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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yoonlee Jul 16. 2024

속되지만 성스럽게

몬세라트와 시체스

몬세라트는 가톨릭 4대 성지중 하나이다. 예루살렘, 로마, 산티아고보다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바티칸은 그곳에서 적지 않게 일어난 기적을 인정했다.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바르셀로나 근처에 있는 이 성지를 꼭 가고 싶어서 신자가 아닌 길동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지막 날의 여정으로 정했다. 

스페인에 도착해 첫 도시인 마드리드의 왕궁 투어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3월의 마드리드 봄바람이 겨울처럼 차가워서 밖에서는 기다리기 어려워 알무데나 성당을 들어가려 하는데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어느 노부부가 미사를 드리러 가는 모양새로 보여 따라가 보니 성당이었다. 번쩍번쩍한 제대와 화려한 성모님이 낯설었지만, 오랜만에 하는 긴 자유 여행을 앞두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성당에 들어와 있어서 따뜻했고 기도를 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 기도로 시작해서일까, 소매치기가 많다는 곳에서 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큰 차질 없이 숙소와 투어 일정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날에는 성지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이자 4대 복음의 저자인 성 루카가 만든 성모님 상은 바르셀로나 주교 성 에테레오가 스페인으로 가져왔다. 7세기 사라센 이교도가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했을 때 더 이상 버티기 힘든 기독교인은 이 성상을 몬세라트의 동굴에 숨겼다. 보물을 너무 깊이 숨기면 기억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성모님은 루르드에서처럼 빛과 소리로 순박한 양치기 아이들에게 나타나셨다. 신기한 일이 반복되자 마을 사람과 주교는 성상을 도시로 옮기려 했으나 무거워서 옮기지 못해 작은 성당을 세워서 모셨다. 나폴레옹 침공 같은 전쟁에 파괴되기도 했지만, 대성당(Abadia de Montserrat)과 베네딕토 수도원(Santa Maria de Monserrat abbey)은 뒷배가 된 산 몬세라트처럼 품위를 지키며 신비한 검은색으로 반짝이는 성모님을 모셨다. 성모님께 기도하여 일어난 크고 작은 기적도 있었다. 유리로 보호한 “라 모레네타”(검은 피부의 작은 것)는 바실리카 대성전의 높은 곳에서 순례객들의 방문을 받고 계시다.      

바르셀로나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평원에서 불쑥 솟아 올라온 거인 같은 6만 개의 분홍빛 봉우리가 아침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이름(montserrat)처럼 멀리서 보면 톱니 모양이지만, 내 눈에는 기도하는 수도사의 뭉툭한 손가락 같아 보였다. 노아의 방주가 저 꼭대기 어디쯤에서 멈추었을까. 엄청나게 높고 빠르게 이동하는 진흙탕물이 밀어닥쳐 형성되었다고 하는 몬세라트산은 대홍수가 실제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옮기기 어려운 성모님을 모시기 위해 지은 성당과 수도원은 그 거대한 산속의 작은 산처럼 눈에 띄지 않고 겸손하게 들어앉았다. 

우리는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한 게오르기우스 성인(Josep Maria Subirachs의 부조)의 눈빛이 부리부리하게 번득이는 광장을 지나 몇 겹의 아치문을 통해 성당으로 들어갔다. 검은 마리아를 참배하는 사람들의 줄이 길었다. 제대 뒤의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르는 좁은 길은 은으로 된 조각과 부조로 화려했다. 다음 사람을 위해 길게 머무를 수 없는 성모님 앞에서의 시간. 무릎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왕관을 쓴 성모님은 우아하고 거룩했다. 한 역사가는 “모든 시대에 죄인, 고통받는 자, 슬픔에 잠긴 자들이 몬세라트 성모님의 발치에 그들의 슬픔을 내려놓았고, 아무도 듣지 못하거나 도움 없이 사라진 적이 없었다”라고 썼다. 나도 찰나의 순간 떠올린 고통과 슬픔, 죄를 성모님께 봉헌했다. 까만 보석같은 얼굴은 수많은 기도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 어머니의 강건함과 자애로움으로 환하게 빛났다.

 나오는 길에는 또 간절한 기도의 촛불이 영롱하게 빛났다. 우리도 초 한 대에 감사를 담아 불을 켰다. 믿음이란 얼마나 속되고도 성스러운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아니고, 불쌍하고 가난한 이를 위해서 하는 기도가 아닌 고작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는 세속적인 기도는 성지와 성모님 방문으로 거룩하게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지난 열흘을 말없이 반추하면서 다시 한번 보잘것없어도 간절한 자신의 소망을 조용히 빌었다. 

거의 70도의 경사를 천천히 올라가는 푸니쿨라를 타면 7분 만에 몬세라트 1,000m 정상에 도착한다. 연일 이어지는 강행군 투어가 힘들어 우리는 어르신답게 편하게 산에 올라 수도원 카페에서 산 샌드위치를 벤치에 앉아 먹었다. 그리고 사방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걸어가 성모님을 발견한 해맑은 양치기 어린이들과 자연을 닮은 위대한 건축을 꿈꾸던 어린 가우디(몬세라트는 가우디의 고향이다)를 생각했다. 자연의 위대함을 넘어 신성함을 발견한 순수한 영혼이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우리는 그저 알맞게 부는 봄바람과 햇볕을 마주하며 가는 시간을 붙잡았다.      

시체스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해변 휴양지이다. 몬세라트 투어에 시체스를 서비스로 넣었나 본데, 며칠 전 지중해를 바라보는 그림 같은 해변 마을을 본 적이 있어서 오래된 좁은 골목이나 K드라마에 나왔다는 교회 같은 유적을 심드렁하게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지중해를 바라보는 식당 야외 테이블에 앉아 카탈루냐의 명물인 빠예야를 먹으면서 온전한 식사를 즐겼다. 이 나라를 떠나기 전 거의 마지막 만찬이라 와인도 한 병 나누어 마셨다. 커다랗고 순한 개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큰 소리로 수다를 떨었고 아리따운 아가씨와 잘생긴 청년이 조용조용 이야기하며 우리처럼 빠예야를 먹었다. 빠예야에는 보통 쌀이 들어가는데 쌀알처럼 생긴 파스타를 넣어 독특했다. 잔잔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간지럽게 어루만졌다. 돌아보니 10일 동안 11개의 도시를 쏘다니면서 놀라운 건축과 풍경이 펼쳐져 힘든 줄도 몰랐다. 우리는 와인 잔에 서로에 대한 감사를 담아 건배를 했다. 휴양지의 느릿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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