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미팅은 70대 노인일 때나 할래
절친한 친구가 2:2 미팅을 제안했다. 소개팅 앱에서 만난 남자로, 직업은 의사고 함께 나올 친구 또한 의대생 동기라고 했다. 오호라? 사는 재미가 한참 없을 때라 잘됐다 싶었다. 서른이 넘어가니 소개팅도 안들어오고 친구와 함께 하는 미팅이면 소개팅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잘 안되도 추억쌓기용으로 나쁘지 않을 에피소드잖아? 상대 남자의 자기소개서를 보니 꽤 진심이 엿보였다. 가볍기만 한 만남이 아니라 진지하게 만나볼 이성을 찾는다는 말에서 저변에 깔려 있는 낯선 이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조금은 사그라졌다. 콜!
토요일 종각 6시 나무이자까야라는 곳을 예약해뒀다고 했다. 꽤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친구들에게 형부로 의사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깨방정도 떠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 남성은 키가 180cm가 넘고 훈훈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현직 의사였다. 당연히 대학도 서울에 있는 명문의대를 졸업했다. 출신 학교에 본명까지 확실히 알고 있으니 걱정할 일은 크게 없겠지. 세상이 하도 흉흉하다보니 별 걱정을 다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안심하고 방심했다.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고 단정한 대화가 오가는 건 잠시였다. 술이 한 두잔 들어가자 술게임을 하자 조르고 벌칙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다리보다는 가슴'을 본다를 시작으로 '오래 하는 게 좋냐, 자주하는 게 좋냐' '긴 게 좋냐, 굵은 게 좋냐' '끼고 하는 게 취향이냐, 안 끼고 하는 게 취향이냐' '누가 더 많이 젖을 것 같냐'까지 헛웃음이 나다 못해 기분이 X같은 순간이 몇 번이었던가. 꼭 주어나 목적어를 빼는 걸 잊지 않는 것도 참 우스워보였다. 점점 표정이 굳어가는 날 보더니, 비뇨기과 의사라는 놈이 이런 얘기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거란다. 성적인 질문과 대화는 자연스러운 거지만 불편한 사람이 없어야 가능한 거라는 슨생님같은 이야기를 내뱉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벌칙으로 입에 뽀뽀까지 하란다. 선 좀 지키자는 내 말에 서른도 넘었는데 아껴서 뭐하냐는 거지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겨우 조절한 게 볼뽀뽀라니. 야 갈겨준다 볼뽀뽀. 내가 왜 1시간 전에 만난 놈에 뱃살을 느끼며 끌어안고 있는지, 볼에 왜 뽀뽀를 갈겨줘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얘네는 이게 좋은걸까? 싫다는 말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있는 내가 등신같아 멘탈이 점점 부숴져만 갔다. 밥벌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사도 아닌데, 헤어지면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인데 나는 왜 얼렁뚱땅 분위기에 휩쓸려 이러고 있는 지 나조차도 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드디어 폭발! 코로나 때문에 10시까지 밖에 영업을 안 하니까 2차로 레지던스를 잡고 술을 더 마시잔다. 결국 실랑이가 오가고 모임은 파했다. 대학 신입생때 경험한 미팅과 어쩜 이리도 달라진 게 1도 없을까. 그때 받은 충격으로 이후로 단 한 번도 미팅은 나가지 않다가 연애 좀 해보려고 용기내 나가본 미팅이었는데, 실망에 공포까지 느끼고 와버렸다. 미팅에서는 꼭 술게임을 하고 벌칙으로 애정 없이 서로를 탐하며 놀아야 하는 건가, 경험 많은 누가 좀 알려주세요. 다들 이러고 노나요? 다음 미팅은 칠십 노인이 되면 해보려 한다. 그때도 이러고 노는 지 궁금하네.