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민 칼럼] 결혼식 비용만 3천만 원...
몇 해 전 친구 딸 결혼식에 갔다. 예식장은 여의도의 한 고층빌딩에 있었다. 딱 봐도 고급이었다. 사업에 성공했고 인맥도 넓어서인지 하객이 그 넓은 예식장을 가득 메웠다. 나를 비롯한 동창생들도 꽤 많이 참석했다.
격식 갖춘 웨이터들이 일사불란하게 고급 코스 요리를 테이블마다 실어 날랐다. 와인도 수시로 따라주었다. 하객으로 참석한 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1인당 19만 원짜리 식사라고 했다.
어이쿠. 축의금 10만 원 내고 19만 원짜리 밥을 먹으니 민망했다. 다른 한 친구는 부인과 딸 둘 까지 데리고 참석했다. 축의금을 얼마 냈는진 모르겠으나 혼자 참석한 나보다 훨씬 민망했을 듯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일주일 후쯤, 와줘서 고맙다는 전화가 왔다. 그 친구에게 결혼식 비용이 꽤 많이 들었겠다고 말했다. 친구는 액수는 밝히지 않으면서 등골이 휘긴 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애들이 원하니 어쩔 수 없지 않냐고.
그보다 몇 해 전 은사님 딸 결혼식이 있었다. 서울 시내 최고급 호텔이었다. 예식장 입구에는 축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고급 양식 코스요리가 제공되었다. 공짜 밥을 먹고 고급 답례품까지 받아오는 행운을 누렸다.
신부 집안도 상당한 자산가지만 신랑 집안도 국내서 내로라하는 중견기업 오너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결혼식 비용이 얼마나 들었을까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결혼식 비용과 신혼집 마련이 부담되어 결혼을 미루는 젊은이들 늘고 있다고 한다. 가뜩이나 저출생 고령화 위기가 심각한데 말이다.
소비자원이 최근 조사한 결과 평균 결혼식 비용이 2천백만 원이라고 한다. 결혼식장 빌리고 하객들에게 식사대접하고 신랑신부 스드메(스튜디오촬영·드레스·메이크업) 비용만 이다.
지역별로 다른데 경상도가 천 2백만 원으로 가장 쌌다. 가장 비싼 곳은 그 세 배였다. 서울 강남은 3천4백만 원이 넘었다. 이러니 결혼식 치르기 겁나는 청년이 적지 않을 수밖에.
하객은 몇 명을 초대할까? 하객 수가 신랑신부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동안 뿌린 게 얼만데, 나도 이제 걷어들여야지, 이런 생각 때문에 돈 많이 드는 결혼식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부모는 과연 자식들 결혼식 비용을 지원해줘야 하는 것일까, 지원한다면 어디까지 지원해야 하는 걸까? 당장은 아니지만 그리 머지않아 결혼할지 모를 자식을 둔 부모로서도 고민이다.
순간 떠올랐다. 10년 전 화제를 모았던 유명 배우 커플의 결혼식. 원빈 이나영 부부의 작은 결혼식이다. 식장은 야외였다. 파아란 보리밭이 드넓게 펼쳐진 강원도 정선 청보리밭.
비용은 110만 원 들었다고 한다. 하객은 50명. 가마솥에 끓인 국수와 전, 만 원짜리로 대접해 식대는 50만 원으로 끝냈다. 신부 대기실은 민박집을 빌렸다. 방 3개를 이틀 빌리는데 들어간 비용은 60만 원. 그게 다였다고 한다. 심지어 부케와 같은 꽃장식도 청보리밭 주변에 핀 메밀꽃으로 당일 만들었다고 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들이라고 왜 화려하고 호화로운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수많은 하객들로부터 축하받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치를 돈이 없진 않았을 테다.
고비용 결혼식이 우리 만의 문제는 아니다. 평균 결혼식 비용이 미국은 33,000달러(약 4,400만 원), 영국은 23,250파운드(약 4,000만 원) 든다고 한다. 신혼부부에게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안기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마이크로 웨딩'이 유행이다. 그래서 2024년 기준 미국의 평균 결혼식 하객 수는 131명으로 줄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신부가 중고 드레스를 입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평균 결혼식 비용이 161만 엔. 약 1500만 원으로 우리보다 낮다. 이유가 있다. 평균 하객 수가 한국보다 훨씬 적다. 평균 70명 안팎이다. 지난 2006년 일본 근무 때 지인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일이 있다. 하객은 회사 동료 중심으로 50명 정도였다.
결혼은 한 부부가 백년가약을 맺는 기념식이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체면을 세우는 날이 아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결혼식보다는 작지만 독특한 결혼식을 기획해 보는 건 어떨까? 허례허식의 굴레를 벗고 작고 소박한 결혼식이 정착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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