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지킬건가요
(4/14, 금) 유시민처럼 글쓰기 11일 차(729) / <국가란 무엇인가>(돌베개, 2017, 개정신판)(p.31)
국가의 창설은, 자연이 우리들 각자에게 부여한 권리를 모두가 똑같이 포기하고 - 내가 다른 사람에게 허용하는 만큼의 자유를 나도 누리는 데 만족하는, 상생相生의 길이다. 타고난 자연법의 권리를 공동의 권력에 양도하기로 한 사회계약을 홉스는 신약(信約 약속한 일을 앞으로 지키리라 믿음)이라고 했다.
신약은 각자의 권리를 동시에 서로 주고받는 보통의 계약과는 다르다. 한 당사자인 인민은 즉각 계약을 실행하지만, 다른 당사자인 통치권자는 일정한 기간 뒤에 상응하는 권리를 양도하며 인민은 이를 믿고 기다린다. 통치권자는 인민에게 평화와 안전을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신약을 이행했다.
물론 사람들이 그런 선약을 실제로 맺은 적은 없다. 그런 계약에 누구도 서명하지 않았다. 홉스의 신약은 상상력으로 지어낸 관념이며 사실이 아니라 신화일 뿐이다.
*글 분석 포인트
1. “‘국가의 창설’은 상생의 길이다.” 이 문장 안에 부연 설명하는 문장을 콤마(,)로 처리하며 끼워 넣었다. 오호 **
2. 홉스는 이런 사회 계약을 ‘신약’(믿음의 약속)이라 규정했다.
3. 이런 계약은 불평등적이다. 인민은 즉시 계약을 실행하지만 통치권자는 시간이 지난 후 권리를 양도한다. (이 문장 뒤에 각주 8이 있다. /토마스 홉스, 전석용 옮김, <리바이어던> 177-178쪽 요약) - 요약을 잘하는 것은 글쓰기를 잘하는 지름길이다. 요약은 글의 양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자기 말로 바꿔 쓰는 것이다. 저자에게 배워야 할 글쓰기 기술 중의 하나.
4. 홉스의 신약은 하나의 관념이고 신화일 뿐이다.
*바꿔 쓰기
국가의 창설은, 개인의 자유의 범위를 사회적 협의를 통해 일정 부분 균등하게 제한한, 상생의 길이다. 타고난 자연에서 개개인에게 부여한 권리가 있지만 ‘국가’에서는 그 권리를 구성원 모두가 똑같이 포기하고 공동에 권력에 양도한다. 이러한 사회계약을 홉스는 ‘신약’이라고 했다.
신약은 각자의 권리를 동시에 서로 주고받는 보통의 계약과는 다르다. 자연법의 권리를 이양한 인민은 즉각 계약을 실행하지만, 그 권리를 넘겨받은 통치권자는 일정기간 뒤에 상응하는 권리를 양도한다. 인민은 이를 믿고 기다릴 뿐이다. 통치권자가 인민에게 제공하는 것은 국가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속적인 평화와 안전이다.
물론 사람들이 그런 선약을 실제로 맺은 적은 없다. 그런 계약을 본 적이 있는가? 홉스의 신약은 상상력으로 지어낸 관념이며 사실이 아니라 신화일 뿐이다.
*단상 쓰기
국가의 정의 : “국가는 일정 지역의 인간이 그들의 공동체적 필요를 위하여 창설한 것으로, 그 구성원들을 위하여 일체성과 계속성을 가지고 요청을 수행하며, 내외의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고 유지하려는 목적을 가진 조직이다.” (위키백과 (위키백과 보다 더 있어 보이는 출처를 찾고 싶은데… 정의가 명확해서 굳이 찾지 않았다))
그래서 국가의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이다. 위키백과 국가의 정의의 마지막 줄 “내외의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고 유지하려는 목적을 가진 조직이다”를 보면 그다음에 “국가의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이다”가 붙어도 자연스러운데, 바로 여기서 그렇지 않은 나라들을 떠올리게 된다.
국민의 생명보다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국가들. 국가 역시 생명체와 같아서 주변 국가와의 관계에서 팽창하고 움츠리는 것이 당연한데도 유난히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위정자가 인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기업의 성장을 통제하는 나라들이 있다. 두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1. 국가의 존재 이유, 당연히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 안전에 대한 욕구’를 독재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최근 읽은 책 <동기와 성격>에서는 안전에 대한 욕구와 통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저자 : 매슬로우. 5단계 욕구 이론으로 유명한 그 매슬로우 맞다) (p.91)
1. 안전에 대한 그들의 욕구는 자신이 의존할 수 있는 보호 장치, 더 강한 사람이나 체제를 찾는 모습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2. 법과 질서, 권위가 실제적으로 위협을 당할 때면 사회에서 안전욕구는 매우 시급한 것으로 대두된다. 혼돈이나 폭력혁명의 위협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다 상위 욕구를 느끼던 상태에서 더욱 그 위력이 강한 안전욕구를 느끼는 상태로 퇴행한다. 그럴 경우 일반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예측 가능한 매우 흔한 반응은 독재정권이나 군사통치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2. 동상이몽
나는 희한하게 그런 위정자에게서 <금쪽같은 내 새끼>의 부모의 모습을 본다. 자녀를 통제하고 억압하고 신경질적인 부모들.
신경증의 원인은 불안이다. 불안의 원인은 부모가 원하는 것이 자녀들이 원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오은영 박사는 건강한 인간관계 특히 건강한 가족관계란 가족 구성원 서로의 발전을 돕는 관계라고 한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와 사사건건 부딪히는 가정에서 부모가 첫 번째로 원하는 것은 사실 그런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부와 명예가 큰 재산인 부모는 자녀를 통해 그것을 지키려한다. 그래서 자녀의 수준이 미달할 때 그것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한다. 또는, 부모가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채워지지 않은 결핍을 배우자나 자녀가 채워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가족이 나의 불안을 자극하지 않도록 아무 일 없어 ‘보이는’ 상태가 유지되기만을 바라고 어린 자녀의 사고나 반항이 현상유지를 위협한다고 여긴다.
국부라는 말이 있다. 이 나라의 아버지이다.
‘아무리 부모가 못났어도 어떻게 자식들을 미워하겠는가, 다 자식 잘 되라고 그런 것이다’ , 혹은 ‘부모가 신도 아닌데 어떻게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겠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알고있다. 분명 자식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지 않고 오히려 학대하고 방치하는 부모가 있다는 것을. 그러나 가정에서 물리적 감정적 폭력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위정자가 뒤로 무엇을 원하든, 국가 제1의 목표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