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예(天倪)

86산 괘방산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신석정, 〈작은 짐승〉


감동을 표현하고 싶으면서도 말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책에서 딱 맞는 한 문장을 만나면 반갑다가도 질투가 난다. 왜 나는 이렇게 쓰지 못하는가. 괘방산으로 오르는 길에 서면 한편으로는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낮은 산들이 이어진다. 시를 읽다가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하늘보다 푸르른” 바다를 보며 걷던 시간이 떠올랐다. 김애란은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고 썼다. 누군가를 잠시 ‘살게 하는’ 문장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지나친 욕심일까.


강릉으로 가는 길, 운무에 싸인 산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단풍은 연(緣)이 닿아야 볼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면서도, 산이 아직 푸른 것이 못내 서운했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을 실컷 견뎌낸 탓인지 나무들은 더 짙고 무거운 초록을 두르고 있었다. 산에 오르기 전, 오래된 식당 ‘고향횟집’에서 동해 심해에서 잡은 물망치 매운탕을 먹었다. 싱겁게 끓인 망치탕에서는 묵직한 바다 맛이 났다.

괘방산 들머리는 안인해변에 있다. 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걷다가, 동해가 한눈에 펼쳐지는 지점에서 우리는 잠깐 멈추고 “작은 짐승”처럼 바다를 바라보았다. 반대편으로는 삼우봉, 화비령, 청학산이 낮은 능선을 이루며 이어졌다.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오르내림이 많은 8km 산행이라, “해발 339m짜리 정상까지 가는 길이 600m 산을 오른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는 친구의 말이 맞았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서니 앞에는 동해가 펼쳐지고, 옆으로는 거대한 화력 발전소가 보였다. 이곳에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분을 상상만으로 떠올려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장자》의 붕새는 “남쪽 바다로 날아갈 때 파도를 3천 리 일으키고, 하늘로 9만 리 높이 올라가며 6개월 동안 바람을 탄다”고 했다. 붕새처럼 훨훨 날아오르는 상상을 하다 보니, 장자가 말한 ‘천예(天倪)’를 조금 이해했다. “옳고 그름, 선악, 시비를 잠시 내려놓고, 산과 바다가 자기 자리에 서서 자연의 도를 따라 흘러가는 모습.” 완전히 자유로운 풍경이 눈앞에 담담하게 펼쳐져 있었다.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크고, 평생 하던 일을 그만둔 친구들은 자유와 불안을 함께 말한다. 노년이 길어져서 걱정되면서도, 책임에서 조금씩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밥벌이를 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견디고, 집에서 천천히 밥 한 끼 먹을 틈도 없이 지내온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진짜 ‘자유’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이 제 몫의 붕새가 되어 높이 날아오르기를 바랐다.

날머리인 정동진이 산길 아래로 똑똑히 보이는데도, 거기 닿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한적한 산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내려온 우리에게 북적이는 관광지는 조금 낯설었다. 택시를 타고 들머리로 돌아가며, 오늘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오솔길이 얼마나 좋았는지 다시 이야기했다. 산과 바다를 번갈아 바라보며 잠깐 ‘천예’를 맛본 나는, 언젠가 좋은 문장을 쓰고 말겠다는 욕심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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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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