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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yoonlee Jul 17. 2024

준비하면서 시작하는 여행

친구가 스페인 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녀는 스페인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는 또 다른 친구가 임기가 끝나기 전, 한번 놀러 오라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의 장거리 여행이었다. 10년 전 미국에서 6년을 보내고 귀국해서 발견한 고국의 변화가 신기해서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쏘다니느라 바빴다. 그리고 팬대믹 동안에는 해외로 가기가 여의찮았기 때문이다. 

자유여행을 하기로 하고 정보를 찾으니 온라인에 스페인을 다녀온 사람의 후기가 무진장했다. 그들이 올린 여행기와 동영상에는 스페인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는 듯했다. 우선 여행 동선을 잡고 교통편을 예약했다. 마드리드에 도착해서 세비야, 그라나다를 지나서 바르셀로나에서 마무리하는 여정으로 했다. 국내 교통은 기차(Renfe)를 예약했다. 2등석을 탔는데 우리나라 KTX 일반석 수준이었다. 창이 큼직하고 공간이 넓어 쾌적하고, 스페인 사람들을 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젊은 남자들은 모여 앉아서  가는 내내 먹으면서 아줌마처럼 수다를 떨었고, 볼이 발간 어린 수녀님 두 분은 수줍게 앉아있었다. 잘 모르는 언어로 떠드는 소리가 현대 음악처럼 들렸다. 

그리고 각 도시에서 꼭 방문해야 할 장소를 정해 현지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마이 리얼트립’이나 ‘유로자전거 나라’ 같은 플랫폼에 올라온 현지 여행사의 투어 상품 리뷰를 읽어보고 선택했다. 현지 가이드는 투어가 있는 전날 카톡으로 연락해 만나는 장소와 주의 사항, 필요한 물건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베테랑으로 스페인 역사와 재미난 에피소드를 연극 배우처럼 재미있게 설명해 주고, 의사소통이 필요할 경우 성심껏 도와주었다. 거의 모든 현지 가이드의 배우자는 스페인 사람이고, 그들은 현장에서 스페인 사람들과 “Hola!”라고 인사하며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투어 중 다른 장소를 옮길 때 자유 시간에는 각자 좋은 곳에서 식사하거나 쇼핑을 했다. 가이드가 식당이나 가게를 추천하기는 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걷기가 힘들면 앉아서 커피가 아니라 레몬 맥주나 샹그릴라 같은 가벼운 알코올음료를 마셨다. 그리고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숙소는 호텔에서 일하는 친구가 정했다. 주로 광장 근처 번화가에 묵어서 이동하기 편했다. 세비야에서는 400년 된 건물의 100년 된 호텔에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에는 오래전 썼던 컵이나 메뉴판 같은 물건을 박물관처럼 전시하고 있었다. 아파트먼트 숙소에서는 근처 상점에서 시장을 봐서 고기를 구워 먹거나 간단한 아침 식사를 했다. 아파트먼트는 호텔보다 편리하고 공간이 넉넉한데 짐을 맡기지 못해 불편했다. 그라나다 아파트먼트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알람브라에 가기 전 근처 로커가 문을 열지 않아 곤혹스러웠다. 결국 24시간 로커를 극적으로 찾아 짐을 맡기고 안도했다. 위기 상황에도 침착하게 지혜를 모아 문제 해결을 한 친구들이 고마웠다. 

떠나기 전부터 소매치기와 도난이 극성이라고 해서 걱정되었다. 전화기를 손에서 놓으면 안 된다고 해서 손목에 꽁꽁 묶고 다녔고, 여권과 현금은 앞으로 매는 힙색에 넣어 늘 확인했다. 열차에서 가방을 묶어놓을 자전거 자물쇠까지 준비했는데 사람들은 우리 짐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 다른 나라 관광객은 태연하게 등에 배낭을 메고 다녔고, 우리는 유명한 관광지를 다니면서 한 번도 위협을 느껴보지 못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 가보는 나라 스페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여행을 좀 더 잘해보려고 공부해보니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었다. 어떤 작물을 심어도 크고 달게 자라는 기름진 땅을 호시탐탐 노리는 민족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나라였다. 그러나 정복한 민족과 정복당한 민족은 종교와 이념으로 적대관계에 있다가도 필요하면 종교를 저버리거나 마음을 바꿔 같이 살아나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문화가 융합하고 어우러져 화려한 건축과 예술이 꽃피었다. 나는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과 건축가 김희곤이 쓴 ≪스페인은 가우디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미지의 나라 스페인으로 여행 갈 생각에 모처럼 가슴이 두근두근하게 설렜다. 

정신없이 계획한 일정을 이어가면서 미리 습득한 정보가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돌아다녀 보니 그들의 역사와 문화는 예습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해서 한 민족이 면면히 이어 온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거의 스페인 사람인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직접 보니 역시 책이나 영상으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여행은 준비하면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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