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Gold)과 피(Blood)-5

by 윤금현

5 장.



준영이 손에 들고 있던 택배 상자가 덜덜 떨리기 시작하더니, 그만 그의 손에서 택배 상자가 땅으로 떨어졌다.

선글라스를 벗은 남자의 입이 열렸다.

“형…….”

“…….”

준영은 자신을 형이라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중학교 때 알아버린 그였으나, 이렇게 직접 현실과 부닥치자, 그만 모든 사고가 정지해 버린 것 같았다.

그저 두 눈만 부릅뜬 준영에게 이진영이 한 발 다가섰다. 그러나 준영은 한 발 물러섰다. 은색 벤츠를 타고 온 남자. 나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남자. 단지 얼굴이 나하고 똑같은 남자.

준영은 모자를 고쳐썼다. 그리고 뒤로 돌아섰다. 그 순간 준영의 뒤에서, 그 남자의 손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거 놔!”

준영의 입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그 손의 주인은 준영을 거칠게 돌려 세우더니, 준영의 양 어깨를 잡고, 준영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형!”

준영은 진영의 양 손을 탁하고 쳐버렸다. 그러나 그 손에 힘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진영이 담배를 꺼내더니 뚜껑을 열고 준영에게 담배를 권했다. 덜덜 떨리는 준영의 손이 담배갑으로 가까이 갔으나, 선뜻 담배를 잡지는 못했다. 이것은 본 진영은 얼른 담배를 끄집어내려 했고, 그 와중에 담배 두 가치가 땅으로 떨어졌다. 한 개는 진영이 얼른 받았으나, 나머지 한 개는 땅바닥에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 진영은 손바닥으로 받은 담배를 준영에게 내밀었고, 준영은 그것을 받아 입에 물었다. 준영의 눈이 바닥의 담배로 향했다. 살짝 그의 허리가 굽혀지는 순간, 진영의 발이 땅에 떨어진 담배 한 개비를 뭉개버렸다.

준영은 깜짝 놀라 진영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진영의 눈빛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래. 나나 땅에서 담배를 집지, 너처럼 벤츠를 타는 녀석은…….’

준영의 눈 앞으로 멋들어진 금장 라이터가 나타나더니, 찰칵 소리와 함께 그 끝에서 노랗고 파란 불꽃이 춤을 추었다.

준영은 담배불을 붙인 다음, 연기를 폐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입으로 뱉어냈다. 조금씩 긴장이 풀려갔다.

‘그래, 언젠가는 이런 날이…….’

“형!”

“나 택배 마저 끝내야 된다.”

준영의 말에 진영은 골목 아래에 세워져 있던 봉고 트럭을 보았다.

“음, 그럼 이따가 저녁에 보자.”

진영의 말에, 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영이 준영의 팔을 잡았다.

“약속해. 그럼 보내줄께.”

준영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진영에게 주었다.

진영은 명함을 보면서, 회사 이름과 주소를 확인했다.

“저녁 아홉 시면 끝나.”

“좋아. 내가 데리러 갈께.”

준영은 들고 있던 택배 상자를 그대로 들고, 트럭으로 돌아갔고, 진영은 트럭이 다시 골목길을 내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여, 그림 보러 왔냐?”

손병승은 뒤에서 누가 부르자 돌아보았다.

친구들이었다.

“나는 렘브란트가 좋더라. 빛의 화가. 멋지지 않냐?”

병승은 렘브란트의 ‘야경’ 복사본을 보면서 탄성을 지었다.

여기는 명화들의 복사본만을 모아놓은 ‘카피 미술관’이었지만, 그 정밀도는 상당했기 때문에, 그림을 좋아하는 병승으로서는 자주 오게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병승의 그림 친구들도 여기를 자주 드나들었다.

“나는 렘브란트도 좋지만, 그 타는 듯한 고독감 때문에, 고흐를 더 좋아해.”

병승의 친구, 목태석이 말하자, 병승은 마음 한 구석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친구들과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얘기를 나누면, 절로 기분이 풀어지곤 했다.

“그런데, 너는 아버지 회사 물려받는 거 아니냐? 그럼 그림이 필요없을 텐데…….”

또 다른 친구 김신정이 병승에게 말하자, 이번에는 병승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 말 하지 마. 누나가 있거든.”

“그런 게 어딨어? 누나는 시집 가면 끝이지, 안 그래?”

김신정은 집요하게 병승에게 따졌다.

병승은 그런 신정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다음 그림을 보러 발길을 돌려 버렸다.

“야, 삐졌냐?”

친구들의 말이 병승의 뒤통수에 날아왔다.


* * *


송순화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그녀의 그릇 다루는 손길이 거칠었다. 달그락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와 쏴쏴거리는 물소리만 날 뿐, 순화는 설거지를 하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순화를 최종환은 거실 소파에 기대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달싹달싹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은 열리지 않고, 대신 종환은 소파 앞 탁자에 놓여 있던 물잔을 들더니, 물을 마셨다.

씽크대에서 쏴아 하면서 물소리가 커지더니, 툭 하고 끊어졌다.

종환은 다시 순화를 보았다.

“여보, 끝났으면 이리 와서 앉아 봐. 내, 할 말이 있어.”

순화의 손이 멈췄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꼭 그렇게 해야 하겠어? 나는 마음에 안 들어. 왜 내가 그렇게 해야 해?”

