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짜 다그로
평일 이른 아침 카타니아 도심은 한가했다. 작곡가 친구가 마시모 벨리니 극장(Teatro Massimo Bellini)에 꼭 가봐야 한다고 했다. 문 열기 전이라 내부 관람은 하지 못했다. 우리는 고양이만 다니는 거리를 걷고, 벨리니 동상이 있는 벨리니 광장의 극장 외관을 보았다. 시칠리아 사람들에게 “카타니아의 백조(Il cigno di Catania)”로 불리던 벨리니의 요절은 ‘국가적 비극’이었다.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프랑스에서 죽었지만, 그의 존재는 이 나라의 자부심이었다. 식당 메뉴에 그의 오페라 《노르마》 파스타, 피자가 있을 정도이다. 결국 사후 40년 만에 그의 유해는 카타니아 성 아가다 성당에 안치되었다. 벨리니 극장의 초연은 그의 오페라 노르마였고, 해마다 벨리니 오페라는 꼭 상연한다.
우리는 다시 서둘러 길을 떠났다. 운전하면서 맑은 하늘에 선명하게 드러난 에트나산을 보았다. 우리는 어제와는 또 다른 산의 모습에 환호했다. 다음 숙소가 있는 포르짜 다그로(Forza d’Agrò)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해발 420미터 정도 되는 산 위 마을로 올라가려면 헤어핀 도로(급경사를 완만하게 가도록 U자로 꺾어지는 지그재그 도로)를 타야 했다. 한번 핸들을 꺾을 때마다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낭떠러지 밑으로 파란 이오니아해와 하얀 모래사장, 황토색 집들이 포복하고 있는 모양이 아찔하게 펼쳐졌다. 나는 풍경에 넋이 빠지지 않도록 집중하여 운전했다. 숙소 앞 거리에 차를 세우고, 가방을 들고(당연히 엘리베이터 같은 건 없다) 돌계단을 올라갔다. 주인의 남동생 니콜라스가 반갑게 맞이하며 안내했다. 아래층에는 침대 3개, 위층에는 부엌과 식탁, 발코니가 있었다. 지대가 높아 바람이 차가웠지만 우리는 발코니에 나갔다. 시리도록 푸른 이오니아해 끝에는 이탈리아 본토 칼라브리아(Calabria) 지역이 보였다. 우리는 원래 옆 동네 타오르미나에 구경 가려고 했는데 숙소가 마음에 들어서 그냥 머물기로 했다. 숨이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니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밀스러운 사랑을 하고 있다면 도망쳐서 살고 싶은 곳이라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다. 사랑의 도피?
고맙게도 니콜라스가 자기 동네를 안내해 주겠다고 나섰다. 숙소 옆에는 할머니가 하는 식품점이, 바로 그 옆에는 엄마가 하는 식당이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백 명 정도 되는 작은 공동체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은 영화 《대부》의 “코를레오네 마을”로 유명하다. 마이클이 아버지가 살던 집을 미국인 와이프 케이에게 보여주는 장면, 그들이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고향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찍은 교회 앞 광장. 영화를 찍은 장소마다 사진이 걸려있었다. 작고 오래된 산타 루치아 성당에서는 아직도 미사를 드리고 결혼식도 열린다고 했다. 오래전 대부를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생각이 나지 않아 시칠리아 여행 전 다시 보았는데 별 재미가 없어 보다가 말았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 흔한 살인, 유괴, 복수, 의리, 또 복수, 가족 이기주의 같은 구시대의 유물이 진력이 났을까. 인적이 없는 중세 시대의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우리는 우리만의 영화를 찍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걸으면서 니콜라스는 여기서 본토까지 4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같으면 벌써 다리를 놓았을 텐데 이탈리아는 일이 늦다고 말하며 웃었다. 다리가 생기면 섬도, 육지도 아닌 어정쩡한 시칠리아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남해의 섬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푸념이 떠올랐다. 다리가 생기고 사람들이 머물지 않고 가버린다고. 나는 불편해도 다리가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청 앞 광장에서는 타오르미나와 에트나산이 선명하게 보였다. 단층 건물의 시청 앞에는 여러 개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그중 하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라는 의미의 깃발이다. 니콜라스는 고향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고향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니콜라스의 얼굴이 환하게 빛이 났다.
우리의 친절한 가이드의 엄마가 60년생이라 ‘anni60’이라 지은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음식도 뷰도 맛있었다. 식료품점에서 우리는 몇 가지 채소와 과일, 한국에 가져갈 파스타를 샀다. 계산대에 앉아있는 그의 할머니가 차분하게 계산해 주었다. 시칠리아의 밀은 특별히 맛있다고 했다. 타오르미나의 호텔에서 소믈리에로 일하고 있는 니콜라스가 몇 가지 와인을 추천해 주었다. 가격이 아주 싸서 더 좋았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홍빛 하늘과 함께 우리의 시간은 샹송 제목처럼 장밋빛(la vie en rose)이었다. 삶은 장미의 오묘한 빛깔처럼 사랑과 슬픔, 환희와 우울함이 섞여 있다. 에디뜨 피아프는 자신의 달콤하고도 씁쓸했던 사랑을 노래하면서 삶은 행복이나 불행이 아니라 꽃의 여왕 장미처럼 아름답다고 애절하게 외친다. 우리는 바다를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며 감상에 빠졌다. 이 한 풍경만으로도 시칠리아가 충분히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좁은 골목길을 아슬아슬하게 운전하고, 눈이 빨개지도록 주차 자리를 찾아 헤매기는 했어도.
집주인에게 석양이 멋졌다고 하니 일출 또한 기대하라고 했다. 아침 해는 나오기도 전에 하늘을 석류 빛으로 물들이고, 완벽하게 동그랗게 떠올라 바다에 빛의 길을 길게 뻗었다. 어디선가 종이 울리고, 닭이 울었다. 이 세상 같지 않은 정겨운 마을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우리는 여기는 반드시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사랑의 도피가 아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