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Gold)과 피(Blood)-21

by 윤금현

21 장.



펜트하우스 거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소파와 의자에 다들 모여 앉았다.

준영의 친부모인 이현석과 박미현이 나란히 앉았고, 맞은 편에 준영과 진영이 앉았다. 옆의 작은 의자에는 선경이 앉았다. 미현은 아직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머리에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애기 침대에 눕혀져 있던 준영을 안아 올리더니, ‘형이 양보해주라.’ 라고 했던 그 장면이 자꾸만 생각났다. 미현은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다시 준영을 보았다.

“살다보니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준영아.”

미현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밖에서는 가을비가 그치지도 않고 하루종일 내리고 있었다.

“그래, 같이 사니까 어떠냐?”

현석이 준영에게 말을 건넸다.

“좋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준영의 말투는 아직 딱딱했으나, 그 눈빛은 그렇게 슬퍼보이지는 않았다. 준영이라고 해서 왜 친부모가 싫겠는가? 비록 키워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낳아준 부모인데…….

“아가씨는 준영이 동생이라면서?”

선경은 현석의 질문이 자신에게 오자, 깜짝 놀랐다. 처음부터 이 자리가 어색하기만 한 선경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선경은 의자에서 주춤주춤 일어났다.

“저는 가보는게 좋겠습니다.”

진영이 벌떡 일어나더니, 선경을 붙잡았다.

“아니, 왜? 저녁 먹고 가야지…….”

“그래, 그래요. 아가씨도 저녁 같이 먹어요.”

미현도 거들자, 선경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는 밤새고 해도 모자랄 것이니, 이제 조용한 데 가서 식사라도 하면서 얘기하자.”

현석의 제안에 모두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 * *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는 다들 비슷하다. 현석은 어떻게 월세집에서 전세집으로 옮겼으며, 어떻게 식당이 잘 되었는지, 그리고 그 식당을 비싼 값에 팔고, 다시 더 큰 식당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등 지금의 아리랑을 일구기까지의 이야기들을 했고, 준영은 학교 다닌 이야기하며, 입양된 사실을 알게 된 이야기하며,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고 그리 좋지 않은 생활을 하고 다녔던 이야기들을 했다. 더하여 앞으로는 싸움질 같은 것은 안 하겠다고 하였다.

“아버지, 그날 일은 제가 실수한 겁니다. 술김에 그만 괜히 시비를 걸었어요.”

진영이 현석에게 잘못을 시인했다.

“너는, 안 그런 애가 왜 그러냐?”

미현이 진영에게 타박을 했다.

“그래도 그날 형이 있어서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형, 고마워.”

진영이 준영에게 감사를 하자, 준영을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휴, 정말 걱정했습니다.”

선경까지 한마디 했다.

“이제 다시는 안 그런다. 선경아, 믿어.”

선경은 준영의 손을 잡았고, 그 모습을 진영은 흘긋 보았다.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집에 가봐야겠어요.”

선경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준영도 같이 일어났다.

“제가 바래다 주겠습니다.”

“그래라.”

현석은 선선히 말을 했고, 미현은 못내 섭섭한 표정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럼 다시 여기로 올 거지?”

“예. 오늘은 진영이하고 같이 있으렵니다.”

“여보, 우리도 갑시다.”

현석은 미현을 재촉하여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걸로 식사와 대화는 끝났다.


* * *


준영과 선경이 연남동 빌라, 최종환의 집에 들어서자, 송순화가 반갑게 이들을 맞았다.

“준영이랑 앞에서 만났구나?”

준영은 멀뚱한 표정으로 선경을 보았고, 선경은 준영에게 눈짓을 했다.

“예, 엄마, 글쎄 회식이 재미가 없어서 그냥 왔어요.”

“잘 했다. 술만 마시면 뭐하니? 요새 선생들 그렇게 술 많이 마시냐?”

선경은 키득거렸고, 이제야 준영은 분위기 파악이 되었다.

“너…….”

준영은 일부러 선경에게 눈을 부라리며, 선경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아야!”

그때 다시 문이 열리며 종환이 들어왔다.

“어, 너희들 왔구나.”

종환의 얼굴이 환해지며, 그 눈에서 반가움이 흘러 넘치자, 준영은 비로소 자신의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되었구나. 참 인연이란 것이…….”

종환은 고개를 끄덕였고, 순화는 손등으로 눈등을 찍어 눌렀다.

“그래도, 그분들이 낳아주신 친부모니까, 준영이 네가 잘해야 한다.”

종환의 엄한 목소리에 준영은 환하게 웃었다.

“그럼요. 믿으세요.”

“아, 참, 너 그런데 그 폭행 사건은 어떻게 되었냐?”

준영은 머리만 긁적거렸고, 선경이 옆에서 다 일러바쳤다.

“오빠가 방방 날면서, 네 명을 때려 눕혔는데, 야, 정말……. 조폭 저리 가라야…….”

