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티지아 박물관

시라쿠사1

몰타에 가지 못한 날, 우리는 일정을 앞당겨 시라쿠사로 향했다. 포짤로에서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은 시라쿠사에 가서 오르티지아섬과 ‘고고학 공원’을 하루에 다 본다는 원대한 꿈을 세웠다. 하지만 GPS는 유료 도로까지 가는 길까지 시골길을 뺑뺑 돌게 했고, 섬에 들어가기 전 주차에 또 시간이 걸렸다. 유료 주차장을 찾았는데 주차료를 내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서성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아저씨가 와서 앱을 깔던가, 근처 편의점(tabacci)에 가서 주차권을 사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길거리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은 주로 점잖은 중년 아저씨다. 그들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지만 도움이 되려고 애쓴다. 고마웠다.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 가서 주차권을 사서 차 앞 유리에 놓고는 또 하나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자부심이 차올랐다.

시라쿠사는 아그리젠토보다 더 오래전에 생겼다. 기원전 8세기에 코린트 출신 아르키아스가 원주민을 무찌르고 도시를 세웠다. 그 후 그리스, 로마, 비잔틴, 아랍, 노르만, 스페인 시기를 거쳐 문화가 겹겹이 쌓였는데 17세기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했다. 그 당시 시칠리아 왕족, 귀족은 가장 권위적이고 현대적인 바로크 양식을 이용해 지진으로 백지가 된 도시를 다시 만들었다.

오르티지아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공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반긴다. 그는 시라쿠사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보내고, 로마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시라쿠사 사람들은 우리가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을 자랑스러워하듯 아르키메데스가 시라쿠사 출신이라는 사실에 큰 자긍심이 있다.

오르티지아는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다. 다리를 건너면 아르키메데스 동상이 있고, 거기서 골목 안으로 살짝 들어서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기원전 6세기 초) 신전 ‘아폴로 신전’이 있다. 시라쿠사만을 이루는 고요한 이오니아 해안가를 걷다 보면 아레투사 담수 연못,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두오모 광장과 시라쿠사 대성당이 나온다. 아폴로 신전의 옆집 발코니에는 빨래가 깃발처럼 휘날리고, 고대 신화의 님프 이름을 딴 담수 연못에 난데없이 자란 이집트의 파피루스 사이를 검은 백조가 유유히 헤엄친다. 2천 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관광객이 아니라 아르키메데스를 존경하는 시라쿠사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해는 강렬했지만, 차가운 바람이 몸이 밀리도록 거세게 불었다.

시칠리아는 그리스 시대부터 여신 숭배의 전통이 있어서인지 도시마다 성녀를 수호신으로 모신다. 성녀 루치아는 시라쿠사의 수호성인이다. 겉은 수수하고 투박한데 내부는 화려한 두오모 대성당에는 세인트 루치아를 모시는 제대가 으리으리하다. 나는 무릎을 꿇고 루치아 성녀에게 바치는 기도문을 읽으면서 늘 하는 나의 기도를 했다. 분주한 여행 중에 성당에 들어가 기도하는 짧은 순간에는 마법처럼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 거대한 십자가, 번쩍번쩍하는 은제 성광, 여왕의 옷을 입은 성모님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카라바지오는 로마에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나폴리로, 시칠리아로, 몰타로 도망 다니다가 다시 로마로 가는 도중 운명했다. 언젠가 카라바지오의 그림에 홀려서 그에 관한 책과 영화를 섭렵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 본 이탈리아에서 만든 드라마*에서 그는 바닷가에 있는 성에서 형제를 죽인 복수를 하러 온 자객에게 죽임을 당한다. 나는 섬 남단 곶(cape)에 있는 ‘카스텔로 마니아체’를 보고 바로 그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실제로 그곳에서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거대한 성채는 시칠리아 왕국의 가장 유명한 왕 프리드리히 2세가 살았던 왕궁이었고, 그 후에는 감옥이었다. 성의 분위기는 화려하고도 으스스하다. 왕이 주최하는 연회가 열리기도 하고, 바다를 향해 난 창으로 적을 감시하고 가끔 포탄을 쐈을 것이며, 자유를 찾아 바다에 뛰어들어 탈옥하려 했던 죄수도 있었을 것이다. 카라바지오의 드라마틱한(기록과는 다르지만) 죽음을 묘사하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Caravaggio〉(Michele Placido 감독, 2007)


주차 시간 3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아침을 호텔에서 든든히 먹었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시장한지도 몰랐는데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피시 마켓에 있는 델리에서 샌드위치와 모디카 쵸콜렛을 사서 뛰었다. 3시간이 조금 넘어 조마조마했는데 우리의 ‘푸가’는 태연하게 잘 있었다. 다음 일정인 고고학 공원 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 몇 번 돌다가 포기하고 담장 너머로 유적이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시장기가 극에 달해 먹어야 했다. 우리는 차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샌드위치와 가스가 들어있는 물을 먹었다. 아무리 눈과 머리를 채워도 배를 비우면 만족하지 못한다. 샌드위치 반쪽만 먹고도 우리는 힘을 찾았다. 돌아오는 길 김영하 작가가 잠시 살았다는 노토(NOTO)에 들렀다. 아그리젠토보다 주차난이 더 심한 도시였다. 결국 차 세울 곳을 찾지 못해 골목길을 떠돌다가 그냥 포짤로로 돌아왔다. 석양이 하늘에 온통 붉은색을 칠해 눈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이곳의 하늘은 좀 더 넓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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