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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yoonlee Jul 16. 2024

종은 누군가를 위해 울리지 않는다

론다

스페인 역사에도 6.25 전쟁처럼 동족간 이념전쟁이 치열했던 적이 있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서로 자기 편이 옳다고 주장하며 '옳지 않은' 사람을 죽였다. 모두 같은 땅에서 같이 먹고 살던 이웃이었다. 독일이나 이탈리아, 소련 같은 강대국은 무기를 실험하려고 스페인 내전에 간섭해서 전쟁은 더욱 잔혹했다.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은 느닷없이 불붙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농기구 대신 총을 들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노란 장식 구슬처럼 초록색 나무에 달린 오렌지를 보며 세비야에서 아침 산책을 했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걷거나 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강행군으로 피곤했지만, 우리는 낯선 도시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하늘로 뛰어오르는 사진을 찍었다. 거대한 세비야 성당은 갓 나온 어린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다. 호텔 아침 식사는 과일과 갖가지 빵, 요구르트와 채소로 풍성했다. 다른 손님도 과일을 가져가길래 우리도 바나나를 챙겼다. 우리는 론다, 프리힐리아나, 네르하를 거쳐 그라나다로 도착하는 일정의 투어를 시작했다. 


헤밍웨이는 종군 기자로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다가 론다에서 머물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다. 소설에서 폭파하는 다리는 론다의 누에보 다리와 비슷하고, 영화도 론다에서 찍었다. 국토회복운동 이후 가톨릭의 새 주민은 무어인(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이슬람계 사람)이 지은 고지대의 요새였던 구론다와 새로운 론다를 연결하는 다리가 꼭 필요했다. 급하게 만들어 엉성했는지 얼마 만에 무너져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리고 4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들여 다시 만들었다. 폭은 넓지 않고 길이도 짧지만, 키가 큰 다리는 젊은이의 근육질 많은 다리처럼 튼실해 보였다. 협곡은 어질어질하게 깊은데다 굵은 폭포가 떨어져 바위에 부딪히면서 하얗게 부서진다. 협곡의 붉은 바위는 성을 지키는 무어인 용사처럼 무시무시하게 요새를 둘러싸고 있다. 

스페인 최초의 투우장 앞에는 실물 크기 소의 동상이 있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멋진 몸매의 투우사는 마타도르라 하지만, 그 전에 2명의 반데리예로가 작살을 꽂고, 2명의 피카도르가 말을 타고 창을 찌르고, 페네오라는 여러 명의 조수가 힘을 합한다. 이렇게 많은 전문가가 달려드니 아무리 힘이 센 소도 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잔인한 쇼를 카탈루냐 사람들은 혐오해서 바르셀로나에서는 투우가 금지되었다. 헤밍웨이도 투우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동물 학대라는 쟁점이 있지만, 이 경기가 인간의 열정과 광기를 체험하는 특별한 전통이라고 여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식당이 많은 거리에서 론다의 태양처럼 붉은 틴토 데 베라노를 마시며 이 지역에서 잘한다는 소꼬리 요리를 먹었다. 고지대라도 남쪽 지방의 햇볕이 따뜻해서 모처럼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식당 앞에 있는 신발 가게는 낮잠을 자러 가는지 문을 닫았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시에스타가 지방에서는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이념 대립으로 죄 없는 사람이 죽는 전쟁에 참여했던 헤밍웨이는 종은 특별한 누군가를 위해 울리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론다의 투명한 햇살을 받으며 오래된 ‘누에보 다리’를 건너 산책하는 외로운 한 사람이 멀리 보이는 듯했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인류 속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니 저 조종(弔鐘)이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그 조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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