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떠날 수 있었던 한 달 여행(1)

자녀 없이 7년째 살고 있는 부부입니다.

by 윤명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오롯이 한 달 이상을 24시간 내내 붙어있기 란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인들이 나에게 그 여행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고는 한다.

우리 부부가 한 달 여행을 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다녔던 회사 때문이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가 무려 적자 1조를 찍고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해고할 당시 해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돌아가며 쉬라고 한 달씩 무급휴직을 줬었다.

“아싸. 이게 웬 떡”


한 달이란 시간을 뭐하며 보낼까 고민했는데 고민은 의외로 쉽게 풀렸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이 회사가 너무 힘들다며 어깨를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보였고 나는 때려치우고 나랑 여행이나 가자며 잘됐다 외친 것이었다. 그렇게 몇 달 뒤, 먼저 그만두고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던 남편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났고 우리의 한 달 여행이 시작되었다.


한 달 여행 에피소드는 한 시리즈로 낼 수 있을 정도의 많은 즐거웠던 일과 힘들었던 일이 있지만 여기서는 기억나는 몇 가지 에피소드만 적어보고자 한다.


최악의 기억 No. 2: 아르헨티나에서 버스 타고 이동해 보셨나요?


우리가 엘 칼라파테에서 바릴로체로 이동하려고 계획을 잡았을 때 비행기를 조회해 보니 이미 다 매진이었다. 아르헨티나로 출발할 때 도착 숙소만 정해 놓고 여행을 시작했던 터라 비행기가 매진이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엘 칼라파테에서 며칠 더 있기에는 도시가 너무 작고 빙하 말고는 딱히 볼거리도 없어서 우린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면 무려 36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헐.”


남편은 아르헨티나 버스는 매우 잘 되어있어서 36시간 타고 가도 문제없을 거라고 나에게 이야기해줬고 반신반의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뭐 딱히 플랜 B도 없었으니까.

여기서 잠깐, 아르헨티나 장거리 이동 버스에는 ‘까마’와 ‘세미 까마’가 있다. (2016년 여행 기준) 까마는 의자를 180도 젖혀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누울 수 있는 형태이고 세미 까만 180은 안되고 150도 정도(?) 젖힐 수 있는 의자가 있는 버스이다. 까마를 탔으면 좀 나았었을 텐데… 까마 버스가 없었다. 별수 없이 세미 까마를 예약하고 36시간 이동이 시작되었다.


DSCN6759.JPG 36시간 버스


소위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이동하면 사육당하는 느낌이라고 하지. 그렇게 말한 사람들 모두 36시간 버스를 한 번 타보자. 비행기 사육은 정말 귀여운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아침, 점심, 저녁도 버스에서 줘서 먹고 중간에 기름 넣으려고 한 번 휴게소에 버스를 세웠다. 가는 동안 경찰이 들어와 신분증 검사도 두 번 정도 했었다. 아르헨티나는 신분증 검사가 굉장히 흔한 편이었다. USB 충전 포트도 없어서 마냥 핸드폰을 볼 수도 없었고 개인 모니터도 없었으며 버스 앞부분에 영화가 상영되었다. 물론 스페인어를 쓰는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영화였고 영어 자막도 없었다. 36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화장실이 좁고 냄새 나서 웬만하면 가지 않으려고 물도 덜 마셨다.


36시간 가는 내내 나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느낌을 받았다. 가만히 앉아 이동만 하는 그 느낌. 더디게 시간이 흘러 절대로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을 거란 느낌도 받았었다. 우주선을 타고 화성을 간다면 이런 느낌일까? 너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 듯. 버스는 달리고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고 그렇게 나의 36시간 버스 체험기는 끝이 났다.


지금도 가끔 남편에게 묻는다.

“36시간 버스 어땠어?”

“난 너무 재밌었어. 너랑 이야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남편은 스페인어 가능자다) 먹고 자고 하다 보니까 도착했었거든!”


