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도발이 제공한 절호의 기회
"긴급 속보! 미사일 발사! 북한의 미사일 발사! 건물 안 또는 지하로 대피하기 바랍니다. (총무성 소방청)"
화요일 아침 7시 27분 홋카이도와 아오모리현 등 일본 전역의 주민들 휴대전화에 착신된 긴급 문자 메시지다.
학교 가던 초등학생들, 출근하던 회사원들 할 것 없이 모두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마하 17의 속도로 일본 상공을 통과한 북한의 IRBM(중거리 탄도미사일)은 일본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구축해 놓은 '제이 얼러트' (J-alert) 시스템이 가동됐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을 씻기에는 역부족이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 열도 상공을 넘어 태평양에 떨어진 것은 이번이 벌써 일곱 번째다. 1998년 '대포동' 쇼크가 최초였다. 그것은 북한이 일본에 실질적 위협으로 부상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이번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 직후 곧바로 한일 외교장관 핫라인이 가동됐다. 박진 장관과 하야시 마사요시 외상은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고 유엔 안보리 등 국제사회에서의 공동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전화 회담을 통해 북한의 도발을 강력 규탄하고 엄정 대응을 위한 한일 협력에 의견을 같이 했다. 북한은 최근 핵무기를 사실상 언제든 공세적으로 쓸 수 있도록 법까지 만들었다. 최근에는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미사일을 가리지 않고 쏘고 있다. 이틀에 한 번꼴이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물론 괌,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실질적 안보 위협은 역설적으로 한일 협력의 필요성을 강화해주었다. 징용자 배상 문제 등 과거사 문제 때문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던 한일관계가 회복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3일 국회 연설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에 대한 대응에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와 긴밀히 의사소통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징용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책임 지고 해결방안을 마련하라던 이전의 고자세와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꿈쩍도 않을 것 같던 일본이 한일관계 개선을 향해 한 발짝 다가온 것이다.
북한의 위협도 요인이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보낸 관계 개선 신호의 영향이 더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간담회든 약식회담이든, 뉴욕에서의 정상 간 만남. 그리고 그 이전 외교장관 회담과 접촉, 전화 통화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북한의 치명적 도발과 실질적 위협에 한국과 북한은 따로국밥 대응을 했을지 모른다. 그것이 바로 북한이 노리는 것일지 모른다.
급변하는 안보 질서와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서는 양국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득이 벼랑 끝에 섰던 한일 양국의 간극을 그나마 메워주고 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안보가 먼저다. 안보가 무너지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당장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지소미아를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양국이 가진 각자의 북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북한의 도발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소미아 파기 선언의 원인이었던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가 철폐되어야 한다.
과거사 청산도 국가가 존재해야 가능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악몽을 기억하는 일본은, 행여 현실화할지도 모를 북핵이라는 또 다른 악몽을 꾸기 전에 한국이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 인권을 유린당한 강제동원 피해자들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데 일본 정부와 관련 기업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것이 기시다 총리가 말한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 나라'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