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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Jun 12. 2024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사람-4장

4.



이제 길버트 씨는 6 층 건물의 옥상에서 20 여 미터 아래의 지상까지 날아 내려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간 위에서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한 길버트 씨는 천천히 오른발을 공중에 내디뎠고, 곧바로 왼발도 허공으로 내밀었다. 길버트 씨의 몸은 순식간에 한 층 정도 쑤욱 내려갔다.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을 느끼며 눈이 동그래진 길버트 씨는 얼른 양 팔을 옆으로 내밀어 급히 날개를 쳤다. 그러자 길버트 씨의 몸은 다시 옥상의 난간 높이로 올라갔다.

‘아하!’

길버트 씨는 마치 어미 새에게서 배우는 아기 새처럼 항공역학을 하나씩 배울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이 어미 새이자 아기 새이기는 했지만, 길버트 씨는 허공에서 천천히 회전을 하면서 그리고 양 팔을 조금씩 퍼덕이면서, 점점 보도로 날아 내려갈 수 있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인도에 완전히 내려선 길버트 씨는 홀가분한 심정으로 방금까지 자신이 있었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길버트 씨는 길 건너편 주택들의 빨간 기와지붕을 보았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혹시라도 누가 자신을 볼까 봐 잠시 머뭇거렸다. 이윽고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선 길버트 씨는 두 발로 바닥을 박차며 날아올랐고, 그 기세 그대로 건너편 기와지붕의 위를 지나쳐 하늘로 둥실둥실 떠갔다.

이제 길버트 씨는 한결 여유롭게 주변 경치를 바라보면서 하늘을 날았다. 저만치 자신의 아파트가 보였다. 8 층짜리 아파트의 가장 꼭대기 층에 살고 있는 길버트 씨는 이대로 날아서 자신의 집으로 가고 싶었다. 또 다른 빨간 기와지붕 위로 날아갔다. 가로등 위로 날아갔다. 작은 골목길 위로 날아갔다. 아침에 인사했던 빵집도 지나치고, 우유 가게도 지나쳤다. 아마 해럴드 씨와 맥그로우 씨는 자기들 방에서 가족들과 오손도손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었다. 갑자기 사람들의 생활에 궁금증이 생긴 길버트 씨는 빵집 2 층에 딸린 해럴드 씨의 집 창문 쪽으로 날아갔다. 벌새가 호버링 하듯이 공중에 정지한 길버트 씨는 두 발을 자전거 페달을 밟듯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고, 한 손으로는 해럴드 씨 집 창문 바로 옆 벽을 짚었다. 고개를 내밀어 창문을 보니, 역시 해럴드 씨와 그의 부인 마가렛 그리고 두 딸 줄리와 에이프릴도 함께 있었다. 다들 너무나 즐거운 듯 하하 호호 거리며 웃고 있었다. 길버트 씨의 눈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길버트 씨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이번에는 맥그로우 씨 집으로 향했다. 역시 우유 가게 2 층에 딸린 가정집 창문 옆에서 길버트 씨는 집 안을 들여다보았고, 맥그로우 씨가 부인 나타샤와 뭐라 즐거운 표정을 한 채 떠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유 얘기일까? 아니면 치즈 얘기일까?’

길버트 씨는 잠시 동안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제 자신도 피곤해짐을 느끼고, 얼른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길버트 씨는 서서히 인도로 내려섰다. 바로 오늘 아침 여기에서 온 몸이 날아올라갈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길버트 씨는 아침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길버트 씨는 평소에도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이나 비행기들을 보면 ‘야, 부럽다.’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막상 자신이 이렇게 하늘을 날아보니,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내 몸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긴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상상에도 불구하고, 길버트 씨의 마음은 환희에 가득 찼으며,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길버트 씨는 저 앞에 보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보았고, 창문에서 하나 둘씩 빛이 나오고 있는 것도 보았다. 아파트 정문으로 가지 않고, 길버트 씨는 아파트 뒤로 돌아갔다. 자그마한 오솔길이 있었고, 외부와 경계를 짓는 자그마한 담장이 외로운 모습으로 밤을 지키고 있었다. 나무들조차 잠을 자는 것 같았다. 길버트 씨는 자신의 층인 8 층을 올려다본 다음, 힘차게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양 팔을 있는 힘껏 퍼덕거렸다. 길버트 씨의 몸은 슝 하고 땅에서 중력을 이겨내며 허공으로 솟아올라, 순식간에 8 층까지 날아갔고, 길버트 씨는 자신의 집 창문에서 자신의 집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캄캄한 방 안에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었다. 8 층까지 도둑이 올라올 수 없다는 생각에 길버트 씨는 평소에 창문을 잠그지 않고 살았었다. 그는 아파트 외벽에 딱 붙어서 왼손과 두 발을 살살 움직이면서, 오른손으로 창문을 열었다. 낮 동안 데워진 더운 공기가 밖으로 훅 뿜어져 나왔다. 길버트 씨는 무릎을 구부려 창문으로 들어갔고, 이내 방바닥에 내려섰다. 뒤로 돌아 밖을 내다본 길버트 씨의 눈에 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는 가슴을 손으로 꾹 누른 채, 길버트 씨는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셨다. 조금 진정이 되는 듯싶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니……. 꿈만 같구나.’

길버트 씨는 오늘 밤에 잠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내일은 휴일이었다. 내일은 어디를 날아가 볼까? 길버트 씨는 꿈속에서조차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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