역시 짜증 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기 싫은 것 하나 없는 긍정적인 남편이다. 그래서 내가 반했었지.


최악의 기억 No. 1: 사슴아 안녕? 뿔이 예쁘구나


이번 에피소드는 산 마르틴 데 로스 안데스라는 마을에서 바릴로체로 돌아가던 중에 생긴 일이다. 우리는 바릴로체에서 차를 렌트하고 칠레에 넘어갔다 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바릴로체에서 무사히 렌트를 하고 숙소 호스트가 추천해준 길을 따라 산 마르틴 데 로스 안데스라는 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계획에 없이 우연히 방문한 이 마을은 동화 속에 나오는 곳처럼 너무 예뻤고 식료품점, 카페, 펍 모두 특색 있는 곳이었다. 항상 여행은 우연 중에 더 강한 감동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 마을이 꼭 그랬다.


DSCN6823.JPG 산 마르틴 데 로스 안데스에 있던 분위기 좋았던 펍


마을 앞에 큰 호숫가를 보며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근사한 수제 맥주 집에서 맥주도 마시고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바릴로체로 돌아가려고 차를 탔다. 렌트하면서 내비게이션도 함께 빌렸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고 그와 동시에 구글맵 내비게이션도 같이 켜 놓았다. 문제는 차 내비게이션과 구글맵 내비게이션이 다른 방향을 알려주면서 시작되었다.


남편: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가보자”

나: “아니야. 구글맵대로 가보자. 네비가 알려주는 길은 산으로 들어가는 길 같아.”

남편: “그냥 가보자.”


느낌이 좋지 않았으나 운전자 마음이니까 그냥 네비가 알려주는 길로 우리는 들어서게 되었다. 분명 우리는 고속도로 같은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바로 비포장 도로로 들어서게 되었고 웬일인지 자꾸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점점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상향 등을 켜도 딱 그 정도밖에 안보였고 비포장 도로에 경사도 심해서 우리 둘은 점점 말을 잃게 되었다. 그도 그런 것이 길 자체가 너무 위험해서 운전자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기만 해도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길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내비게이션에 U자로 유턴하는 길이 표시되었다. 그 길을 따라 가보니 경사진 산길을 올랐다가 굽은 길이 가장 높은 지형이고 바로 심하게 꺾어 다시 급경사를 내려오는 그런 식이었다. 내비게이션에는 우리가 가는 길 말고는 주변에 아무것도 표시가 되어있지 않았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산길이었으니까) 주변이 보이지도 않는데 언제 어디에 경사가 나타날지 몰라서 불안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난 거기서 죽을 것 같았다. 자칫 실수라도 해서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계속 받았으니까. 내가 죽으면 엄마 아빠가 얼마나 슬퍼할까? 남편 그만둔 것이 비밀이라 남편 출장 간 것 따라가서 베트남에 가 있는 줄만 아는데 나와 내 남편 시신이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된다면 엄마 아빠가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까?


한참 가던 중 우리는 바로 2미터 정도 앞에 있는 사슴 때문에 급정거를 하게 되었다. 사슴은 정말 컸고 마치 우거진 숲 속처럼 엉켜 있는, 거대하고 예쁜 뿔을 가진 사슴이었다. 우린 눈이 마주쳤고 자동차 상향 등 때문에 어둠 속에서 사슴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린 30초 정도를 대치했다. 솔직히 그때 워낙 비관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저 사슴이 뿔을 내세워 우리를 공격해오지 않을까 싶어 무섭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행히 약 30초 대치 후에 사슴은 길을 비켜줬고 우린 무사히 갈 길을 갔고 다행히도 그 지옥 같은 산길에 들어선 지 한 시간 반 만에 포장도로인 고속도로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남편에게 말한다.

“난 그때 솔직히 거기서 죽는 줄 알았어.”

그 당시에는 나에게 이것도 다 추억이라며 재밌지 않았냐 말했던 남편이 최근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나도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