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불도를 닦기란…

79산 두타산

동해시까지 가는 길이 멀었다. 평창쯤 왔을 때 누군가 첫눈이 온다고 했다. 정말 눈발이 휘날려 차창에 부딪혔다. 라디오 방송국 아나운서인 대장이 “첫눈 오는 날 만나자”라는 정호승의 시를 낭송하는 사이에 눈은 그쳤다. 첫눈은 누런 땅에 살살 뿌려놓은 슈가 파우더처럼 흔적만 남겼다.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눈물이 나도록 웃으면서 눈길을 걸어가”지는 못했지만, 첫눈으로 차창밖의 분위기는 상서로웠다. 바다가 가깝게 보이는 길로 오자 하늘은 개어서 선명한 수평선을 드러냈다. 첫눈도 좋지만, 푸른 하늘에서 빛나는 해는 원정 산행을 떠난 우리를 더욱 설레게 했다.

동해시에는 볼거리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두타산의 베틀 바위에 꼭 가봐야 한다.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수행‘이라는 뜻의 두타(頭陀). 삶에 고통의 앎이 침범하자 고타마 싣달타는 출가하여 ’깨달음’을 위한 탐구를 시작했다. 자기중심주의를 완전히 벗어나는 마지막 단계에서는 고통과 쾌락을 넘어섰으며 만물에 대한 우애(무량심無量心)를 익혔다. 옛날부터 두타산에 온 사람들은 붓다의 가르침대로 고통을 잊고 니르바나에 이르기를 바랐다.

가을 햇살이 쏟아졌다. 단풍나무가 요염하게 붉었고, 하늘을 향해 치솟은 바위가 대제국의 불사조 군대처럼 무시무시했다. 황금빛 나무는 물심을 자극했고, 여인의 속살처럼 뽀얀 계곡의 암반은 관능적이었다. 비가 많이 오면 절벽 사이로 물이 흘러내리는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한 친구가 말했다. 물이 흘렀던 하얀 자국 사이로 소나무가 안쓰럽게 생명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렇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산에서 붓다의 불도를 수행할 수 있을까.

최근 ‘두타산 베틀 바위 산성길’(무릉계곡관리사무소 -1.5Km→ 베틀바위 전망대 -0.2Km→ 미륵바위 -1.0Km→ 두타산성 -1.5Km→ 두타산 협곡 마천루 -0.5Km→ 쌍폭포-2.6Km→ 관리사무소)을 조성해서 산행이 쉬워졌지만, 얼마 전만 해도 사람들은 경치를 보려고 위험을 무릅쓰기도 했다. 총 7.3km의 비교적 긴 길에는 눈을 둘 곳 없이 화려한 풍경이 이어져 산행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우리는 처음에는 정상으로 가거나 용추폭포까지만 가는 상중하 세 가지 코스로 나누어 가려고 했지만, 결국 모두 이 길을 걸었다. 잘 걸으나 못 걸으나, 정상을 가지 못해 아쉬워도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처럼 함께 보고 감동을 나누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도시락을 나누어 먹은 너른 암반에서는 동해가 보였다. 산이 햇살의 농담에 따라 여러 가지 색으로 변했다. 인생길을 걷다가 가을이라는 계절에 와있는 우리는 가을이 오면 청춘처럼 가슴이 뛴다.

오래된 사찰 삼화사를 지나서 이어지는 무릉 계곡의 매혹적인 암반에 들어가 잠깐 뜨거운 발을 식혔다. 1,500평이나 되는 무릉반석 위에는 과거 언젠가 누군가 새긴 한자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 ‘옥호거사서신미중춘玉壺居士書辛未仲春’ 바위를 종이 삼아 써 내려간 글자가 아직도 선명하다.

흥겨운 뒤풀이 자리에서는 처음 온 친구가 자진해서 노래를 부르고 호쾌하게 저녁을 샀다. 색, 향기, 맛에 우정까지 풍성한 산행에서 어떻게 불도를 논하겠는가. 정말 자기를 비우고 책을 쓴 사람이 많았을까. 산은 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살아갈 뿐. 온종일 보고, 냄새 맡고, 걷고, 가슴에 담아도 이리 아쉬움이 남으니 이 산에서 부처의 도를 터득하기는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눈을 몰아내고 푸근하고 화창한 하루를 주어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태양이 산 뒤로 넘어가면서 농염한 여인의 볼같이 붉은 노을을 남겼다. 아 도의 세계는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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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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