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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May 08. 2024

빨간 원피스-1장

“왜 그랬습니까?”

“…….”

“백선희씨! 왜 그랬어요?”

“그건 나였어요.”



선희는 정말 예뻤다.

무릎을 드러낸, 샤넬라인보다 짧은 흰색 에이라인 스커트에, 브라가 살짝 비치는 진한 남색 시스루 블라우스로 매력적인 몸매를 드러낸 채 거리에 나서면, 지나가는 남자들치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남자친구가 선희를 돌아볼 때마다 옆에서 함께 가던 여자들이 화를 내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럴 때마다 선희는 킥킥대며 웃곤 했다. 남자들이란……. 선희는 항상 적당히 무릎을 드러낸 치마나 아니면 원피스를 입었다. 허벅지까지 드러나게 입는 것은 왠지 모르게 천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치마나 원피스는 나풀거리는 것을 주로 입었다. 선희의 치마가 하늘하늘 흔들릴 때마다 남자들의 마음도 따라서 흔들렸다. 선희가 밝은 분홍색이나, 연노랑색 원피스를 입고 하얀 하이힐을 신으면, 마치 천사가 내려온 것만 같았다. 적어도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길거리에서 선희에게 남자가 전화번호를 달라고 추근대는 일은 너무 많아서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 길거리에서 연예인 해 보자고 명함을 받는 일도 흔했다. 머리에는 기름을 발라 한껏 멋을 낸 남자들, 옷도 최신 유행으로 걸친 젊은 남자들이 마치 삐끼처럼 선희에게 들러붙어서, 아주 간드러진 목소리로, ‘저기요.’ 하면서 뒤에서 말을 걸면, 선희는 모르는 척 계속 걸었고, 그러면 남자들은 선희의 뒤에 얼른 따라붙으며, 명함을 선희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러면 선희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명함을 받은 다음, 그 남자에게는 눈길도 안 주고 가던 길을 갔다. 왜냐고? 심부름이나 하는 남자들에게 선희는 관심 자체가 없었으니까. 


선희는 이 모든 것을 즐겼다.

다 자기가 잘나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했다. 외모야 타고 나는 것이지만, 선희는 항상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아침마다 할리우드 여배우에서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의 리즈적 사진을 냉장고 문에 붙여 놓고 그 앞에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저 여자는 왕비가 되었어. 그레이스 켈리를 볼 때마다 선희는 그 생각을 했으며, 그럴수록 가슴 속에 투지가 샘솟곤 했다. 나도 왕비가 될 수 있어. 얼굴 이미지 트레이닝을 끝내고 나면, 선희는 가방을 챙겨 요가학원으로 갔다. 거기서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시간 동안 요가를 했다. 얼굴 삼 년, 몸매 삼십 년이라고 했어.


선희는 168 센티미터인 자신의 키에도 자부심이 있었다. 모델처럼 너무 키가 큰 여자가 아닌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선희였다. 내가 너무 크면 남자를 고르는 범위가 줄어들잖아. 요가학원에는 전부 여자였지만, 바로 문만 나가면 같은 층에 헬스장도 있었고, 거기에는 몸매 좋은 남자들이 득시글대고 있었다. 선희 역시 지나가면서 흘끗흘끗 헬스장 안을 보곤 했었고, 조각 몸매인 남자를 발견하면, 혼자서 야한 상상도 해보곤 했었다. 그래, 저 팔뚝이 나를 움켜잡는 거야. 나를 꼼짝 못하게 하고……. 선희의 머릿속에서 상상의 그림이 그려졌다. 나를 거칠게 침대에 던지는 거야. 아니, 아니야. 그건 곤란해. 나를 번쩍 안아들고 침대로……. 아니, 아니야. 그건 너무 식상해. 차라리 내가 침대에 누워서 그 남자에게……. 휴, 이것도 힘들군. 그러나 헬스장에서 선희의 눈에 드는 남자는 정말로 극소수였다. 그 중 몇몇과는 데이트도 했었다. 선희는 혼자 살았으니까, 집에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가끔씩 엄마가 찾아오기도 했는데, 선희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 역시 미인이었다. 요새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를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인생은 엄마 인생이니까, 난 상관 안 해. 그래서 선희와 엄마는 사이가 좋았다.


남자들이 자꾸 달라붙으니, 선희 역시 여자인지라, 그 중에 괜찮은 몇몇을 골라서 연애도 하곤 했었다. 그러나 곧 싫증이 나거나, 혹은 남자가 선희의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선희를 품에 안으려면 반드시 뭔가를 대가로 지불해야만 했었으니까. 남자의 주머니가 비어갈 때쯤이면, 선희는 금방 눈치를 챘고, 그러면 바로 쌀쌀맞은 태도로 남자를 대했다. 남자는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비굴하게 굴면서 계속 돈을 처박든지, 아니면 포기하고 물러나든지. 그러나 계속 돈을 처박는 남자 역시 언젠가는 물러나고야 말았다. 자신의 주머니가 텅텅 비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한 번은, 아니, 여러 번 이런 일이 있었다. 선희가 남자의 팔짱을 끼고 명동 거리를 걸을 때였다. 반대편에서 걸어온 남자가 선희와 선희 곁에 있는 남자를 보았고, 걸어온 남자는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두 남자는 명동 한복판에서 대판 싸웠고, 결국 경찰차에 실려 유치장으로 갔다. 그러나 선희는 이 모든 일에 눈 하나 깜짝 안했다. 다 내가 예뻐서 생긴 일이니까. 이때 선희의 나이는 스물 두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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