“어떻게 됐냐니까?”

“진영이 부모님 회사 변호사가 와서 합의해 주고 갔습니다.”

종환은 천장을 보면서 무슨 생각에 잠겼다.

“또 신세를 졌구나. 여보, 통장하고 도장 가져오시오.”

종환은 순화를 돌아보았다.

순화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나왔다.

“준영아, 이건 말이지. 십 년 전부터 네 친부가 네 앞으로 저금해 놓으라고 준 돈이다. 내가 그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모았다. 한 달에 백 만 원씩 모아서, 십 년이니까, 1 억이 넘는 돈인데, 이자도 붙어서 한, 1 억 5 천 될 거야. 가져가 쓰거라.”

종환은 통장과 도장을 준영의 앞으로 밀어주었고, 옆에 있던 선경의 눈이 화등잔만해졌다.

“아빠, 1 억 5 천…….”

준영은 통장과 도장을 다시 종환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동안 키워주신데 대한 제 마음입니다. 그리고 선경이 시집갈 때 쓰시면 되겠네요.”

아무도 말이 없다.

한참 후 선경이 입을 떼었다.

“오빠, 그래도 오빠 돈인데…….”

“아니야. 우리 사이에 내 돈 네 돈이 어딨냐? 아버지, 실은 진영이가 자기 생활비를 반씩 나누어서 쓰자고 해서…….”

“뭐, 진영이가?”

순화의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예. 그래서 돈은 있어요. 이건 가지고 계세요. 분명 쓸 데가 있을 겁니다.”

준영은 다시 선경을 보면서 눈을 찡긋해 보였고, 선경은 그런 준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게 하자.”

종환은 선선히 준영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아버지.”

“왜?”

“이제 제 앞으로 돈은 그만 보내라고 할께요.”

종환은 순화를 보았고, 순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렇게 하려무나. 그동안 너무 오래 받았어.”


* * *


“여, 우리 딸, 그래 경찰서에 가 보니 기분이 어때?”

진태가 하하하 웃으며 혜정을 놀려대자, 혜정의 입이 삐죽 나왔다.

“흥, 바보 같은 녀석이……. 아빠, 남자들은 다 그런 허세를 부리고 싶을까?’

병승도 따라서 웃었다.

“누나가 완전히 데인 모양이네. 진영이 형한테.”

“말도 마라. 시비는 먼저 걸고, 뒷처리는 형이 해주고, 참, 내…….”

“혜정아, 그건 우리 똑똑한 여자들이 이해해야지, 안 그래?”

정화와 혜정은 서로를 쳐다보며 호호호 웃었다.

“병승아, 여자들이 저렇단다. 너도 잘 봐둬라.”

“아빠, 이번 일은 진영이 형이 크게 잘못한 거에요. 아빠도 다 아시면서…….”

“아니, 내 말은…….”

“호호호, 이번 일은 남자들이 잘못한 거네요? 그렇죠?”

정화가 진태의 편을 안들어주자, 진태는 어깨만 으쓱하더니, 주방 한 켠의 미니 바로 갔다.

“아, 술이여! 그대는 먹으라고 있는 건가? 아니면 마시라고 있는 건가? 그것이 문제로다.”

“와하하하!”

진태의 말도 안 되는 넋두리에, 그만 정화, 혜정 그리고 병승까지 다함께 웃어버렸다.

“병승아, 여자들은 놔두고, 우리 남자들끼리 한 잔 하자.”

병승은 진태가 말하자, 얼른 아빠의 곁으로 갔고, 이걸 본 혜정은 엄마 정화의 옆으로 갔다.

“엄마, 진영 씨, 정말 실망이야.”

“남자들은 다 그래, 네 아빠라고 별 수 있었겠니? 안 그래요, 여보?”

그러나 진태와 병승은 서로 잔을 쨍하면서 술을 마시느라 정화의 말에는 신경도 안 썼다.

“병승아, 나도 이번 일로 살짝 실망하기는 했다. 거, 진영이 말이야. 어른 되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뭘 걱정하세요?”

“네 누나 말이다. 이러다 처녀 귀신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진태의 뒷 부분의 말은 정화와 혜정에게도 이번에는 똑똑히 들렸다.

“아빠, 다 듣고 있어요.”

혜정의 큰 소리가 득달같이 날아오자, 두 남자들은 몸을 오싹거렸다.


* * *


“그래. 나다. 조사해 봐라. 철저히 해.”

“예, 알겠습니다. 형님.”

김상원은 전화를 끊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이상한 일이야. 그 거지 새끼한테 어떻게 변호사가 달라붙었지?”

상원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야, 너희들이 볼 때는 어떻더냐?”

“이상했습니다. 최준영이 싸움 잘 하는 거야 알지만…… 설마 변호사가 와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처리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참, 상상도 안 되는 일입니다요.”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해.”

김상원은 준영에 대한 뒷조사를 지시했지만, 아직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걸 회장님께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