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Gold)과 피(Blood)-13

by 윤금현

13 장.



“어서 오십쇼!”

정장을 근사하게 차려입고, 목에는 하얀 나비 넥타이까지 맨 새끈한 젊은 청년이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인사를 했다.

진영은 어깨를 툭 치며, “수고한다.” 하고 말했다.

고개를 든 젊은이는 “예, 형님!” 하면서 무척 반가워한다.

준영은 속으로, ‘자식, 나도 옛날에 이랬는데…….’ 하면서, 과거 사채업을 하던 때, 엄밀히 말하면 사채업자의 똘마니 생활을 하던 때를 떠올렸다.

“왜 그동안 통 뜸하셨습니까? 요새 애들 싹 다 갈았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 한 번 놀아볼까?”

“형님, 준비하겠습니다!”

“야, 야, 앞서가지 마라. 그리고 여기는 내 형님이시다. 잘 봐 둬라.”

룸살롱 웨이터, 가슴팍에 ‘브루노’라고 새겨져 있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잘 생긴 청년은, 준영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와, 진짜 닮으셨습니다.”

진영은 준영의 팔을 잡고 룸살롱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형, 여기는 강남에서도 알아주는 데야. 여자들이 화끈하지.”

준영은 왠지 여기서 진영에게 밀리기 싫었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이랄까, 그런 게 가슴 속에서 솟아 올랐다.

“진영아, 그래도 내가 형인데, 이런 데서 안 놀아봤을까 그러냐?”

“예, 형님, 알아 모시겠습니다.”

진영은 준영을 놀리는 게 재미있었다.


둘은 룸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어여쁜 마담이 들어오더니 진영의 옆에 착 안겨 붙었다.

“오빠, 오늘은 어떤 애들로?”

준영이 보니 둘 사이가 보통이 아니다.

진영은 마담의 푹 패인 상의 위로 보이는 가슴골로 눈길을 주다가, 슬쩍 여인의 젖가슴을 옷 위로 만졌다.

“아이, 오빠, 오늘따라 왜 그래”

마담은 웃으면서 진영에게 눈을 흘겼다.

“정 마담, 내가 원래 컨셉을 좋아하잖아.”

“그럼, 오빠 취향은 내가 잘 알지. 말해 봐, 오늘은 어떤 거야?”

진영은 준영을 보면서 마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형, 오늘은 어떤 애를 원해?”

그러나 준영은 뚱한 표정이었다.

“왜,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진영아, 지금 일곱 시다. 무슨 술을 마신다고 그러냐?”

“형, 나 오늘 아홉 시에 약속있댔지. 여기서 간단히 마시고 가자.”

“오빠, 약속 있어? 아이, 오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네.”

진영은 다시 마담의 얼굴을 보더니, 마담의 보드라워 보이는 턱을 슬쩍 올렸다.

“오늘 컨셉은 정했다. 마담이 둘 골라 데려와. 어디 한 번 보겠어.”

진영이 말을 끝내자, 정 마담은 발딱 일어나더니, “금방 데려올께.” 하면서 룸을 나갔다.


* * *


“여보, 오늘은 별로 안 드시네요?’

순화는 종환을 걱정스런 눈으로 보았다.

“더워서 그런지 입맛이 없네.”

종환은 젓가락을 놓았다.

“아빠, 오빠가 걱정되서 그래?”

“그래. 동생하고 산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항상 걱정이다.”

선경은 그런 아빠가 더 걱정이 되었다. 자나깨나 준영 걱정 뿐인 아빠. 선경은 그런 아빠가 측은하게도 생각되었다. 자기가 낳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도 준영을 이뻐했던 아빠. 선경은 아빠의 마음을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우울해질 것만 같았다.

“선경아, 너는 남자 없냐?”

“예?”

“아무리 기간제라지만, 그래도 학교 선생 아니냐? 남자들이 좋아할 여자 직업이잖아.”

“없어요.”

선경은 한 번에 종환의 말을 잘라버렸다.

‘나한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빠.’

선경은 준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 * *


준영은 슬슬 취기가 올라왔다. 옆을 보니 진영은 상의를 탈의한 채, 짧디 짧은 원피스 하나만 걸친 아가씨와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오빠, 어딜 봐? 날 봐야지.”

준영의 옆에 앉은 아가씨가 준영의 고개를 자기 쪽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준영의 목에 손을 둘렀다.

“근데, 오빠는 누구야? 어쩌면 이렇게 회장님 아들하고 닮았어?”

“어,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준영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오빠, 나는 선희고, 쟤는 희선이야. 기억나?”

“야, 너희들 이선희하고 김희선이 이름 땄냐?”

진영이 혀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오빠, 오빠도 아리랑 이사겠네?”

선희라고 소개한 아가씨는 준영이 모를 소리만 해댔다.

“아리랑? 그게 뭐냐?”

“어? 오빠, 그것도 몰라? 저 오빠가 아리랑 상무잖아. 피이, 다 알면서…….”

준영의 머리에 식음료계에서 가장 크다는 프랜차이즈 그룹이 떠올랐다.

[아리랑]

전국에 가맹점만 거의 천 개가 된다는 그 아리랑. 진영이 그 아리랑 상무라니……. 준영은 진영의 직업이 뭔지, 그리고 자신의 친부모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아직까지 몰랐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

진영의 소리가 커지자, 선희라는 아가씨는 찔금했다.

이걸 본 희선이라는 아가씨가 진영을 부둥켜 안았다.

“오빠…….”

희선의 목소리에서 교태가 흘렀다.

진영은 준영을 돌아보더니, 선희에게 눈짓을 했다.

