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哀) 속에 미(美), 미(美)속의 애(哀)

트리파니와 에리체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 처음에는 소박한 농경과 풍요의 여신이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성과 욕망을 품은 여신으로, 또 모성과 풍요를 함께 상징하는 존재로 긴 세월 숭배를 받았다. 에릭스(지금의 에리체) 비너스 신전에는 사랑과 다산의 의식을 맡은 여사제들이 살았다. 먼 바다에서 돌아온 선원들과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은 가파른 산길을 올라 여신 앞에 예물을 바치고, 여사제들과 함께 사랑과 풍요를 비는 의식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 밤이 끝나면 남자들은 여신에게서 새 힘과 용기를 얻고, 다시 바다로, 다시 전장으로 나아갔다.


기독교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여신은 서서히 ‘여인’에서 ‘어머니’의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숭배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성모 마리아에게로 옮겨갔다. 비너스 신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에리체의 ‘마드리체 성당’의 수호 성인은 ‘수유하는 성모’다. 성모는 부끄러움 없이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고, 아기 예수에게 은총의 상징인 젖을 먹인다. 고대의 눈으로 보면 육체와 욕망의 자리였던 가슴이, 기독교의 세계 안에서는 모성과 희생, 지고지순한 사랑의 자리로 다시 태어났다. 기독교 윤리로 보면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을 비너스 신전 터에는 이제 차가운 돌담을 두른 성당이 서서, 해발 750미터의 중세도시를 조용히 지키고 있다.

팔레르모의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트라파니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우리는 이제껏 보아 온 시칠리아 남부와는 또 다른 북쪽의 풍경에 경탄하며 환호했다. 이 섬의 매력은 어디까지인가. 나무가 뿌리내리기 쉽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돌산, 겨울에도 초록빛이 화사한 구릉,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한 공기, 깊은 쪽빛으로 세상의 슬픔을 다 끌어안고 있는 듯한 티레니아해(Tyrrhenian Sea). 눈을 두는 곳마다 보석처럼 고귀한 풍경을 바라보며, 얼마 남지 않은 시칠리아에서 시간이 눈물이 날 만큼 아쉬웠다.

에리체에는 주차가 어렵다고 해서 케이블카 정류장을 애쓰고 찾아갔더니, 입구에는 차단기가 내려있었다. 한 직원이 수다를 떨고 있다가 케이블카는 운행하지 않고, 길 따라 올라가서 아무 데나 주차하면 된다고 말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산성 마을로 올라가는 길은 포르짜 다그로로 가는 길처럼 ‘헤어핀 도로’였다. 한 번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운전하며 경치를 즐겼다. 올라갈 때마다 바다와 집, 염전이 조금씩 작아졌다.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했을 때, 길가에 주차 자리가 너무 많아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아무리 비수기라지만 어쩐지 썰렁했고, 주차료를 내는 것도 괜히 성가셔 보여 우리는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차를 돌려 올라와서 주차하고 나서야, 비수기에는 주차료가 없다는 작은 안내문을 친구가 발견했다. 뜻밖의 소소한 행운에 좋아하며 우리는 성안으로 들어섰다.

한 잔의 에스프레소로 몸을 덥힌 뒤, 《천공의 라퓨타》 같은 지브리 영화의 배경이 떠오르는 고요한 도시를 걷기 시작했다. 바람은 온 세상을 날려 버릴 듯이 거세게 불었고, 회색 석조 건물들 사이로 겨울의 빛이 가늘게 스며들었다. ‘백 개의 교회의 도시’라 불릴 만큼 교회가 많은 에리체에서, ‘마드리체 성당’은 가장 크고 화려한 성당이다. 우리는 성당 앞에서 캐나다에서 왔다는 쾌활한 여자를 만났다. 우리는 추워서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있는데, 그녀는 반바지 차림으로 성당 앞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손짓했다. 사진을 찍어주며 우리에게도 재미있는 포즈를 해 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수선스럽지만, 밝은 에너지가 스산한 회색의 도시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아들 여자친구가 한국인이라며 반가워했다.

마드리체 성당의 외관은 바이킹의 성채처럼 우람하고 담백한데,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내부는 귀부인의 드레스처럼 섬세한 조각과 장식으로 가득 차 있다. 비너스 신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는 십자가가 한쪽 벽에 걸려있고, ‘수유하는 성모’가 화려한 새 옷을 입었다. 캐나다 여자는 가슴을 드러내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성모는 처음 본다며 흥미롭다고 했다. 다음에 꼭 이 성당을 다시 들러야겠다고도 말했다.

나는 성모님을 보며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던 시간을 떠올렸다. 불어나 무거워진 가슴에 아이의 입이 닿으면, 서서히 시원해지던 느낌. 먹겠다고 입술을 오물오물하며 파고들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면, 어디선가 사랑이 샘솟듯 밀려왔다. 진정한 모성이 내 안에서 시작되던 순간이었다. 에리체 사람들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성모를 공경하며, 그 지고지순한 사랑과 희생을 찬미해 왔을 것이다. 차갑게 식어 있던 성당의 공기가, 오래전 젖 냄새가 스며 있는 엄마의 품처럼 따뜻해졌다.

트라파니 해안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서 우리는 정신없이 불어대는 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구름과 바다, 산과 마을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아렸다. 애(哀) 속에 미(美)가 있고, 아름다움의 깊은 바닥에는 언제나 슬픔이 스며 있는 것일까. 떠날 때가 가까워져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바다 위 작은 섬에 서 있는 ‘콜롬바이아 성’을 멀리서 바라보고 오느라 점심이 늦었다. 겨울의 오후, 시간이 애매한 탓에 식당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있었다. 간신히 찾은, 하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를 바라보는 천막 식당에 자리를 잡고 짭짤한 파스타를 시켜 먹었다. 거의 매일 파스타를 먹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질리지 않았다. 그래도 저녁에는 고기를 사다가 밥을 먹었다. 시칠리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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