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덜낸다, 국수를.
불개미 가족의 강원도 막국수집 상륙 작전
한 여름 땡볕 아래 발갛게 달아오른 6개의 얼굴이 강원도 깡촌, 지도에도 없는 변두리 민박집에 들어섰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이 허름한 민박집에 이들이 들어오게 된 이유는 딱 하나, 벌거죽죽한 페인트로 쓰여진 막국수라는 세 글자였다.
스스로를 불개미라 부르는 이 가족은 대장 불개미와 길잡이 불개미의 실수로 길을 잃어 아침부터 촐촐 굶은 상태였는데, 이들에게 허기는 감당치 못할 괴로움이었고 오전 내내 헤메다 마주한 그 네 글자는 마치 오아이스 같았다. 게다가 당시 대장 불개미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 강원도 탐식 기행 중 처음으로 맛본 막국수의 맛이 혀 끝에서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던지라, 위장에서 올라오는 간절함은 식도를 타고 목젖을 흔들기 시작했다.
당시 상기된 6명을 맞이한 이는 한 노모였는데, 시골집 목재 마루를 테이블 삼아 어쩌다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메밀국수와 하룻밤 숙소를 제공하고 용돈 벌이나 하는 이였다. 그러니 느닷 없이 홀린 듯 들어선 단체 손님을 반가움 보다는 당혹스러움으로 응대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건 자칭 불개미 가족의 끝을 모르는 신들린 먹부림이 해낼 수 있는 일을 육감적으로 느낀 결과 나온 동물적인 경계였을 수도 있다.
들어오는 동시에 막국수 6그릇을 시킨 불개미들은 마루에 어설프게 걸터앉아 노모가 국수를 삶는 모습을 초조하게 주시했다. 반복적인 매미 소리와 천천히 끓어오르는 국수물이 기다림을 더 길게 만들었지만, 다행히 공복에서 오는 허함이 현기증이 되려고 하는 찰나에 국수 6그릇이 불개미 가족 앞에 놓였다.
소박하게 놓인 막국수는 청순했다. 꾸미라고는 김가루, 약간의 양념, 깨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맛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깊이가 있었고 간은 놀랍도록 정밀했다. 슴슴하면서 간간하고, 달큰하면서 쨍한 국물을 급하게 들이키고 나면 툭툭 끊기는 메밀 면발을 입 안 한가득 밀어 넣게 되고, 그러다보면 또 국물이 당겨서 결국엔 빈그릇만 남는 그런 맛이었다.
그릇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막국수를 들이키던 6명은 어느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그릇을 바라봤다. 면발이 눈에 띄게 줄어있었고 김가루가 묻은 6명의 입은 아쉬운 듯 쩝쩝이고 있었다. 단 몇 분만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질 않을 속도였지만 대장 불개미는 당황한 기색 없이,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사리를 추가했다. 자칭 불개미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이들은 막국수를 들이켰고 처음 6그릇은 그저 전채요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첫번째 사리 추가 후 한 3분의 1 정도 먹었을까, 탐식가답게 이들은 다시 국수 사리를 요청했다.
이 때부터는 노모와 불개미 가족 간의 전쟁이었다. 시원한 막국수로 식은 얼굴에서 말라가는 땀과 쉴 새없이 국수 사리를 끓여대면서 흐르는 땀 간의 전쟁이기도 했다. 중간에 제일 어린 불개미가 배불러 죽겠다는 선언을 했을 때 가족은 위기를 맞은 듯 했지만, 지금 안 먹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라는 말과 함께 부대장 불개미는 노련히 사리 추가를 해 다시 기선을 제압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치열한 전쟁도 막을 내리긴 했다. 백기를 먼저 든 노모의 비장한 한마디에 어쩐지 싱거울 정도로 갑자기.
"미안한데 국수가 다 떨어졌어."
노모의 선언 이후 찾아온 정적은 제 3자라면 하루 종일, 아니 그런 시골 식당이라면 며칠도 족히 갈 양의 재료를 모조리 먹어치웠다는 데서 오는 겸연쩍음이라고 오해할 만했다. 하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두번째로 어린 불개미가 불개미 가족을 대표해서 단언컨데, 그것은 분명히 정복을 한 뒤 성취감을 만끽하는 순간 응당 찾아오는 평온함이자 평생토록 곱씹을 수 있는, 이 날 먹은 막국수만큼 맛있는 추억거리를 얻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