순화의 불만이 드디어 터져 나왔다.

종환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순화의 뒤로 다가가서, 살며시 그녀를 안았다.

“좋은 일이잖아. 뭐 어때서 그래?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도……. 난 너무 아쉬워.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볼까?”

순화는 자기가 아이를 못 낳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결혼한지 이제 삼 년이 지나고 있었지만, 아이는 아직도 생기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둘의 잠자리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종환은 성심성의껏 순화를 만져주고 보듬어주고……. 사랑을 몸으로도 보여 주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순화가 종환의 품에서 슬며시 돌아서자, 종환은 그녀에게 살짝 입맞춤을 하며, 순화를 놓아주었다.

순화의 얼굴이 발그레해지더니, 젖은 손을 수건에 닦았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소파로 갔다.

“마음을 먹도록 해.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종환은 순화의 손을 토닥거렸다.

“당신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흉보지나 않을까?”

종환은 코웃음을 쳤다.

“흥, 당신, 공무원들 생리를 몰라서 그래? 다른 사람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이런 말도 있잖아. 애가 있으면 애가 더 잘 생긴다는 말.”

순화는 종환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래 그런 말도 있다고 들었지만…….”

“아무 걱정 말아.”

종환은 순화의 기분을 최대한 맞춰주고 싶었다. 너무나 아이를 좋아하는 종환으로서는 삼 년이란 시간이 길고도 길었다. 이제 뭔가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였다. 아이가 있었으면 너무나 좋았겠지만, 안 생기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순화는 그런 종환의 얼굴을 읽더니, 화제를 돌렸다.

“당신, 요새 일은 잘 풀리고 있어?”

종환은 순화의 말에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럼, 그럼. 지금은 7 급이지만, 이제 6 급 올라갈 때가 되었어.”

“나는 당신만 믿어.”

종환은 순화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손등을 토닥거렸다. 그러나 그의 눈은 거실 창 밖을 보고 있었다.


* * *


“이서방, 꼭 그렇게 해야겠어?”

“어머니, 우리 형편에 쌍둥이는 너무 힘들어요. 저라고 이러고 싶겠어요?”

“이서방, 다시 한 번만 생각해 봐, 응?”

현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이서방, 내가 키워주면 되잖아? 안 그래? 장모 뒀다 뭐할 건데? 이 늙은이 뭐에 써먹을 거야?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거지?”

“어머니, 어머니, 몸도 아프시고, 힘들어요.”

나현주는 침대 옆의 조그마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멀쩡한 애를 보내려고 해?”

현석은 장모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 어머니나 저나 다 가난하게 살았잖습니까?”

“여보게, 가난이 죄인가?”

현석의 눈이 빨개지려 한다.

“어머니, 죄송하지만 가난은 죄입니다. 저는 가난이 지긋지긋합니다. 아시겠어요?”

현주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현석은 장모에게서 등을 돌리더니 팔짱을 꼈다.

“어머니, 돈이란 건 말입니다. 두 배로 생기면, 두 배만큼 좋아지는 게 아닙니다.”

현주는 사위가 모르는 소리만 한다는 표정이다.

“돈이 두 배가 되면, 그 효과는 네 배, 아니 여덟 배가 됩니다. 모르시겠어요? 어머니, 저라고 이런 애기를 보내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하지만……. 왜 그러나?”

현주는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어머니, 돈이, 아까도 말했지만, 돈이 조금 생기면, 그걸로……. 휴……. 그걸로 동생이라도 잘 키울 수 있습니다.”

현주는 이제 더 이상 현석과 말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현석 씨, 다시 한 번만 생각해 봐. 응?”

미현의 말이 들리자, 현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여보, 우리에게는 현재 이것이 최선이야.”

미현은 침대에서 일어서려다, 다시 누워 버리더니, 벽 쪽으로 얼굴을 돌려 버렸다. 벽으로 고개를 돌린 미현에게서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엉엉!”

“대체 그 애한테, 우리 애한테 무슨 죄가 있어?”

“당신이 그러고도 아빠야?”

미현의 고함 소리, 아니 절규는 병실 안에 메아리치면서 현석의 마음까지 갈가리 찢어놓는 것만 같았다.

이 광경을 보다못한 나현주는 병실을 나가버렸고, 그런 현주를 현석이 따라갔다.

“어머니, 부탁이 있습니다. 좋은 곳 좀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저를 믿으세요.”

현주는 현석의 느닷없는 부탁에 깜짝 놀랐다.

“이서방, 미현이가 저러는데, 나보고 알아봐 달라고? 난 못 해.”

현석의 눈썹이 올라갔다.

“어머니, 그럼, 막말로 아무 데나 보내버릴까요? 어머니? 그걸 원하세요?”

현주는 병원 복도의 긴 나무 의자에 주저앉았다.

“이서방, 그리 말하면 내가 뭐라 할 수가 있겠어?”

“한 번 알아봐 주세요. 부탁입니다.”

현주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데 그녀의 머리 속에 고향 초등학교 동창인 최청식이 떠올랐다. 아들 하나 둔 친구였는데, 그 아들이 구청 공무원이 되었다고 그렇게 자랑을 했던 친구였다. 그러나, 손자 얘기만 나오면 풀이 팍 죽던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니, 차츰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그 친구가 손자가 없었어.’

현주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초등학교 동창 명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 현주를 현석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