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의 나라

몰타

여행하면서 드리는 미사는 특별한 감흥을 준다. 모르는 언어를 들으면서 전례를 따라가면 낯선 성당도 오래 다닌 것처럼 친근하다. 몰타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껌껌한 골목길을 걷다가 한 성당에서 반쪽 미사를 드리고 나오니 종달새 소리 같은 종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오래된 자연이 오래된 미래이고, 오래된 것이 미래를 만든다”*라는 시 한 구절이 종소리와 함께 떠올랐다.


몰타로 하루도 되지 않는 여행을 떠났다. 다행히 호텔에서 짐을 맡아주어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상당히 큰 페리 Jean de la valletta호가 파도에 기우뚱하면 바닷물이 앞 유리에 부딪혔다. 메슥거린다고 했더니 친구가 멀리 보이는 한 지점을 쳐다보라고 했다. 몰타로 가는 1시간 45분이 참 길었다. 힘들어서 의자에 다리를 올리면 직원이 와서 딱딱한 영국식 영어로 ‘마담’하고 주의를 주었다. 뱃멀미하는 듯 보이면 종이봉투를 건네주었다. 몰타는 이탈리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나라였다. 우리는 서로 지친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고생을 사서 하고 있구나….

몰타는 제주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지정학적 요지이고 기후가 좋아서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오래된 거석이 있고, 로마 등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아 7천 년의 시간과 다양한 지중해 문화를 압축해 놓은 유적이 섬을 가득 채운다. 우리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항구 근처의 고풍스러운 숙소에 짐을 놓고 서둘러 발레타 시내로 나왔다. 성 요한 기사단이 불하받아 세운 도시 발레타의 견고한 성채는 바다를 마주한 절벽을 둘러싸고 있다. 성 요한 기사단이 세운 공동 주교자 성당에 들어서자 소박한 외양과 달리 실내는 황금기 바로크 양식으로 꾸민 제단과 천장 벽화가 눈이 휘둥그레하게 으리으리했다. 기사단의 부와 명예를 한껏 과시해 제단은 대리석과 황금으로 치장하고, 세례자 요한의 생애를 프레스코화로 천장에 그렸다.

이 성당에서 시라쿠사에서는 놓친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실컷 보았다. ‘카라바지오의 방’에는 그가 피신 와서 성 요한 기사단의 작위를 받고 감읍해서 그린 《세례자 요한의 참수》와 《성 히에로니무스의 필사》 두 점이 있다. 도망 와서도 난폭한 버릇을 버리지 못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그린 《세례자 요한의 참수》 앞에서 작위를 박탈당했다. 화가는 완벽한 구도에 빛과 어둠의 대비를 강조해 세례자 요한이 죽임을 당하는 순간을 눈앞에서 벌어지는 연극을 보듯 생생하게 표현했다. 성경은 살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마태복음,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몇 줄로 화가는 작품을 남겼다. 한 노파만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감싸고 있고 살인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덤덤하다. 양을 도륙하듯이 요한의 목을 베는 ‘경비병’의 칼이 무시무시하게 번득인다. 성인의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바로 그 밑에 화가는 서명했다. 불길한 징조였을까. 카라바지오의 그림은 기사단을 매료했지만, 죄를 용서받지는 못했다.

오늘도 구경 다니느라 끼니를 놓쳤다. 우리는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 아란치니를 시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영어 메뉴를 보고, 사람들이 하는 영어를 들으면서 우리는 비로소 몰타에 왔음을 실감했다. 날은 빨리 저물었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이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는 오래된 섬마을을 따뜻하게 감쌌다. 숙소로 가는 길에 있는 성당에서 사람들이 모르는 언어(나중에 보니 몰타어였다)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미사 중간에 들어갔어도 성채를 모시고 강복을 받고 가자고 했다. 뒤쪽 의자에 앉아, 미사를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기도했다. ‘오래된 미래’의 나라 몰타에서의 반나절이 아쉽게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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