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 뭐라고

제 68산 연천 고대산(2023년 2월)

주말인데도 북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한적했다. 황량한 2월의 들판에는 안개를 뒤집어쓰고 뿌옇게 찌푸린 집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다른 도로에는 흔한 번쩍번쩍한 휴게소도 없었다. 우리는 언젠가 통일된다면 한산한 이 길이 평양이나 함흥으로 가는 차로 가득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희망은 있지만 기약 없이 넓기만 한 도로는 더욱 쓸쓸했다.


한겨울의 강추위는 지나갔다고들 했지만,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지 날씨가 얼었다 풀렸다 했다. 서울에서 북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연천의 고대산에는 겨울에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염색하지 않은 친구의 머리처럼 희끗희끗하고, 차가운 공기가 매운 고추처럼 알알하게 뺨에 스쳤다. 나무는 근육이 탄탄한 키 큰 남자처럼 가지에 팽팽하게 기운을 품고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3개의 등산로 중 제2 등산로를 올라 제3 등산로로 내려오는 여정으로 걷기로 했다. 832m 정상까지 바위가 많은 가파른 오르막은 쉽지 않았다. 칼바위는 칼처럼 뾰족하고, 군데군데 얼음이 남아있어 조심조심 걸었다. 강추위와 폭설의 흔적이 남은 바위산이 펼쳐진 위엄있는 산세를 한고비 오를 때마다 가쁜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


함께 산행하는 친구들의 보폭이 제각각이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등산을 최근에 시작해서 숨을 헐떡이며 정상에 늦게 오는 친구들을 보며 몇 년 전 처음 산행할 때가 생각났다. 제일 늦게 숨이 차서 정상에 도착하면 친구들은 벌써 도착해 밥을 먹고 있었다. 그때는 산을 날다람쥐처럼 오르는 친구들이 놀랍고 부러웠는데 이제 나도 제법 빠르고 가볍게 산을 오르고, 경치를 감상할 여유도 있다.


대광봉의 팔각정, 삼각봉을 지나 고대봉 정상에 도착하니 뿌연 시야를 뚫고 산과 마을이 한가득 눈에 들어왔다. 군사 분계선과 가장 가까운 산이라 날이 좋으면 북녘땅이 보인다고 한다. 우리에게 가장 먼 나라 북한의 땅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이념의 극단에 선 하나의 민족은 긴 세월 동안 간격을 좁히지 못해 아직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 이념은 ‘인간’을 이기고 만 것인가. 선 하나 그어 사람을 나누어서 우리 땅을 산 위에서 경치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북쪽으로 난 길은 넓고 평탄하지 않았는가.

작가 정지아는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인 빨치산 아버지가 이념을 뛰어넘어 세상에 남긴 인간애의 발자취를 문상을 온 사람들을 통해 그렸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사회주의보다 더 강력한 것은 인간의 본성’임을 배웠지만, 3일간의 장례식 동안 딸도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따뜻한 사연을 알고 아버지가 사회주의자로서의 경계를 벗어난 ‘좋은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식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작가의 말처럼 “인간이란 이렇게나 미욱하다.”

작가는 평생 전향하지 않은 빨치산 출신의 한 인간의 고독했지만, 풍요로웠던 한 인생을 특유의 해학적 표현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딸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보편적인 삶의 이치를 깨닫는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것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직도 꽁꽁 얼어붙은 계곡을 따라 하산하여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철원의 허물어진 노동당사를 보았다. 한때는 전략적 요지였고 철원평야의 곡물로 풍요로웠던 도시에 세워졌던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잔재다. 철근 콘크리트 기둥과 총구멍이 뚫린 시멘트벽만 남아있는 폐허에는 과거 어느 시점의 영광이 스며있다. 이념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려주는 것처럼 건물은 잡풀 더미 속에서 스산하다. 이 땅은 여전히 헛된 이념으로 갈라져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데….

우리는 다시 남쪽으로 뻥 뚫린 길로 돌아왔다. 언젠가는 이 길에 남북을 오가는 차들이 가득할까. 현란한 도시의 불빛이 방금 다녀온 북쪽의 쓸쓸한 풍경과 대비되어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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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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