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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Jul 08. 2024

맥스 그린(A Tale of Max Green)-1장

등장 인물



가브리엘 녹스(Gabriel Knox): 나

존 웨인(John Wayne): 샌드 클럽의 주인

톰 웨인(Tom Wayne): 존 웨인의 동생

맥스 그린(Max Green): 육군 중사

아론 그린(Aaron Green):맥스 그린의 동생

재키 샌더스(Jackie Sanders): 아론의 여자친구

콜린 클라이드(Colin Clide): 육군 상사

로버트 웨이드(Robert Wade): 의사 겸 연대 검시관

베티 시몬스(Betty Simmons): 간호사

티모시 웨이드(Timothy Wade): 육군 대령, 제 135 연대장

데이빗 루이스(David Lewis): 육군 대위, 연대 부관 참모

말콤 쉐퍼드(Malcolm Sheppard): 벅스 시티(Bucks City)의 시장





1.



나는 오랜만에 샌드 타운에 들렀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시작하여, 제 135 연대, 그러니까 웨이드 연대가 있던, 그러나 이제는 폐쇄된 병영까지 가볼 생각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연대까지 오는 내내 흙으로 된 길거리에는 띄엄띄엄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으나, 그들의 얼굴에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웨이드 연대가 무너져 버린 뒤로, 이 샌드 타운에는 다른 어떤 부대도 들어오지 않았고, 글자 그대로 버려진 마을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을 걸어서 부대의 정문까지 도착한 나는, 활짝 열린 채 절반 이상 망가진 문을 통하여 그 안으로 들어갈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사진이나 몇 장 찍은 다음, 발길을 돌렸다. 하늘에서는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었고, 병영의 허물어진 담벼락에서는 벌레들만 기어 다니고 있었다.


어쨌든 벌써 옛날이야기다. 아마 적어도 십 년은 지난 이야기일 것이다. 135 연대가 있던 시절에는 샌드 타운도 번성했었다. 군인들도 오고 가고 하고, 거기에 따라서 물건들도 이 마을에 많이 들어왔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조그마한 오아시스에 의존하여 사는 이백 여 명 정도 되는 마을 사람들은 병영의 군인들이 쓰는 돈에 의지하여 살았다. 그래도 천 명 정도 되는 연대 병력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다. 절반 정도의 사람들은 병영 안에서 일을 하면서 노임을 받고 있었으니까. 참, 나는 역사학자다. 이름은 가브리엘 녹스.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어쨌든, 역사학이라는 것이 과거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서, 뒤질만한 것이 있다는 소문만 들려도, 나는 한달음에 어디든 달려가서 조사를 하곤 했다. 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소일거리로 예전 신문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우연히 샌드 타운이라는 글자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온 것이다. 어쨌든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왔더니,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프다. 예전에는 활기찬 마을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몰락해 버렸는지 모르겠다.


"손님, 뭘 드릴까요?"

점잖아 보이는 인상의 나이든 웨이터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좌우로 길게 뻗어 있는 카운터에 앉았고, 샌드 타운에 하나 있는 샌드 클럽의 웨이터 존 웨인이 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하얀색 플라스틱 명찰에 검은색으로 존 웨인라고 쓰여 있어서, 나는 금방 그의 이름을 알았다. 물론 역사학자인 나는 그의 이름이 본명은 아니고, 아주 옛날 어느 영화배우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눈치 챘다. 그러나 구태여 여기서 그런 얄팍한 지식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날이 덥군요."

나는 짐짓 딴청을 피웠다. 뭐, 존 웨인에게 특별히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정말이다.

"시원한 것이 먹고 싶군요."

"네! 손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웨인은 나에게 등을 보이더니, 카운터 뒷면의 그릇장에서 가느다랗고 짤막한 하얀 유리잔을 꺼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도기 주전자를 꺼냈다. 그는 주전자에서 유리잔에 분홍색 같기도 하고 노란색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액체를 하나 가득 부었다. 나는 그가 내민 잔을 받아들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칵테일입니다. 손님!"

"이름이 있습니까?"

"하하하, 그까짓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 한 잔 쭈욱 드세요. 내가 장담하건데, 분명히 한 잔 더 주문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겁니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짧게 깍은, 얼굴에 구릿빛이 감도는 샌드 클럽의 웨이터는 나를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런 류의 사람들을 좋아한다.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사람들. 이제야 인생이 뭔지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들. 나는 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탁!

나는 빈 유리잔을 카운터에 놓았다.

"흠……."

"어떻습니까? 손님!"

"흠……."

나는 내 눈동자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눈이 나쁜 나는 렌즈가 암갈색으로 코팅된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아마 웨이터는 내 눈을 못 볼 것이다. 그런데 내 입술은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 그건 지금 생각해 봐도 그랬다. - 마음대로 움직여 버렸다. 그런 나의 눈에 웨인이 두 손바닥을 비비는 것이 보였다. 그는 오른손 검지를 꼿꼿이 세우더니, 씩 웃었다.

"자, 그럼 한 잔 더 드리겠습니다!"

나는 연거푸 석 잔을 마시고서야 제 정신이 들었다. 온 몸이 나른해졌다. 웨인은 그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카운터 밑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천으로 된 주머니의 주둥이를 묶고 있는 가느다란 노끈을 푼 다음, 풀잎처럼 보이는 것을 반 주먹 정도 쥐어 나에게 내밀었다. 담배였다. 오호, 여기서는 이런 것을 피우는군. 그는 다른 손으로 역시 탁자 밑에서 하얗고 네모난 종이를 꺼냈다. 거기에 담뱃잎 더미를 놓은 웨인은 손으로 그것을 넓게 펼쳤다. 나는 그제야 그가 이 클럽의 주인임을 눈치 챘다.

"이제 요놈을 말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요새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니…….

"내 이름은 녹스입니다. 가브리엘 녹스."

"네. 미스터 녹스!"

그와 나는 몇 십 년도 더 된 친구처럼 사이좋게 담배를 피웠다. 어차피 클럽 안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미스터 녹스! 여기 샌드 타운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나는 그에게 내가 역사학자이며, 파인버그 시의 도서관에서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이 마을의 이름과 제 135 연대, 그리고 작은 전투에 대하여 읽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나 나는 그의 눈빛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가 어른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겨우 오후 두 시였다. 해가 지려면 아직도 네 시간도 더 남았고, 이 정도 시간이라면, 내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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