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산 청화산(2023년 9월)
청화산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한 봉우리이다. 두 친구가 100번째로 오르는 산이었다. 그들의 열정과 에너지, 인내와 끈기가 어우러진 백산 완등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 산에 올랐다. 이미 여러 명의 친구가 이룬 노고와 추억은 날실과 씨실처럼 짜여 큰 그림이 되었다. 백산을 한 또 다른 친구가 그 여정을 담은 사진을 모아 플래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그 속에는 나도 있었다.
고추 축제가 한창인 충북 괴산은 모처럼 사람들이 모여 북적북적했다. 수확기를 앞두고 논과 밭에 농작물이 풍성하게 여물었고, 반듯한 농가 마당의 화단에 꽃이 이쁘게 피어 있었다. 차창으로 보아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부촌이었다.
늘재에서 시작하는 오르막은 정상까지 쉬지 않고 이어진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늦여름의 햇살이 화살대처럼 쏟아지고, 골짜기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거의 2km 이상 바위를 타고 급 경사길을 올라가면서 쓰지 않던 몸의 근육이 살아났다. 정상이 보일 듯 말 듯 보이지 않았다. “다 왔다”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산에서 하는 가장 큰 하얀 거짓말임을 안다. 밥풀 같은 꽃술이 입술 같은 붉은 꽃잎 사이에서 하얗게 빛나는 며느리밥풀꽃이 여기저기에서 말갛게 웃었다. 요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게 밥풀때기 몇 알 먹었다고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은 며느리는 꽃이 되어서 깊은 산에서만 자란다.
정상(984m)에서 우리는 두 친구의 100산을 시끄럽게 축하해 주었다. 친구들을 축하한다고 따라다니면서 등반하는 산의 개수가 늘어난다. 목표를 정하고 인증을 하지 않지만, 나의 산행일지도 100개에 다다르고 있다.
하산길은 둘로 나뉘었다. 플래카드를 만들어 오는 중책을 맡은 친구는 늦잠을 자다가 버스를 놓쳐 차를 몰고 헐레벌떡 와서 무리하지 않겠다고 하고, 다음날 중요한 가족 행사가 있는 친구도 있었고, 이미 한 번 다녀온 친구는 하산길이 지루하다고 했다. 그들은 올라온 길로 천천히 내려갔다. 나는 조금 더 산에 머물고 싶어 긴 하산길을 가기로 했다. 괜찮다면 조항산까지 갈 기세였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인지, 여름을 지나며 나무가 부쩍 자라서 그런지, 능선길은 나뭇잎으로 꽉 차서 간신히 혼자 지나갈 만큼 좁았다. 무르익은 나뭇잎이 애무하는 것처럼 팔과 뺨을 스쳤다. 나무는 여름을 보내는 아쉬움을 우리의 몸에 진하게 남겼다. 빽빽한 숲으로 산세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감질나게 산의 물결이 보여 눈과 가슴이 시원했다. 무량산, 눌의산, 성봉산, 서산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조항산. 거의 1,000m 높이의 산이 사이좋은 친구처럼 어깨를 맞대고 끝없이 이어졌다. 짙은 초록의 나무가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고 자라 산의 굴곡이 관능적으로 드러났다. 높은 곳에서는 중력이 약해서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아인슈타인의 법칙은 옳다. 해발 800m에 이어진 능선길에서 우리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좁고 완만한 길을 한참을 오르락내리락했더니 갓바위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조항산까지 750미터를 더 올라가야 했다. 나는 처음 기세와 달리 기운이 빠져 또 다른 산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김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며 조항산에 가겠다는 친구의 아쉬운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같이 하산하자고 했다. 먼저 내려간 친구들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같이 하산했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리더니 깊은 웅덩이를 이룬 계곡이 오아시스처럼 나타났다. 유리알같이 맑은 물이 떨어져 고인 소(沼)는 바닥이 훤히 드러났다. 더위에 지쳤던 우리는 물에 들어가 머리끝까지 시원함을 만끽하며 환호했다. 나는 올해의 마지막 물놀이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친구는 인생 마지막 물놀이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풍덩거리며 놀았다. 인적이 없어 고요했던 숲과 계곡이 함성과 물소리로 수선스러워졌다. 어떤 불순물의 위협도 없는 순수한 계곡의 물은 흘러 흘러 송면 저수지로 가서 모인다. 산이 호수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수지를 돌아가는 길 또한 물처럼 편안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 다리우스 왕의 비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아후라 마즈다는 위대한 신이다./ 그는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땅을 적재적소에 마련하시고/우리가 보는 저 높이 있는 하늘을 적재적소에 마련하시고/그 가운데 잠시 살다가 사라지는 인간을 적재적소에 마련하시고/그 인간을 위해 ‘고요’ 혹은 ‘행복’을 적재적소에 마련하셨다.…”
우리는 버섯전골이 구수한 식당에서 다시 한번 시끌벅적하게 축하했다. 친구들의 마음이 재기발랄한 삼행시와 노래, 덕담으로 전해졌다. 하늘, 산과 물이 있는 땅, 그 가운데에 존재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 그리고 그 보잘것없는 인간을 위한 행복이 적재적소에 마련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