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산 북한산 백운대 (2023년 5월)
12억 년 전 북한산 지역에는 편마암이 두껍게 깔려 있었다. 그 후 중생대 쥐라기(약 1억 년 전)에 땅속에서 마그마가 굳어 화강암이 생겼다. 화강암은 치밀어 올라 편마암을 뚫고 들어갔고 두 암석은 미미했지만(1년에 1mm) 멈추지 않고 사이좋게 움직여서 북한산을 만들었다. 지금 산의 높은 봉우리는 허연 화강암, 낮은 지대는 짙은 회색 편마암이다. 화강암은 지금도 조금씩 깎이고 있어서 지질학자들은 2천 만 년 후에는 산은 사라진다고 한다.
북한산의 최고봉 백운대(837m)에서 보면 사방으로 기묘하고 웅장한 화강암 바위가 불뚝불뚝 솟아있다. 마치 오래 힘들게 운동해서 만든 근육을 자랑하는 남자처럼 보인다. 줄에 매달려 오르는 길밖에 없는 인수봉, 오리 모양 바위, 소나무가 약한 암반 사이를 파고들어 위태하게 자란 거대한 바위가 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백운대는 가까운 곳이니 갈 기회가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적극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아 가지 못했다. 정선 두위봉 산행이 취소되어 갑자기 일정이 비게 된 날, 친구들에게 백운대에 가자고 제안했다. 혼자서 가기는 자신이 없었다. 불광역에서 704번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정류장에서 내렸다. 백운대를 향한 비교적 짧은 길로 올랐다가 하산은 노적봉으로 가는 긴 코스를 택했다.
오르는 길은 짧지만 계속 가팔랐다.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었다. 하늘이 드러나는 곳에서 태양은 한여름처럼 지글거렸다. 진초록으로 가기 전 무르익은 진 연두색의 이파리가 햇볕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며 흔들렸다. 꼭대기쯤에는 뜨겁게 달아오른 바위만 있어서 더 더웠다. 발아래 거대한 도시 서울은 뿌옇게 형체만 보였다.
백운대와 만경봉, 인수봉은 삼각형을 이루어 삼각산이라 불린다. 대머리 같은 인수봉에 오르려고 사람들이 줄에 매달려 있었다. 백운대에도 계단이 있기 전에는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고 한다. 사람은 길이 없어도, 아니 길이 없으면 더 절실하게 오르려 한다. 이제 철제 계단과 지지대가 있는 백운대에는 매일 많은 사람이 올라 정복의 욕구를 채운다. 나는 인파에 시달리면서도 늠름한 자태를 잃지 않는 북한산 최고봉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붙잡고 사진을 찍었다.
내려오는 길은 편안했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힘들었는데 내려오면서 오히려 가뿐해졌다. 전망이 좋은 나무 그늘에서 도시락을 먹는데 새카만 개미가 음식 냄새를 맡고 몰려들었다. 하산하는 길의 좁은 계곡이 점점 넓어지더니 물이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넓은 암반에 앉아 시리도록 차가운 물에 발을 식혔다. 온종일 애쓴 발이 계곡에 오글거리며 사는 투명한 버들치처럼 편안해졌다. 여름 산행의 마무리는 탁족이다. 우리는 산악회 버스 시간에 맞추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는 산행에 만족하면서 찬물에서 실컷 놀았다.
가까운 곳에 엄청나게 높고 멋진 산이 있고, 같이 갈 친구가 있어 좋았다. 산에서는 친한 친구와는 더 친해지고, 잘 몰랐던 친구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다. 북한산을 100번도 더 갔다는 친구의 완벽한 가이드로 백운대 올라가기 숙원이 풀렸다.
“우리의 삶이 백 년을 넘지 못하고 비관에 빠지는 까닭은 인간의 인식은 그 인식만을 대상으로 삼지 못해 그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지”*
대여섯 시간의 고된 산행이었지만, 바위가 견딘 수많은 세월의 시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가늠하기도 어려운 긴 시간을 보낸 북한산의 큰 바위는 백 년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답답한 인식의 지평을 열었다. 나는 돌이 전해주는 시간의 무게를 느끼면서 아주 오래 살아 도를 깨우친 기분이 들었다. 10억 년 전부터 존재해 온 북한산의 바위를 디디고 선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한꺼번에 하나로 밀려와 산 일부가 되었다. 그것도 2천 만 년 후에는 산과 함께 사라지겠지만.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