여자와 아이들이 줄줄이 묶여서 끌려가는 장면을 보면 당시 무어인의 비참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개종하거나 개종한척하는 사람을 빼고는 오랫동안 살던 고향을 다 떠나야 했으니 억울하고 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슬람, 기독교, 유대인은 서로를 존중하고 같이 살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프리힐리아나는 유대인의 시나고그, 이슬람의 모스크, 기독교의 교회가 공존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역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얀 마을’은 해맑게 아름답다. 우리는 한 사람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열려있는 창문으로 남의 집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동굴을 파서 지은 집인데도 실내는 넓고 큰 창으로 바다까지 시원하게 보였다. 목욕탕 같은 작은 수영장이 있는 베란다에서 수염 난 아저씨가 웃통을 벗고 고마운 봄 햇볕을 쬐고 있었다. 아, 론다나 프리힐리아나에서도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다. 몇 시간의 산책으로는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네르하를 거쳐 그라나다까지 가야 할 여정이 남아있었다. 유럽의 발코니라고 하는 네르하는 휴양도시이다.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느리게 걸어 다니고, 천천히 밥을 먹고, 가끔 고요한 지중해를 바라보는 곳. 우리는 해가 지는 바닷가를 잠시 걷고 다시 차를 탔다. 태양이 아직도 뜨겁게 바다 위를 어슬렁거리며 고운 색을 흩어 놓았다. 우리의 아쉬움을 아주 잘 이해한다는 듯이. 

그라나다로 가는 길 위의 새카맣게 검은 하늘 위로 버터 색 초승달이 선명하게 떴다. 이슬람인이 ‘진리의 시작’이라 여기는 바로 그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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