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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Jun 11. 2024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사람-3장

3.



길버트 씨는 오후 5시에 급한 일이 생겨, 저녁 식사 후까지 회사에서 일하기로 결정했다. 간단히 샌드위치와 포도주스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길버트 씨는 책상 위에 쌓인 서류 뭉치들을 뒤적이면서 숫자와 씨름을 했고, 마침내 그 날 들어온 계산서들을 전부 정리할 수 있었다. 그가 해야 하는 마지막 과정은 타자기로 문서에 최종 계산을 치는 것이었다. 길버트 씨는 모두가 떠난 빈 사무실에서 경쾌한 소리를 따라, 혼자 일하고 있었다.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길버트 씨는 어느새 타자기 글쇠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눌려지는 소리에 리듬을 맞춰 어깨까지 흔들고 있었다. 점점 기분이 좋아지면서, 일에 빠져든 길버트 씨는 어느 순간 갑자기 타자기를 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의 몸이 의자에서 붕 떠오르더니, 이내 손가락이 타자기의 글쇠에 닿지 않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두 다리를 구부린 채, 사무실 책상 위 공간에 두둥실 떠오른 길버트 씨는 그만 난감한 생각이 들어서, 얼른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그러자 그의 몸도 따라서 다시 의자로 내려갔다.

“이거 곤란한데.”

길버트 씨는 이제 다시는 리듬에 맞추는 일은 안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이 날의 일을 모두 마쳤다. 그러나 일이 끝나자마자, 다시 그의 머릿속에는 하늘을 나는 일이 생각났다.

“오늘은 이왕 늦었으니, 하늘을 날아서 집으로 가볼까?”

길버트 씨는 닫으면 저절로 잠기는 사무실 문을 닫은 다음, 손으로 한 번 당겨서 잠겨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 다음 그는 1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어디 해볼까?”

길버트 씨는 아무도 없는 계단참에서 두 손을 벌리고 날갯짓을 했고, 그 날갯짓에 따라 그의 몸은 허공에 떠올라 계단을 날아 올라갈 준비가 되었다. 길버트 씨는 두 발로 번갈아 공기를 밀어냈고, 그러자 몸이 앞으로 슉 날아갔다. 반 층을 올라간 후에 좌측으로 돌아야 하는데, 그만 길버트 씨는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어이쿠!”

“조심해야겠는걸.”

길버트 씨는 계단참에서 멈추었다. 이번에는 팔짓만으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천천히 날아올라, 코너도 잘 돌고, 마침내 옥상까지 한 번도 바닥에 발을 딛지 않고 올라갔다. 옥상 문을 밀고 나가자, 서늘한 밤공기가 길버트 씨의 몸을 오싹거리게 만들었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다시 날아, 옥상의 끝 부분 난간으로 향했다. 난간에 도착한 길버트 씨는 콘크리트 바닥에 두 발을 딛고, 가슴께까지 오는 옥상 난간을 두 손으로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6 층 건물이니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지상까지 20 미터 정도 되는 높이였다. 아래에 보이는 차도에서는 라이트를 켠 자동차들이 하나 둘씩 달리고 있었고, 인도에는 이제 집으로 귀가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띄엄띄엄 켜진 가로등들만이 어둑어둑한 거리에 그나마 빛을 주고 있었다. 길버트 씨는 살짝 뛰어 옥상 난간 위에 올라섰다. 그저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펴는 것만으로도 그는 옥상 난간에 설 수 있었다.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길버트 씨는 보통 사람 같았으면,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어쩌면 길바닥으로 떨어져 추락사 할지도 모르는 그런 난간에 사뿐히 서 있었다. 공기가 흔들리면 길버트 씨의 몸도 따라서 앞뒤로 그리고 양옆으로 흔들렸다. 그러나 길버트 씨는 난간에 구두의 앞코만 살짝 댄 채, 그대로 허공에 떠 있었다. 길버트 씨는 건물의 뒤쪽이 생각났다. 앞쪽은 화려한 번화가였지만, 뒤쪽은 평범한 주택들과 자그마한 상점들로 차 있는 구역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쪽은 여기보다 훨씬 더 한산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버트 씨는 구두의 앞부분으로 난간을 통통 튀기면서 옆으로 이동했고, 그 자세 그대로 난간을 반 바퀴 돌아 옥상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역시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단독주택들과 그 사이에 있는 잡화점들과 세탁소 그리고 빵집 등등 가게들에는 전등이 켜져 있기는 했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모두 실내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터였다. 집에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이 외롭게 혼자 사는 길버트 씨로서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해도 좋으련만, 사람 좋고 게다가 친구도 있는 길버트 씨는 그런 것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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