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리고 죽음

≪이키루(生きる)≫와 ≪리빙: 어떤 인생≫

내게 주어진 시간이 6개월.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한 클리셰(cliché)다. 나에게만은 죽음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인간은 시한부 선고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처음에는 '왜 나에게만?' 하면서 분노하고, 좌절하고, 방황하다 삶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주위를 둘러보고, 진실하게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결말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뻔하지만, 여러 번 먹어 본 음식처럼 익숙한 맛이 있어 자꾸 손이 가는 주제다. 사실 진부함에서 새로움을 찾는 과정이 예술이 아니던가. 1950년대 일본 영화 ≪이키루(生きる)≫와 이를 리메이크한 ≪리빙: 어떤 인생≫은 '시한부 인생'이라는 낡은 클리셰로 시작해 잔잔하고 깊은 감동으로 끝난다.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살았던 가즈오 이시구로는 맨부커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보는 ≪이키루≫를 심야 TV에서 우연히 보고, 평생 가슴에 담아두며 삶의 좌표로 삼았다. 언젠가 이 영화를 영국판 대본으로 쓰겠다고 다짐했을 정도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일본과 영국은 닮은 점이 많다"라고 말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절제하는 문화,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례하다고 느낄 만큼의 어떤 교만함. 두 나라가 그 교집합 위에 있다는 것이다. 전후(戰後) 시대가 배경인 점도 같아 원작을 많이 고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나는 극장에서 ≪리빙: 어떤 인생≫을 보고, 이후 인터넷에서 ≪이키루≫를 찾아 보았다. 저작권이 만료되어 검색하면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역시 원작의 감동이 더 짙었다. ≪이키루≫의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또한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으니, 세상에 새로운 것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이시구로는 "닮은 두 나라"라고 했지만, 사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크게 다르지 않게 산다. 주변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하면서 고인의 삶을 추측한다. 때로는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의 죽음을 이용하기도 한다. 장례를 치르는 방식에는 문화와 관습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영화 속 일본 공무원들은 주인공의 죽음을 기리는 자리에서도 자신의 공적을 치켜세우고, 출세를 위해 산 자에게 아부하느라 바쁘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살아있는 사람의 말이 진실이 된다. 생전에 주인공의 도움을 받았던 여자들이 문상을 와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한 경찰이 고인에 대한 존경을 담아 진실을 증언하자, 그들은 감추고 싶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국식 조문은 한결 '신사적'으로 표현된다. 직장동료들은 자신의 공을 은근히 드러내면서도, 고인의 죽음에 얽힌 의문을 풀려고 애쓴다. 각자 고인과 나눈 대화, 그의 행동과 말 한마디를 떠올리며 차츰 그의 삶과 죽음의 진실에 다가간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 죽음은 우리에게 언제나 의문이다. 다른 생물의 소멸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인간만이 삶에 집착하여 죽음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영화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기 전 최선을 다해 살아보겠다고 결심하지만,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곧 일상의 권태와 나태 속으로 스며든다. 이시구로는 와타나베씨의 결심을 매 순간 마음에 새기며 살았기에, 결국 노벨상을 받을 만한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그는 "사후에 인정받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원작 일본 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잘 살았는지 아닌지를 세간의 박수갈채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대중의 찬사를 받으면 좋을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다지 가치가 없습니다. 그것은 변덕스럽고, 대개는 틀린 것이니까요. 성공과 실패에 대한 나만의 외롭고 사적인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내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저는 그 점이 상당히 용기를 주는 말이었습니다."


느리고 구슬픈 노래, 그네가 흔들릴 때마다 함께 흔들리는 그림자, 소복이 쌓이는 눈, 삶을 마무리하는 노인의 얼굴…. 이미지는 글보다 쉽게 들어와 쉽게 나가지만, 어떤 장면은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일본의 와타나베씨, 영국의 윌리엄스씨가 맞이하는 슬프고 쓸쓸하지만 죽음의 신비로 충만한 마지막 순간은, 잔상이 오래 남는 엔딩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