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미나
“아무도 마지막 날을 보기 전까지는 행복이라 부를 수 없다.” 우리는 타오르미나 로만–그레코 극장(Teatro Antico di Taormina, 흔히 Greek Theatre)의 무대가 있던 자리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에 나오는 마지막 대사를 읊었다. 연극 배우인 두 친구의 표정이 진짜 연기하는 듯 비장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지금처럼 극장을 둘러싼 거대한 에트나산과 끝없이 펼쳐진 이오니아해가 인간의 오만함을 준열하게 깨우쳐 주었을 것이다.
이제 주차에도 요령이 생겼다. 타오르미나 구도시까지 올라가지 않고 그 밑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중심가까지 가는 무료 셔틀도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정류장에서 내려 로만 그레코 극장까지 걸었다. 입장료가 다른 곳보다 좀 비싸다고 생각했다. 허름한 입구에 들어서니 에트나산을 등지고 이오니아해를 마주한 야외극장이 눈이 부시게 드러났다. 기원전 3세기, 정, 망치, 쐐기로만 10만㎥ 이상의 암석을 파내서 ‘쓸데없는’ 극장을 만든 그리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먹고 살기에도 고단했을 시절이었지만,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 위를 달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화려한 무대 뒤 막강한 권력(히에론 2세)의 그늘에 이름 모를 노예와 민중의 피와 땀이 있었다는 씁쓸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대형 돌기둥을 타오르미나 아래 해안에 있는 비라고니아(Villagonia)까지 싣고 와서 ‘노예 무리’가 언덕까지 끌고 올라왔다고 전해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과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하는 모양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로마는 이곳을 오락장으로 쓰기 위해 개조했고, 중세에는 방치되었다가, 지금은 가끔 낭만적인 공연 무대가 된다. 우리는 봄바람처럼 불어오는 정월의 바람을 맞으면서 오랫동안 돌계단에 앉아있었다. 눈길을 애쓰고 올라가 쳐다보았던 에트나산은 여기서도 아주 가까이 웅장하게 보였다. 이 노천극장이라면 게다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라면 무슨 공연을 보든 황홀할 것이다.
객석 위쪽에서는 우리가 꿈 같은 시간을 보낸 포르짜 다그로와 이오니아 해안 마을 레토얀니가 보였다. 맑은 하늘을 그대로 비춰서 푸르디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우리는 까맣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갈 길이 먼 나그네의 마음은 조급했다. 게다가 또 식사 시간을 놓치게 생겼다. 우리는 그동안 피자를 먹은 적이 없어 이번에는 피짜리아(pizzeria)에 가자고 했다. 리스토란테 피자리아 ‘sapori di mare’의 간판에 무어인 남자 머리가 보였다. 시칠리아 어디에 가나 이런 무어인 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아랍인의 미소 뒤에 숨은 이야기는 살벌하다. 무어인 통치 시대에 한 무어인이 시칠리아 여인과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그들의 사랑은 무어인이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고향으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여자가 알면서 비극으로 치닫는다. 여자는 남자의 머리를 자르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에 바질을 심는다. 바질이 유난히 향이 좋고 아름답게 자라는 화분을 본 이웃들은 그녀를 따라 머리 모양의 화분을 만들었다. 부인을 여럿 두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보면 어이없는 죽음일 것이고, 시칠리아 사람들은 두 여자를 농락한 남자는 그렇게 죽어 마땅하다고 여긴 것일까. 남자를 죽인 여자가 잡혀갔다는 얘기가 없고 오히려 그녀를 따라 해 전통문화로 만들었다니 민족 간 생각의 차이는 에트나산만큼 크다. 아랍, 노르만, 스페인의 침략으로 겹겹이 쌓인 역사 속에서 다른 민족과 어울려 사랑하고 미워하며 살았던 시칠리아인의 고통은 미소로, 향이 좋은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무리 해석이 좋아도 우리는 이 특이한 기념품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유료 고속도로의 ‘텔레파스’를 지나면서 렌터카에 당연히 카드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중에야 차에 카드가 없는데 돈을 내지 않고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오르미나를 떠나 팔레르모로 가는 길에서는 돈을 직접 내는 요금소로 들어섰다. 떠날 때 표를 뽑지 않았다고 말하고 카드로 돈을 내는 시간이 좀 걸렸더니 뒤에서 경적이 크게 울렸다. 좁은 골목길에서는 경적 소리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는데 고속도로에서는 사람들의 참을성이 없어진다. 두어 번 텔레파스를 그냥 지나쳤으니 언젠가 벌금이 날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지는 해를 정면으로 보면서 운전하는 길은 조금 더 피곤하다. 팔레르모로 가는 길 체팔루에 들르고 싶었으나 팔레르모 구도심에 늦게 도착하면 길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 아쉽지만 지나갔다. 시칠리아 제 1도시 팔레르모는 예상대로 복잡하고 길이 좁았다. 그동안 경험해 봐서 차분하게 길을 찾아 숙소에 도착했다. 운좋게 숙소 앞 주차 자리가 하나 있어 차를 세우고 3층까지 올라갔다. 이번에도 계단으로 짐을 들고.
아파트 숙소에 세탁기가 있어 오랜만에 빨래를 했다. 밤거리에 나가 장을 봐서 친구가 피스타치오 소스로 파스타를 해주었다. 향이 유난히 진해 향신료가 필요 없는 루콜라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사람 머리 화분에 심지 않아도 시칠리아에서 나는 풀의 향은 짙다. 시칠리아에서의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얘기하는 친구들의 얼굴에 아쉬움과 뿌듯함이 동시에 묻어있었다. 포도의 풋내가 나는 와인이 약 기운처럼 퍼져서 피곤함이 서서히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