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를 떠나며

팔레르모

팔레르모 센트랄레에서 떠난 밤 기차는 시칠리아 북동부 메시나까지 달렸다. 메시나에서는 이탈리아 본토까지 바다를 건너기 위해 기차를 배에 태운다. 우리는 1인실 객실 안에서, 기차가 배에 실리고 바다를 건너는 전 과정을 소리로만 짐작했다. 이제 정말 이 섬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연인을 남겨두고 떠나는 사람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지나치게 감상에 젖은 건가 싶기도 했다.


우리는 로마행 야간열차를 탈 때까지 팔레르모 시내를 걸었다. 한때는 모스크이기도 했던 팔레르모 대성당(Cattedrale di Palermo)은 600년 넘게 노르만-로마네스크, 고딕, 아라보-노르만, 바로크, 신고전주의의 층위가 겹겹이 쌓여,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산투짜(Santuzza), 우리 작은 성녀”라 부르는 성녀 로살리아를 공경하는 로살리아 소성당에 들러, 무사히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된 것에 감사하며 조용히 기도했다. 그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좁은 길에 어울리지 않는 큰 차를 몰고 다니며 가슴을 졸이고, 캐리어를 들고 높은 층계를 오르내리고, 목적지 입구를 찾지 못해 같은 길을 몇 바퀴씩 돌았다. 그때마다 기계와 사람이 번갈아 도와준 덕분에 결국 못 해낸 일은 하나도 없었다. 참 좋은 세상, 감사 인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 아닌가. 성당 앞 두오모 광장에는 성녀 로살리아의 행렬용 가마가 성당 처마 높이까지 우뚝 서 있었다. 역병에서 도시를 구해준 우아한 성녀를, 사람들은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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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는 어느 식당에 가도 다림질한 천 테이블보가 두 겹으로 깔려있었고, 우리가 묵은 아파트 숙소의 부엌에도 테이블보가 있었다. 어느 허름한 시장 골목에는 식탁보와 앞치마 같은 부엌살림을 박음질해 파는 가게들이 모여있었다. 무어인 머리와 레몬 무늬가 화려하게 염색된 천이 골목 위에서 깃발처럼 펄럭였다. 시칠리아의 분위기가 배어 있는 물건 하나쯤은 여행의 추억이 되리라는 생각에, 레몬 나무 패턴이 인쇄된 작은 테이블보를 샀다. 가격도 착했으니 하나쯤 더 사 올 걸, 돌아와서야 슬며시 아쉬움이 남은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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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종문화회관 앞 광장에서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본 적이 있다. 1막으로 이루어진 짧은 치정극의 클라이맥스는, 주인공 투리두가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기 직전에 흐르는 간주곡 ‘인터메초(Intermezzo)’다. 팔레르모 맥시모 극장(Teatro Massimo Vittorio Emanuele)의 계단에서 마이클의 딸 메리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영화 <대부 3>의 마지막 장면에도 이 곡이 흐른다. 마피아 대부의 자리를 물려받지 않고 오페라 가수의 길을 선택한 아들 앤서니의 무대를 보고 극장을 나서던 밤, 마이클을 겨냥한 총탄이 애지중지하던 딸의 가슴을 꿰뚫는다. 계단 위에서 마이클은 소리 없는 비명을 토해낸다. 이 간주곡의 서늘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죄 때문에 딸을 잃은 아버지의 애통을 끝까지 끌어올린다.

맥시모 극장은 가이드 투어에 참여해야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섞어 설명하는 가이드를 따라,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다는 오페라 하우스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마침 어떤 발레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귀빈석에 앉아 무대를 내려다보니, 마이클이 관객석에 앉아 곧 닥쳐올 비극을 알지 못한 채 오페라 가수로 선 아들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던 장면이 겹쳤다. 극장은 약 천 명의 관객을 수용하고, 천장에는 꽃잎 모양의 패널이 열리고 닫히는 구조의 돔이 달려 있다. 우리는 《대부 3》의 비극적인 엔딩이 촬영된 계단 위에 서서 잠시 사진을 찍으며 머물렀다. 그리스 신전을 닮은 입구로 이어지는 돌계단은, 어딘가 시라쿠사나 타오르미나의 노천극장을 떠올리게 했다. 지나친 욕망과 집착의 끝은 비극이라는, 고대 그리스 비극 이래 무수한 이야기들이 반복해 온 경고가 이 계단 위에서도 다시 한번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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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시칠리아를 떠날 일만 남았다. 우리는 팔레르모 공항으로 가 렌터카 회사에 우리의 애마를 돌려주었다. 단 한 번의 긁힘도 없이 무사히 돌려보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맙고 뿌듯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무 문제 없이 차를 리턴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해서, 정작 떠나보내는 차를 한 번 쓰다듬어 줄 생각조차 못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항으로 들어섰다. 애마를 떠나는 기사처럼, 마지막으로 보닛을 한 번 가만히 쓰다듬어 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로마로 향하는 야간열차의 1인실 객실에는 침대 하나와 작은 세면대가 있어, 하룻밤 묵어가기에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기차가 배에 실린 동안에는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잠시 당황했지만, 히터는 잘 돌아갔고, 오랜만에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잠이 들고 일어나니 이미 창밖으로는 로마 근교의 농촌 풍경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니, 벌써 시칠리아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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