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과 예술의 차이

80산 지리산 삼신산 (2023년 11월)

비가 온 후 이상하게 높았던 기온이 뚝 떨어졌다. 지난 주말, 갈까 말까 망설이던 지리산 산행. 갈 길이 멀고 이유 없이 귀찮아져서 취소하려 했다. 버스로 왕복 8시간, 14km를 6시간 안에 걸어야 하는 일정이 부담스러웠다. 나이를 탓하고 싶지 않지만, 자꾸 나이 핑계를 대는 나이가 아닌가. 아파트 단지 안에도, 도심의 도로에도 가을은 충분히 무르익었는데 지리산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또 다른 핑계도 망설임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온전한 가을은 지리산에 있었다.


큰 도로에서 고불고불한 산골길에 들어서자 거의 모든 땅은 감나무 차지였다. 과수원에, 집 앞 마당에, 그냥 버려진 땅에도 기를 쓰고 자라 열매를 맺었다. 나무마다 주황색 감이 꽃처럼 달려있었다. 모든 생명이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과실나무가 자라는 지리산 산골 마을은 풍요롭고 윤택해 보였다.

들머리까지 차가 줄을 지어있어 도로 한가운데에서 내려 경사길을 올라갔다. 청학동에서 나고 자라 유명해진 소녀 가수의 이름을 따온 도로였다. 간드러진 목소리로 어른의 트로트를 부르는 소녀의 얼굴은 관광객과 차로 혼잡해진 산골 마을과 닮아있었다. 삼신봉으로 향하는 들머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지쳤지만, 아스팔트 길을 떠나 흙길에 단풍이 한창인 숲으로 들어오니 피로해소제를 먹은 것처럼 기운이 났다.

삼신봉(1,284m)은 지리산 남부에 있는 봉우리로 지리산의 산세를 거의 다 조망할 수 있다. 지리산은 설악산같이 뾰족한 바위가 별로 없고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푸근하게 뻗어있다. 오르막이라고 경사가 가파르지도 않고, 내리막이라고 줄곧 내려가지만은 않는다. 능선은 올라가는가 싶으면 내려가고, 내려가나 싶으면 올라가야 한다. 너그럽지만 엄격한 어머니 같은 산세다. 삼신봉에서는 천왕봉만 비구름에 모습을 감추었고 바래봉, 낙남정맥 같은 지리산의 봉우리와 능선이 다 보였다. 날이 좋으면 남해까지 보인다니 삼신봉에서 보는 지리산의 위용은 정말 남부지방을 호령하는 큰어머니 같았다.

산악회 버스를 타면 갈 길이 바빠 정상에서의 시간이 늘 아쉽다. 삼신봉을 가운데 두고 내삼신봉과 외삼신봉이 있는데 우리는 내삼신봉을 지나갔다. 삼신봉보다 약간 더 높은(1,355m) 내삼신봉에서도 지리산의 유연한 몸의 곡선이 보였다. 1,000m 이상의 고지에 있는 나무는 벌써 나뭇잎을 다 떨어뜨려 황량하지만, 조금 내려오면 나무 밑에 금방 떨어져 생생한 색깔의 단풍이 산길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여 눈이 즐거웠다.

천왕봉을 가리고 있던 먹구름이 우리가 걷는 쪽으로 몰려와서 비를 내렸다. 물에 젖은 나뭇잎은 색이 살아나서 반짝였다. 조심조심 걷다가 눈을 들어 주위를 보면 총천연색의 숲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친구는 카메라에 담긴 단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현상과 예술의 괴리는 크다. 우리는 지리산의 가을을 느끼고 사진으로 남기고자 했지만, 불가능했다. 어떤 예술가도 자연의 한순간을 그대로 옮기지 못한다. 플라톤은 “예술은 신의 참된 작품을 모방한 것을 다시 모방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현상도 ‘모방’이니 예술은 모방의 모방이라는 뜻이다.

낙엽이 마르면서 풍기는 향기, 탱고를 추는 여자의 붉은 치마 같은 애기 단풍나무, 눈이 편안하게 이어지는 능선, 가을비가 나무로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 계곡물에 손을 담갔을 때의 짜릿함. 플라톤 선생이 모방이라 했더라도 실제로 가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두를 나는 분명하게 인식한다. 지리산의 가을은 아슬아슬하게 다가와 분명한 나의 추억으로 남았다. 역시 가기를 잘했다.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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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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