“오빠, 우리는 잠깐 나가자.”

선희가 준영에게 팔짱을 껴왔다.

“왜?”

준영이 팔을 빼려하자, 선희는 더욱 더 팔짱을 꼭 끼면서 준영을 재촉했다.

그러나 준영은 손목 시계를 보았고, 어느덧 시간은 여덟 시 삼십 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진영아, 시간이…….”

그러나 진영은 희선이에게 가려져 있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형, 옆방에라도 가.”

“오빠, 나가자.”

선희가 준영을 끌었고, 준영은 순순히 선희에게 끌려 복도로 나갔다.

“오빠, 저쪽으로.”

“아니. 휴게실로 가자.”

준영의 음울한 목소리에 선희는 아무 말도 못했다.


* * *


“아빠! 엄마!”

윤영은 현관 문을 들어서자마자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아빠! 엄마!”

주방을 담당하는 김 실장이 나오면서, 윤영을 맞았다.

“아니, 윤영아, 왜 그래?’

“김 실장님, 엄마, 아빠는 어디 갔어요?”

윤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안방 문이 열리며, 현석과, 머리 매무새를 고치면서 미현이 나왔다.

“아니, 엄마, 아빠는 다 늙어서 주책이야.”

현석과 미현이 눈이 동그래졌다.

“왜 그러냐?”

“대체 왜 둘이서만 방 안에 있냐고요?”

현석은 윤영의 말을 무시하고 소파에 털썩 앉더니, 미현을 불렀다.

“이리 오세요. 마나님.”

윤영은 자기도 소파에 가서 앉더니, 미현을 보았다.

“엄마, 글쎄 있잖아…….”

“너, 밥은 먹었냐?’

꺼억!

“어휴, 술냄새……. 너, 술 먹었구나?”

“엄마, 그게 있잖아. 지금 술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 이 가시내야! 맨날 그렇게 하고 다니니, 남자가 붙겠냐?”

미현의 말에, 윤영은 두 손을 허리춤에 대고 허리를 세웠다. 눈에서 불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내가 남자 얘기 하지 말랬지?’

“윤영아, 좀 조용히 말 좀 하자. 이거 시끄러워서 살겠냐?”

끝내는 현석마저 입을 열었다.

“아빠, 엄마! 내가 택배 기사를 찾았어!”

“뭐?”

이번에는 현석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미현을 보니, 미현은 덜덜 떨고 있었다.

윤영의 얼굴이 자신감으로 활짝 폈다.

“진영이 오빠랑 같이 살고 있던데…….”

“뭐?”

현석은 그만 고함을 치고 말았고, 미현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 * *


준영과 선희가 휴게실에 들어온 지 삼십 분 쯤 지나자, 희선이 휘청거리면서 휴게실로 들어왔다. 애써 모양을 낸 것이 분명한 머리가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오빠, 들어오래.”

희선의 힘빠진 목소리를 뒤로 하고, 준영은 혼자서 룸으로 들어갔다.

진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옷을 깔끔히 차려입고 있었다.

준영은 진영의 맞은 편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너, 약속 있다며?”

“상관없어. 여기서 기다리면 돼. 자, 한 잔 마시자.”

진영은 맥주잔에 맥주를 반쯤 따른 뒤, 거기에 양주를 또 절반쯤 부었다. 잔을 흔든 다음, 다른 빈 잔에 절반을 따른다. 그 한 잔을 준영에게 내밀었다.

“형, 이건 내 식이야. 아무한테나 안 줘.”

“그래, 고맙다.”

준영과 진영은 건배를 했다.

“그런데, 진영아?”

“왜?”

“부모님이 아리랑 운영하시냐?”

“어, 몰랐어? 내가 얘기 안 했나?”

진영은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 * *


“누나, 다음에 만나는 게 어때?”

폰을 꼭 쥔 손혜정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카사블랑카]

혜정의 폰 화면에 보이는 메시지 문구였다.

“누나, 여기 룸살롱이야. 다음에 만나.”

“너, 누나 성질 알지?”

병승은 혜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혜정은 그런 병승을 놓아둔 채, 파란색 마세라티의 조수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한참 노려보더니, 혜정은 계단으로 빨려가듯 사라졌다.


* * *


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준영과 진영, 둘은 문이 천천히 열리는 것을 보았다.

문에서는 정 마담이, 준영은 처음 보는 아가씨를 데리고 들어왔다. 준영은 아가씨의 미모에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입이 떡 벌어졌다. 룸살롱 아가씨들도 예뻤지만, 지금 룸으로 들어오는 아가씨는 예쁜 게 문제가 아니라, 분위기에서 차이가 났다.

“진영 씨, 나 왔어.”

준영은 그만 더욱 놀라고 말았다. 아가씨가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더러, 진영에게 아주 쉽게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앉아. 혜정 씨.”

혜정이라 불린 아가씨는 진영의 옆에 앉았고, 준영은 그녀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선경이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여자였다.

“저쪽은 내 형님. 이준영이야.”

진영은 일부러 준영의 성을 틀리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혜정은 목소리까지 나긋나긋했다.

“예. 준영이라고 합니다.”

준영도 일부러 성은 빼고 말했다.

“이쪽은 태화 투자 신탁 회사의 공주이신 손혜정. 부자집 딸내미지.”

진영의 말투에는 비꼼이 철철 넘쳤다. 그러나 손혜정은 눈빛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진영 씨, 술 다 마셨어?”

진영은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럼 나가자. 여기 일 끝났지?”

준영은 혜정의 말에 이끌리듯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나, 소파 옆 옷걸이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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