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과 간담 사이

한일 네티즌 댓글 읽어보니...

by 윤경민

회담과 간담 사이... 한일 네티즌들 댓글 읽어보니...


한국 정부는 '약식 회담'이라고 했고 일본 정부는 '간담'이라고 했다.

뉴욕에서 있었던 한일 정상 간의 만남 이야기다.


태극기와 일장기를 내건 '공식 회담'은 아니었다.

일본이 외국 정상과의 만남을 간담으로 표현한 일이 있던가?

아마도 처음이거나 있더라도 매우 이례적이다.


일본어 사전을 찾아보았다.

일본의 일본어 사전은 '터놓고 친근하게 이야기하는 일'이라 설명한다.

예문으로는 '선생님과 부모가 간담하다(간담회)'를 제시해놓았다.


こん‐だん【懇談】 の解説

打ち解けて親しく話し合うこと。「先生と父兄が―する」「―会」


일본인 지인에게 물으니, 회담은 공식적이며 격식을 갖춘 것이고, 간담은 가볍고 친근감 있는 뉘앙스라고 한다. 친근감이라니... 그랬을 리가...


일본 정부는 왜 이번 만남을 굳이 회담이 아닌 간담이라고 발표했을까?

며칠 전의 소동에 기인한다.

한국 정부가 뉴욕에서의 한일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발표하자 기시다 총리는 한국 정부가 결정되지 않은 사실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그렇다면 반대로 만나지 않겠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던 것이다.


20퍼센트대로 추락한 지지율, 자민당 내 입지 등 그가 처한 일본 내 정치 환경과 더불어 그의 그릇과 도량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없던 일로 하겠다고 으름짱을 놨다가 만나니 '회담'이라는 표현을 쓰기 멋쩍었던 것인가?

일본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은 한술 더 뜬다.


"협의할 필요가 있는 건가? 요청을 받아들이는 쪽도 돌아이다.

(중략) 일본이 1밀리라도 양보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이 댓글에 3만 3천 건의 좋아요가 찍혔다.


또 다른 네티즌은 "한국 측이 전면 양보한 다음 대통령이 바뀌면 그 양보도 철회하겠지. 징용공뿐 아니라 위안부 문제, 다케시마(독도) 문제도 포함해 ICJ(국제사법재판소)에서 결론을 내고 향후 그에 따르도록 한국 측이 양보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다. 그걸 못하면 기시다 내각은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기시다 정권을 강하게 압박하는 내용이다.

더한 압력도 있다.


"약속을 깨도 일본은 양보해준다는 아베 정권 이전의 일본 정부 대응으로 돌아간 것이냐, 이래선 안된다, 차기 정권은 다카이치(자민당 내 강경 극우 정치인으로 꼽히는 현 경제안보담당 장관)가 하지 않는 이상 일본 국민은 절망의 미래밖에 없다"


이처럼 뻔뻔하고 격앙된 반응에서 과거사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반성의 인식은 찾아볼 수가 없다.

가해 역사는 깡그리 잊고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도덕적 우위에 서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청구권을 상호 포기하기로 한 1965년 한일협정만을 내세우고, 박근혜 정부 당시 있었던 위안부 문제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파기한 것을 들어 되레 공세를 취하는 것이다.

도둑이 매를 드는 적반하장이다.


한국계이면서 대표적 혐한파인 변진일 평론가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만일 이번에 일본이 윤석열 대통령의 면을 세워주기 위해 정상회담에 응했다면 다음은 한국이 기시다 총리의 양보에 답할 차례다. 윤 정권이 어떤 해결안을 제시할지 흥미진진"


인식의 차가 이렇게나 크다.


한국 네티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국내 포털 사이트의 관련 기사 댓글을 찾아보았다.


"한국은 일본한테 아쉬울 게 하나도 없는데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이 정도 수위면 양반이다.


"조문도 까이고 바이든 회담도 까이고 뭐라도 해야 해서 기시다 총리 있는 빌딩까지 찾아가서 구걸해서 회담 진짜 저런 게 대통령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일본 비판보다 정권 비판 댓글이 주를 이룬다.


"일본에 뭘 갖다 바치려고 저럴까? 문통이 단절한 일본과의 외교 복원? 국민들이 그걸 반길 거라 생각하나? 뉴라이트 같은 친일파들이 곁에서 종용하나? 궁금하네"


익명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진영 간 대립이다.


"댓글들 보면 한심하다. 북조선은 철천지 원수고 일본은 그래도 자유우방인데... 반일 감정 부추겨 대북 적개심 희석시키자는 좌빨들의 댓글에 좋아요가 저리 많이 붙는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 수준이 아니다. 틀림없이 좌표 찍어 달려드는 두루킹 식 언론 조작이다!"


이처럼 양국 국민의 인식 차이와 더불어, 국내의 이전투구식 의견 대립이 크다는 것은 양국 간 '현안' 해결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예고한다.


'회담'이든 '간담'이든 두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우선 관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한 점이 중요하다.

두 정상은 관계 개선을 위한 전제로 '현안 해결'을 제시했다.

그 해결해야 할 현안이 '징용자 배상 문제'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첫술에 배부르랴.

이제 시작이다.

피해 당사자를 설득해야 하고, 국민적 합의도 끌어내야 하고, 일본의 호응도 얻어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의 어깨가 무겁다.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관리하고 미중 패권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과거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

미워도 필요할 땐 손을 잡아야 한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건 역사가 말해준다.

국익을 위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일본은 공을 떠넘기지 말고 화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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