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윗길에서 배우는 세상

87산 한탄강 물윗길

철원에서 궁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뜻을 품고 실현하려 했다. 진골이니 성골이니 하는 정권 다툼과 독식으로 나라가 혼란하던 시대에 왕자로 태어난 그는 수도 경주에서 쫓겨나 멀리 떨어진 이곳에 와 나라를 세웠다. 잠시 개성으로 수도를 옮겼지만, 다시 철원으로 돌아와 국호를 ‘태봉’이라 정했다. 승자의 정통성을 드러내기 위해 공보다는 과를 부각하는 것이 역사서의 상투적인 방식이어서인지, 삼국사기와 고려사에서 궁예는 폭군이자 패륜아다. 최근 선각대사 비석의 탁본을 다시 해석한 결과, 나주를 정벌한 ‘대왕’이 왕건이 아니라 궁예였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한 그의 개혁 의지가 분명했다. 철원에서 시작된 그의 꿈은, 결국 다시 철원에서 18년 만에 허망하고 비참하게 막을 내렸다.

6·25 전쟁 전 철원은 북한 땅이었다. 빛바랜 옛 사진 속 철원은 기름진 평야를 품은 단정한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인 큰 마을이다. 전쟁이 터지자, 이 마을 청년들은 인민군에게 끌려갔다. 이내 미군과 국군이 밀려오고, 중공군이 쳐들어와 이 일대는 격전장이 되었다. 북한군이 다시 자리 잡지 못하도록 국군은 주민을 대피시키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그때 철원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느 편에 서느냐 하는 ‘이념’이 가장 절박한 문제였다.


철원 평야에는 솜사탕 같은 안개가 가득 퍼져 있었다. 헐벗은 나무와 풀에 새벽 서리가 얼어붙어 얼음 조각처럼 빛났다. 고층 아파트 숲에 익숙한 우리에게, 안개 속에 잠긴 겨울 논은 쓸쓸하고 낯설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도 개발되지 않아 자연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일까.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답답한 사건과 사고를 이야기하며, 시원하게 트인 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철원의 ‘한탄강 물윗길’은 직탕폭포에서 시작해 태봉대교, 물길이 세차게 꺾이는 송대소, 남북이 함께 만든 승일교를 지나 고석정까지 이어진다. 유연한 선을 가진 큰 바위들이 널린 순담계곡을 지나, 주상절리길이 시작되는 매표소까지 약 8.5km. 강 위에 단단히 고정된 부표 길과 강변의 상아색 모래사장이 번갈아 나타났다.

좁고 가파른 절벽 사이로 흐르는 강 위를 뒤뚱뒤뚱 걸으며,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시간 차이를 두고 쌓인 화산 활동의 흔적을 보았다. 1억 1천만 년 전에 올라온 화강암 위에, 85만~9만 년 전 북한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덮여 한탄강 협곡에는 화강암과 현무암이 층을 이룬다.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강 주변은 철원 평야처럼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고, 물은 시원하게 흐르다가 큰 바위를 만나면 흰 거품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쳤다. 송대소 부근의 수심은 30m가 넘는다고 했다. 진초록빛 물은 끝없이 깊어 보였다. 부표 길을 걸으며 균형을 잡느라 애쓰다가 땅 위로 올라서면 비로소 가벼운 어지러움이 가라앉았다. 해가 힘을 얻자, 안개는 슬며시 걷히고, 강물은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며 흘렀다.

샛길로 빠져 야산을 오르니 은하수 다리가 나타났다. 강철과 강화유리로 엮어 만든 바닥 아래로 발밑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여, 수직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용기를 내어 살짝 내려다보기를 반복하며 다리를 건넜다. 강 위에서는 협곡의 단면을 내려다보았고, 다리 위에서는 거대한 용처럼 몸을 뒤트는 강의 전체 곡선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허기가 져서 준비해 온 간식을 펼쳐놓았다. 초록 이끼를 두른 바위와 고운 모래사장이 잠시 시골 잔칫집 마당처럼 변했다. 힘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평지 길이고, 날이 풀리는 시기라 그동안 함께하지 못하던 친구들도 합류해 한탄강 주변이 친구들로 꽉 찼다. 사람 얼굴만큼이나 음식의 종류도 달랐다.

물이 흐르다 얼어붙은 절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걷다 보니, 협곡을 잇는 아치형 다리 승일교와 마주했다. 6·25 전쟁 때 공을 세우고 납북된 박승일 대령을 기리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고, 북측이 이 다리의 절반을, 전쟁 후 남측이 나머지 절반을 완공해 이승만의 ‘승’과 김일성의 ‘일’을 한 자씩 따서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시인 신경림은 「승일교 타령」에서, 두 체제가 반씩 만든 이 다리를 보며 언젠가 하나의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했다.


“휴전선 그 반은 네가 허물고 / 나머지 반은 내가 허물고 / 이 다리 반쪽을 네가 놓고 / 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들었듯이”


‘고석정’이 자리한 바위는 전혀 예고 없이 괴물처럼 나타났다. 십 층 건물 높이쯤 되는 암석 아래에는 임꺽정이 몸을 숨겼다는 굴이 입을 벌리고 있다. 이렇게 높은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왕들이 놀았다니, 평등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그들의 권위와 그 아래에서 움직이던 사람들의 순종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계단을 한참 올라 정자에 서서 내려다보니, 정상부에는 나이 든 남자의 정수리에 듬성듬성 난 머리칼처럼 소나무가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철원 평야에서 거둔 ‘오대미’로 지은 밥을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다시 길을 내려왔다. 물이 불어나는 4월부터 ‘물윗길’은 사라진다. 봄, 여름, 가을 동안 물속에서 모서리가 깎인 바위는 둥글고 매끄러웠다. 나는 겨울에만 밖으로 드러나는 바위 위에 올라가 손바닥으로 돌을 쓰다듬었다. 내 손길도 물길처럼 이 바위의 선을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면서.

찰랑이는 물결을 따라 강을 걷고 주상절리길 매표소에 도착하니, 벼랑을 따라 산양이라도 다닐 듯한 가느다란 길이 눈에 들어왔다. 1만 원짜리 입장권을 사면 주변 식당과 카페에서 5천 원을 쓸 수 있으니,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어 보고, 어마어마한 시간이 남긴 바위의 문양을 구경하는 값으로는 황송할 뿐이다. 궁예의 한이 서려 있고, 한때는 인간의 목숨보다 이념이 앞서 무고한 희생이 일어났던 땅이라 그런지, 예전에는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았다고 한다. 한탄강 물 위에 길이 놓이고 나서야 철원에도 조금씩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셔틀버스는 협곡 위 도로를 달렸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철원은 더 이상 한 많은 태봉의 수도도, 어처구니없는 이념의 전쟁터도 아니다. 봄이 되면 넓은 꽃밭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논에는 물이 들어와 귀한 쌀이 자라난다. 사람들은 꽃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윤기 나는 쌀밥을 먹으며 먼 옛날이야기를 오순도순 나눌 것이다. 화강암과 현무암이 정답게 한 덩이 바위를 이루어 강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이곳의 아문 상처들도 한 몸처럼 어우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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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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