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신들의 세계
언제부터인가 요즘 그림을 보고 나면 불편하다. 동시대 화가의 능력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전시회의 그림은 충격적일 만큼 기발하고, 묘사가 거울을 보는 것처럼 정밀하다. 화가들의 생각과 능력은 최고의 수준이라 감히 흠잡을 수 없고,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를 표현하는 예술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전시장을 나오면 마음이 어수선한 것이 사실이다.
디자인의 연금술사라고 불리는 영국의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은 “아름다움에 관해 모더니즘이 편협하고 청교도적이며 엄격한 목표에 따라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라고 말하면서 건축이 “따분해졌음”을 비판했다.* 건축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극도로 절제된 선으로 표현하는 모더니즘 예술은 이제는 따분하고 지루하며 ‘돈만 보인다.’ 예술이 자극을 주고 깨어있게 하지만, 위안을 주고 삶의 동력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 유감이다.
스페인 북부 지방, 한 호기심 많은 소녀가 깊은 동굴(알타미라 동굴)에서 석기 시대의 벽화를 발견했다. 소녀는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소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깜짝 놀랐다. 상상할 수 없이 오래전 살았던 석기 시대 사람들의 그림에는 그들의 삶과 열망이 있는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 2만 년이 넘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소녀를 놀라게 한 것이다. 소의 모습에는 그들이 두려워하면서도 갈망하는 진심이 들어있다. 진정한 예술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정직한 예술.
표선에 사는 친구는 가끔 선흘 1리에 가서 할망들과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공존’, ‘마을’을 이 어려운 시대를 푸는 열쇠로 보는 여성학자 조한혜정 선생은 제주에 와서 특별한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 예술감독 최소연은 마을을 더 가치 있게 하는 미술 작업을 할머니들에게 전파했다. 평생 제주에서 물질과 농사를 하면서 억척같이 살아왔던 할망들은 씨앗을 심고, 바다에 잠수하듯이 새로운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떻게 그림 그리는 신(수많은 자식을 둔 할머니라고도 하지만, '할망'은 단순히 여신을 높여 부른 말이기도 하고 설문대하르방과 엮이면서 최근에 할머니 취급을 받게 된 것이라는 정황도 있어서, 다른 한반도 계열 '할미'나 '할망' 여신들처럼 젊은 여신의 모습이 원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알타미라 동굴에 횃불을 켜고 벽화를 그리던 석기 시대 사람과 같은 열망 아니었을까. 밭에서, 바다에서 일하고 벌어 자식들을 키웠던 고된 일상이 그들의 마음에 남긴 응어리는 그림을 통해 꽃처럼 피어났다.
나는 적극적으로 이 일에 참여하고 있는 친구를 돕기 위해 현장에 갔다. 다음날이 개막식이라 작은 마을은 축제 분위기로 술렁였다. 할망들의 전시 개막식을 준비하기 위해 열정적인 젊고 재주 많은 손길이 모여들었다. 할머니들이 행진할 때 쓸 화관을 만들고, 그림으로 만든 상품을 포장하고 전시했다. 그들은 아직 ‘할망’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할망’이 될 준비가 되어있는, 나이 듦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낙관적이다. 키가 훤칠하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아름다운 예술감독 최소연은 나이 든 제자들의 전시를 앞두고 얼굴이 동백꽃처럼 상기되었다. 그녀는 “할망들의 그림 앞에 가만히 머물러 보면 나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가 거울처럼 보일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가르쳤지만,” 더 배웠던 모양이다.
나는 친구와 그녀가 최근 입양한 순한 반려견 토리와 함께 농협 창고와 할망들의 집을 차례로 방문했다. 제법 큰 창고에 전시를 기다리는 그림이 세워져 있었고, 8자 모양으로 이어진 골목에 드문드문 ‘기막한 신’이 된 할망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그들은 소, 무지개, 우영(밭), 고목낭(고목나무), 정원, 무화과, 신, 불 같은 각자가 몰두하는 주제를 찾아 연작을 그렸다. 그리고 일터였던 외양간 혹은 곡식 창고는 그들만의 갤러리가 되었다.
무지개 할망은 벌써 그림을 팔아 근사한 전시장을 만들고 있고 우리를 안채로 데리고 들어가 화실을 보여주었다. 깔끔하게 정리한 화실에는 무지개 그림이 걸려있었다. 과수원을 하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그림만 그린다는 할망의 얼굴은 창조의 기쁨이 겨울 햇살에 버무려 반짝였다. 할머니가 그린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이기도 하지만, 파스텔색이기도 하다. 무지개를 자주 보지 않은 우리는 무지개가 정말 어떤 색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신이 와야 그림이 그려진다는 신나는 할망은 아주아주 오래된 농을 닦으며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나는 애쓰면서 농을 닦는 할머니가 안쓰러워서 이제는 새것 같다고 과장해 말했다. 고래 위에 할망이 타고 있는 그림을 보고 걸레를 놓치 않고 있는 할머니에게 정말 고래를 만났냐고 물었다. 세 번이나 정말요? 하고 묻는 내게 할머니는 내 눈을 바로 보고 사투리로 답했다. 물질하다 고래를 만나서 고래 등을 탔지 하고. 그녀의 눈이 아주 진실해서 나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기로 했다. 그녀가 그린 고래는 정말 직접 보고 그린 것처럼 주름까지 생생했고 고래 위 할망의 몸은 젊었다.
밧할망의 똘(딸)은 치매가 있는 어머니를 위해 전시장을 꾸몄다. 다 잊어버려도 밭의 이름만은 정확히 기억하는 할머니는 그림에 물방울 같은 씨앗을 뿌렸다. 할머니가 평생 뿌린 씨앗의 환영이 영롱한 물방울이 되었다. 그녀가 그 작품을 본 적은 없었겠지만, 유명한 물방울 작가의 물방울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할망들의 그림을 보고 관광지 제주가 아닌 삶의 터전인 제주, 그리고 그 안에서의 삶을 고스란히 읽었다. 제주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비극과 살아남은 사람의 슬픔,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모습이 담긴 그림은 요즘 예술에 지친 나를 위로했다. 석기 시대 사람들이 그린 동굴 벽화처럼 간절하고 진실한 종교 같은 예술이었다. ‘기막힌 신들’이 그린 그림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더 인간적인 건축-토마스 헤더윅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